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밈혜윤 Sep 03. 2024

오타루에서 돌아오는 밤 천장 같은 검은 하늘이,

내 옆에는 줄 이어폰을 낀 친구 B가

   삿포로

   B와 여행은 처음이었다. 삿포로 하면 영화 <러브레터>, 그리고 이병률 시인의 구절을 빼놓을 수 없다. 오겡끼데스까~?!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영화와 시 덕분에 삿포로는 한결 낭만적인 도시로 여겨진다.


   우리가 그 낭만의 도시로 떠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비행기삯 때문이었다. 겨울과 여름이 아름답다는 삿포로는, 여름의 끝자락에 닿자마자 비행기 표값이 많이 떨어졌다. 20만 원 후반의 가격으로 아시아나를 타고 갈 수 있다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삿포로에 갈까?라고 말하면서 나는 이병률 시인의 시를 생각하고 큿, 웃었다. 어쩌면 B도 그랬을지도.


   로맨틱한 감정과 우정은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우정은 로맨틱한 감정보다 크고 깊다. B와 내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데, 이런 말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우리의 여행은 계획대로 매끄럽게 굴러갔고 예상보다 더 편안하고 좋았다. 굴뚝처럼 담배를 맘껏 피우면서 다른 곳에서 할 수 없을 말들을 눈치 보지 않고 했다. 다음을 기약했다.


   삿포로역에서 20분을 걸으면 스스키노라는 중심지가 나온다. 그곳은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묵는 곳이다. 삿포로 인근 최대 유흥가인 것도 같았다. 골목마다 사람들의 얼굴과 닉네임이 붙은 바, 클럽이 즐비했다. 우리는 유흥가 인근을 걸어 다니면서 쉴 새 없이 먹고, 먹으면서 먹을 걸 이야기했다. 건강한 돼지가 되었어요.


   오타루

   삿포로역에서 오타루로 향하는 열차는 바닷가를 지났다. 이렇게까지 철길과 바다가 붙어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기찻길이었다. 삿포로에서 오타루까지는 열차로 약 한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서, 혹은 어느 관광객의 캐리어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치기도 하면서, 각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타루에 흘러갔다.


   오타루에서 별 것도 안 했는데 해는 서서히 얼굴을 감추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탄 열차에서 끝칸에 탄 덕분에 정차할 때마다 열차회사 유니폼을 입은 일본 남자가 시간표를 확인하고, 수신호를 보내고, 호루라기를 불고, 다시 올라타면 출발하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라서 지겨운 줄도 모르고 구경했다.


   어느 역에서 남자의 호루라기 소리에 파도 소리가 섞여 났다. 파도 소리를 들으니 괜히 공기에서 짠맛이 나는 것 같았다. 낮에 봤던 그 바다구나. 해가 완전히 저물어서 창밖으로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밤바다는, 바다라기보단 검은 터널 같기도 했고 땅까지 흘러넘친 검은 하늘 같기도 했다. 앞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하늘, 아니 바다에 간혹 어딘가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옆을 봤다. B는 줄 이어폰을 꽂은 채 널브러져 잠들어 있었다. 다시 검은 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그 순간 혼자가 아니라 좋다고 생각했다. 너울진 검은 바다를 홀로 봤다면 왜인지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 같다. 혼자 여행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낭만도 소중하긴 하지만 그 순간엔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때때로 그런 순간이 있다. 혼자도 좋지만, 혼자가 아니면 더 좋을 것 같은 순간이. 그러고 보니 살아온 날의 대부분이 그랬던가? 일본 남성의 절도 있는 수신호에 따라 척척 움직이는 기차는 금세 밤바다의 흔적도 볼 수 없는 곳까지 힘차게 달렸다. 곧 B는 깨어났다. B에게 천장 같던 밤바다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관뒀다. 며칠은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의 밤낮을 방패 삼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