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새로운 책 쓰기
코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책을
하루 8페이지 필사하고 그 문장에 대해
느낀 점을 적는 것이다.
미션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어떤 작가, 무슨 책을
선택할지 저녁까지 고민했다.
나는 매일 성경을 읽고 한 줄씩
필사는 하지만 성경을 8페이지
필사한다면 자기 계발이 아닌
혹사가 될 것이고
이 문장들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위태로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 재밌게 읽기도 했고
궁극적으로 내가 쓰고 싶은
동화책과 판타지 소설의 중간지점을
쓴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C.S 루이스의 <나니아 이야기>를
필사하려고 했으나 이 또한 첫 필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책장에서 집은 책은
바로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내가 아홉 살 때
방학을 맞은 대학생이던 외삼촌이
지방의 우리 집에 들러 내게 선물한 책이다.
범우사 문고의 책들을 잔뜩 읽던 외삼촌
영향 덕에 나는 어린 나이에 고전을 많이 읽었다.
외삼촌과 나는 나란히 앉아 한 페이지 씩
번갈아가며 소리 내어 <어린 왕자>를 읽었다.
이후로 명절 특집에 <어린 왕자> 애니메이션을
본다거나 가수 이승환을 통해 어린 왕자 단어를
듣기는 했지만 다시 읽어본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 문제 중
여우와의 어린 왕자의 익숙함에 관한
짧은 지문을 읽고 난 후 <어린 왕자>는 내게 먼 것이 되었다.
작년, 미취학 자녀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을
서점에서 쓸 수 있단 말을 듣고 고민 없이 사들었던
책이 바로 <어린 왕자>다.
대부분의 아이들 책을 중고책으로 사주었던
나는 <어린 왕자>만은 새 책으로 사주고 싶었다.
그만큼 내게 이 책은 남달랐기에 두 딸들에게도
그러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어린 왕자> 첫 필사를 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내 나이 여섯 살 적이 난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의 여섯 살이면 나는 일곱 살이다.
기억난다. 보아뱀 그림 따윈 집어치우고
지리와 역사와 산수에 집중하라는 어른들의 충고에
나도 비행사처럼 상상력을 잃은 채 살았다.
이제 다시 쓰기를 통해 상상력의 전성기인
여섯 살을 회복하고자 한다.
우리 집에 <어린 왕자> 새 책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