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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현 Jan 08. 2021

책, 여전히 가치 있는 콘텐츠

20년 차 영상을 업으로 삼은 초보 작가의 고백

2000년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일찍 성공하고 싶어서 의욕이 앞섰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류승완 감독처럼 서른 살에 데뷔하고 싶었다.

뭐라도 일찍 시작하고 열심히 하면

그리 될 줄 알았다.


양 손으로 조그셔틀을 움직이며

촬영된 비디오테이프와 편집될 비디오테이프를

편집하는 기계를 배우고 며칠 밤을 새웠다.

그것이 리니어 편집기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에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게 되었는데 교수님들이 가르쳐 줄 수

없어서 소프트웨어를 파는 여의도 업체에 가서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쉽게 다루긴 하지만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2000년 학과 편집실에 유일하게 1대 있던

초록색 아이맥으로 실습을 했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웅장하게 울리는 시작 소리로

혼자서 밤새 편집을 익혔다.

기술이 있었기에 스무 살 때부터 돈을 벌었다.


모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워크숍을 다녀오면

수십 개의 6미리 비디오테이프를 받았다.


1개 조당 테이프를 3개씩 찍었는데

신입사원들이 뛰어놀고

레펠을 타고, 한 명이 뒤로 자빠지면

남은 사람들이 받아주는

똑같은 영상을 똑같은 길이로,

6가지 배경음악을 돌려가며 기계처럼 편집했다.


대기업을 가면 다 저렇게 노는구나.

그들이 노는 장면을 지루하지만 기계처럼

일한 덕분에 나는 돈을 벌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군대생활을 빼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을 통해 돈을 벌었다.


가끔 일이 끝나면 여지없이 대기업 신입사원들의

웃고, 뛰어내리고, 화이팅! 하고 외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만 화이팅하고 싶었다.


20년이 지나 글쓰기를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다시 시작했다.

시나리오 수업을 듣거나,

영화 현장에서 시나리오의 몇 신을

대필한 적이 있었지만

과제나 남의 일일 뿐이었다.

오롯이 나만의 글, 내 이름이 적힌 책을 쓰고 싶었다.


20년 동안 창작이란 필드에서 일했건만

내게는 자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식, 부동산에 투자할 종잣돈도, 현실감각도 없는

내게 책 쓰기는 가장 현실적인 자산 축적이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영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기획을 하고, 장비를 꺼내고,

자막과 음악을 넣고.

너무 작업이 번거롭다. 귀찮다.

몸을 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남이 시킨 거라면

여러 번 수정을 해야 한다.

고객의 취향을 저격하지 못하면

내 영혼과 시간이 저격당한다.

나는 여러 번 사살당했다.


그런 의미에서 책 쓰기, 글쓰기는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마음이 가벼운지.


쓰기 뿐만 아니라 읽기는 또 어떤가.

한 때 하루에 극장에서 영화 3편도 봤던

내게 책은 영화보다 훨씬 경제적인 콘텐츠다.

내게 돈 만 원이 주어진다면

오천 원짜리 중고책 두 권을 살 것이다.

어릴 적 읽지 못한 아동 고전 완역본을.


만 원을 내도 한 편을 보지 못하는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마흔이 넘어 비로소 경제개념이 생긴 것이다.

대학교 자취방에 쟁여놨던 DVD는 진즉 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장을 보고

흐뭇해하는 것 보니 나도 조금은 철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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