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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홍보기획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질 혹은 노력일까?

by 박수경


생각해보면 나는 홍보기획자로서 처음부터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일을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공연은 좋아하는데 예술가는 될 수 없고, 공연계에는 들어가고 싶은데 또 딱히 특별한 재능은 없으니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스물일곱, 공연 홍보기획자라는 직업은 그때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전통예술 분야는 아예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기획자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건 지금 생각해도 행운 같은 일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첫 회사가 공연사업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전통 콘텐츠를 기반으로 공연, 체험, 음식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곳이었고, 나는 문화사업팀 내 홍보기획 담당자로 일을 하게 됐다. 규모가 크지 않은 곳에서는 내 업무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야 하는데 덕분에 그곳에서 나는 정말 다양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5년이 나에게는 지금까지 이 업계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 준 셈이다.


처음 주어진 업무는 기획서를 쓰는 거였다. 첫 기획서를 지금 다시 꺼내 본다면, 물론 있지도 않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당시 나의 사수였던 팀장님은 그걸 보시고서 얼마나 속으로 어이가없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때는 정말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뭐가 잘못됐는지도 몰랐다.그냥 일을 잘하고 싶고 잘해야겠다는 순수한 마음이있었을 뿐. 나는 그저 의욕만 앞선 초년생이었던 거다.

경력이 쌓이고 보니 기획서는 제목, 목적, 추진 방향, 세부 내용, 예산, 기대효과 등의 표면적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기획이란 건 확보한 예산안에서 하고자 하는 공연이나 사업 혹은 홍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구현해 내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보고 조율할 수 있는 ‘안목’과 ‘감(感)’이 필요하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능력이 전혀 없던 내가 그때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기획서를 납득시키기 위한 충분한 자료 조사였는데 그것을 그냥 패스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기획서가 얼마나 가벼웠을까? 다행히 그간 쌓아온 경험의 시간은 그 능력들을 배가시켜 주긴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음으로 주어졌던 업무는 ‘보도자료 쓰기’였다. 다른 건 몰라도 보도자료 쓰는 것은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고 관심도 많았던지라 처음부터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보도자료는 그냥 쓰는 게 아니었다. 처음 팀장님께 검토 요청을 드렸을 때 빨간펜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 예기치 않게 많은 트레이닝을 거쳤다. 이건 정말 좋은 기회였다.

누가 옆에서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기사체 글을 많이 읽었고, 공연이나 행사가 많았던 만큼 보도자료 쓸 일도 많았다. 나중에는 글 쓰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구성으로 어떻게 전략적으로 쓰는 게 좋을지를생각하게 됐고, 텍스트도 분석할 줄 알게 됐다. 홍보팀에 처음 들어오면 가장 많이 하는 업무가 글쓰기인데, 대부분은 기본 글쓰기 혹은 다양한 방식의 홍보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배워지기도 하지만 글쓰기 분야에 대한 관심과 잘하고자 하는 욕심, 무엇보다 노력이 더해지면 홍보 업무를 하는데 훨씬 수월하다.



‘디자인에 대한 감각’은 말해 무엇하리.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월간지 제작 업무를 맡았을 때 나는 많은 부담을 가졌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와 정말 ‘잘 해내고 싶다’의 양 갈래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번 오고 갔다. 첫 표지 디자인이 나왔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디자인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을 때라 잘 된 건지 아닌지 그때 느낌은 그냥 ‘잘 모르겠다’ 였다. 그래도 몇 개의 시안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을 골라 팀장님께 보여드리며 “마음에 드시나요?”라고 묻자 팀장님 왈 “아니”라고 대답하셔서 적지 않게 좌절했었다. 결국 그 시안으로 진행을 했었지만 말이다.

팀원들이 홍보물을 처음 제작할 때 그런 막막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디자인에 대한 시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조직 안에서는 어쨌든 최고 결정권자 의견이 중요하다 보니 담당자 의견은 축소될 때가 많다. 하지만 홍보물을 기획하는 기획자가 이 업무에 대한 고민은 가장 많이 한다. 때문에 윗선의 의견을 무조건 수긍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켜야 할 때도 있다. 그러려면 무형의 어떤 것 혹은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작업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이 필요하다.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법, 관련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 보고, 또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잘 들여다보면 그런 능력은 점차 키워진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공연 홍보기획자라고 해서 공연 홍보물만 봤던 것은 아니다. 전시든, 팝업스토어든 디자인과 관련된 것은 그게 무엇이든 다양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지금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디자인도 트렌드가 있기 때문이고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홍보에 필요한 또 한 가지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홍보의 가장 기본 업무는 커뮤니케이션 관리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잘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기본 성향이 긍정적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면 좀 더 유리하다. 나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반반씩 갖고 있는 편이어서 홍보 업무에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홍보팀은 언론 기자, 협력 기관, 아티스트, 관객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도 하고, 협력 관계에 있는 곳과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홍보 기획업무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모든 과정의 접점에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지수가 낮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자신이 홍보하고자 하는 콘텐츠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있으면 홍보하는데 좀 더 콘텐츠를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다. 공연 홍보나 마케팅이 실물을 가진 제품을 홍보하는 것보다 어려운 이유는 유형이 아닌 무형의 가치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실질적으로 음악이나 공연을 좋아하는 것이 일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많이 보러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일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즐겁게 할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그 경험치들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일에 접목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재미도 있었다.


물론, 공연 홍보를 한다고 해서 홍보팀 직원들이 다 공연을 좋아하거나 관심 있어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또 꼭 그렇지는 않아도 된다. 홍보 채널을 잘 운영하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툴을 잘 활용할 줄 알거나 포토샵, 일러스트 프로그램 혹은 영상편집을 잘 다룰 줄 아는 등의 능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홍보팀 안에서 일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홍보는 브랜딩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 말은 즉, 홍보하고자 하는 콘텐츠를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는 가치를 결과물로 만들어 낸 다음, 이에 대한 궁극적인 지향점인 외부와의 연결고리 속에서 지속성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홍보 메시지나 포인트를 발굴하고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들여다보고 조금 더 진정성 있게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그래서 홍보하고자 하는 콘텐츠에 대한 깊은 관심은 중요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공연 홍보기획자로서 실무를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타고 태어난 혹은 관심사와 함께 촉발된 어떤 기본적이고 잠재적인 능력들이 닦여지고 성장 발전하기도 했고, 새로 배우고 경험하면서 갈고닦아진 시간에 비례한 능력들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 이 업무들을 다 잘한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 완벽한 정답이란 건 없다.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노력과 그것을 위한 시간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확률을 높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전히 공연이 좋고 공연을 홍보하는 나의 일이 재미있다. 스트레스가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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