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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여행자 똥씨 Feb 26. 2024

일상에서의 명상/마음 챙김 연습

멜버른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의 명상/마음 챙김 연습

INTRO 멜버른의 날씨 

멜버른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멜버른에는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고 (초겨울-여름 날씨를 하루동안 경험), 한여름에도 어제는 15도, 오늘은 37도, 내일은 23도 뭐 이렇다.


파트너와의 일과 중 하나는 누구든 미리 날씨 체크 한 사람이 앞으로 며칠간의 '변덕스러운 날씨' 업데이트해주는 것. 그것에 따라 둘이 같이 일 안 하는 날은 계획이 달라진다.


앞으로 며칠 날씨를 체크했어도 당일날 아침에 일기예보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 결국은 아침에 눈 뜨면 다시 체크해야 한다. 오늘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나 - 봄, 여름, 가을, 겨울 옷 중 무엇을 고르나- 결정을 해야 하니.


오늘이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분명 파트너가 오늘 무진장 더울 거라고 했었는데, 새벽에 일어나니 공기가 매우 쌀쌀했다. 해가 떴는데, 그래도 쌀쌀했다. 이거 더울 느낌이 아닌데. 체크해 보니 오늘 최고 기운이 20도 언저리란다. 파트너 말 믿고 한여름 옷으로 입고 하루를 시작했다가 일기예보 체크하고 봄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변덕스러운 멜버른 날씨, 하루도 한순간도 예측 불가능한 멜버른 날씨가 나는 좋은 것 같아."

내 몸은 가끔 들쑥날쑥 기온 변화로 좀 힘들어할 때도 있는데,

내 마음에는 이 예측 불가능한 멜버른 날씨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마음을 더 건강하게 해 준다고 할까?

이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하면 다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한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 하다. 꼬불 꼬불 산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간절히 원하던 목표를 드디어 이룬 후 '아 이제 내 인생 탄탄대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예측 못했던 변수가 항상 골목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다. "인생이 그렇게 예측 가능하고, 쉽고, 순탄할 줄 알았니?" 나의 순간의 교만함을 비웃는 듯이.

그래서, 한 목표를 이루고 숨은 잠깐 돌리고, 감사함을 만끽하기는 하지만, 이제부터 인생이 술술 풀리고 쉽고 평탄할 거라는 기대는 오래전에 버린 것 같다.

꼭 큰 어려움들이 아니어도, 그냥 자잘한 예측 못할 일들은 항상 발생하는 게 인생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우리는 한 치 앞의 일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기분 좋은 순간도, 힘든 순간도 다 지나가는 구름처럼 봐주기. 어떤 순간도 영원히 붙들 순 없으니."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방금 구글에 찾아봤다)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오'  - 전도서 10장 14절


멜버른의 예측할 수 없는 날씨는 나에게 매일매일 인생의 불예측성을 다시금 깨닫게 수용하게 도와준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다시금 겸손하게 해 준다. 거대한 인생을 건방지게 예측하고, 통제하려 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을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게 하는 마음을 다시금 상기해 준다고 할까.


"그래, 멜버른의 날씨처럼 인생도 그렇지. 해가 쨍 떴다가, 바로 다음 순간 비가 막 올 수도 있고, 그랬다가 갑자기 해가 다시 쨍 뜨기도 하고, 숨 막히게 더웠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으슬으슬 추울 만큼 날씨가 추워지기도 하고. 그러니 지금 숨 막히게 더워도 너무 짜증 내지 말고, 지금 너무 추워도 짜증 내지 말고, 길 가다 소나기를 맞아도 너무 불평하지 말고. 날씨는 순간순간 변하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 엄청 더울 날씨를 예측하고 한여름 옷을 입었다가, 생각보다 선선한 날씨일 거라는 바뀐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봄/가을 옷으로 갈아입으며 다시 마음을 먹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나를 찾아올 것 (예. 날씨)에 대해 열린 마음 갖기, 나에게 닥치는 순간들 (예. 날씨) 겸허히 받아들이기. 그 순간들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대응하기 (예. 봄/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명상/마음 챙김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명상이고 마음 챙김이지'.

명상/마음 챙김은 심리학에서도 증명된 효과적인 마음 관리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의외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콘셉트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이나 '음, 저한테는 잘 안 맞을 수도 있어요' 하는 거부하는 반응을 보인다.


보통 명상/마음 챙김 연습이라고 하면 '정자세를 하고, 명상음악 또는 침묵 속에서, 깊은 호흡을 마시고 들이 내시며, 최소한 10분 이상 움직이지 않고, 생각과 마음을 비워내는' 그런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도 저런 방법에 치우친 명상/마음 챙김 접근법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나온다. 청개구리 성격이 있어서, 억지로, 너무 딱딱하게, 정석으로 룰을 따라야 되는 건 그냥 답답하고 싫다. 그런데 어떻게 명상이 되고, 마음 챙김이 되겠나.


명상/마음챙김 연습에 대한 고정관념 이미지

명상/마음 챙김이  너무 '방법' (예. 침묵, 명상음악, 정자세, 시간 세팅, 호흡법)에 치우친 형태로 우리에게 왜곡되어 전달이 되어왔고, 그 것이 사람들이 명상/마음 챙김에 접근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게 안타깝다.


그런데 진짜 명상/마음 챙김 수련의 핵심은 이런 '테크닉, 방법'들이 아니다. '일상의 태도/마음가짐'이다.

Meditation (명상)을 하는 게 아니라,

Meditative (명상적)으로 사는 것이 핵심.

Mindfulness practice (마음 챙김 훈련)을 하는 게 아니라,

Mindful (마음을 챙기며) 사는 것.


몇 년 전 꿀같았던 명상/마음 챙김 트레이닝에서 배운 위의 핵심 메시지가 나의 개인적인 삶에도 도움이 되고, 일에서 이 방법을 심리치료에 효과적으로 포함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결론: 마음 챙김/명상 연습과 멜버른의 변덕스러운 날씨의 관계

멜버른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대하는 태도가 결국 마음 챙김이고 명상인 것 같다.

매 순간, 주어진 순간과 환경에 열린 마음을 갖고, 그 순간에 집중하고, 그 순간에 반응하는 내 마음과 몸의 반응에 깨어있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감싸안고, 순간에 존재하는 것.


열린 마음, 수용, 지금 여기 집중하는 그런 삶의 자세.


그럼 이렇게 글을 쓸 때도, 옆에서 들리는 파트너의 코 고는 소리를 들을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성가시고 불편한 사람과 한자리에 있을 때도, 우리는 항상 명상/마음 챙김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잡음/소음/시끄러운 세상/일상 속에서 명상적으로 살고, 마음을 챙기며 사는 게 자연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초반에 formal 한 수련 연습 (위에서 얘기한 방법들 사용)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방법들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면 - 나처럼- 자기만의 방법으로 명상/마음 챙김 연습을 하면 되는 것 같다.

나에게 멜버른의 변덕스러운 하루에 사계절 날씨가 매일의 명상/마음 챙김 연습/리마인더가 되듯이..


덧 1.

오늘 마침 파트너와 내가 둘 다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파트너는 일터에서. 나는 집에서. 우리는 원래 그림 취미로 그리는 사람들이 아닌데.


파트너는 일터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 쉬는 시간에 멍 때리고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단다. 그리고 결과물/기대에서 자유로운, 그림 그리는 순간/과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평안한, 순수한 명상/마음 챙김 순간을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받는 사건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마음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하고.

파트너 마음챙김 그림

나는 오늘 집에서 일을 했는데, 나도 오늘 오후에 쉴 때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어 져서, 장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만 몰두하게 되는 평안하고 차분한 순간들을 잠깐 만끽했다.

내 마음챙김 그림


퇴근하고 돌아온 파트너와 서로의 하루를 나누다가, 둘이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짓 (그림 그리기)을 하고 싶어 졌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 그림 그리는 mindful 하고 평안한 순간을 우리 둘 다 경험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둘 다 앞으로 각자의 마음 챙김/명상 시간으로 그림 그리는 활동을 추가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덧 2.

이 글을 하루를 마무리하며 쓰는데, 이메일 하나가 딱 왔다. 공립병원에서 지난 2주 일한 것 급여에  (호주는 2주마다 급여받는다) 에러가 있다는 'warning ' 이메일. 내가 분명 제대로 일한 시간만큼 시스템에 뜬 거 확인하고 지난주에 사인했는데, 매니저가 오늘 뜬금없이 뭔 이유로, 실수로, 내가 일을 안나간 걸로 체크했다나 뭐라나. 순간 열이 '확' 받았었다.

“아 할거 가뜩이나 많은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엉뚱하게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니. 해야 할 일이 어이없게 또 늘어나 버렸네. 내일 매니저한테 연락하고, 담당부서에 연락해서 수정하고, 고쳐야 되고... 너네 나를 왜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러다 문득 내가 쓰고 있던 이 글의 내용과 나의 반응이 완전 반대라는 걸 깨닫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측 불가능'한 삶의 순간들을 열린 마음으로 온전히 감싸 안고, 수용하자고 쓰고 있으면서, 저 '예측 불가능했던' 이메일 하나에 이렇게 쉽게 울그락 불그락 해지다니.

그래서 이메일을 조용히 접고, 내일 처리하자 생각하고 이 글 마무리하는데 집중했다.

삶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것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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