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소한 좋은 순간들 모으기
언제부터 인가, 감사 일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친구들끼리 단체채팅창을 이용해 하루에 감사했던 것 몇 가지를 나누는 사람들 이야기도 종종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고, 어려움, 슬픔, 아픔 등을 안고 살아가야 하니, 그것들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하여, 반대로 '긍정적인 것으로 주의를 돌리자'는 취지는 좋게 보였지만, 나는 이런 감사 일기 붐이 그다지 반갑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감사 일기 문화가 내세우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자'라는 구호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건 좋지 않은 거야'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을 잣대를 가지고 좋고, 나쁨으로 분류하는 문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반응 중 하나인 불편한 감정 경험에 저항하게 하고, 그것들을 부정하고, 억누르도록 만든다.
억누르는 것은 언제든 부작용을 일으킨다. 심리치료에서는 우리에게 해가 되는 중독 및 자해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그 욕구를 '억누르는' 방법을 쓰지는 않는다. 욕구를 알아차리고,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욕구가 올라올 때 나에게 더 건강한 방법을 찾아나갈 작업도 가능해진다고 할까? 그러니 '좋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나쁜 감정/생각'들은 하지 말도록 (부정, 억누름) 장려하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억누르고 부정하면 할수록 오히려 심리적 고통만 더 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우울함 때문에 더 우울해지고, 우리의 불안함 때문에 더 불안해진다.
실제 상담 장면에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생각패턴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되는 생각으로 바꾸는 연습을 할 때, 많은 분들이 대부분 경험하는 어려움은 '네가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살았던 것은 잘못됐던 거야. 네가 뭔가 잘못하고 있었던 거야'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받아서, 무의식 수준에서 또는 의식 수준에서 '저항과 반항감'이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의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반응을 비판하고, 부정하고, 억누르는 순간 우리는 더 큰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원래 모든 종류의 감정을 다 경험하도록 설계되었고, 느끼기 불편한 감정들 (슬픔, 분노, 두려움 등)까지도 다 기능이 있는 감정들이다. 물론 그 강도와 정도가 나에게 자극이 되는 상황에 비해 지나치고, 나의 기능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면, 그건 심리적 질병으로 여겨지고 (우울증, 불안장애, 분노장애) 치료가 필요하지만, 그 감정들 자체는 '나쁜 것'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불편한 감정들을 안 느끼려고 하고, 부정하려 하고, 없애버리려고 할 때 더 큰 심리적 장애/고통을 겪게 된다.
나 역시도 어릴 적부터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불안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토로했을 때, '우울해하지 마. 불안해하지 마. 좋게 생각해'라는 대답을 듣게 되면, 도움이 되기보다는 상처를 더 받았다. 사람들의 저런 말들은 '네가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네 잘못이야. 너의 상황 해석과 그에 대한 반응은 잘못되었어'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그래서 우울감과 불안함을 경험하는 자체도 불편한데, 이제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보는 것 자체로 우울감과 불안감이 더 증폭되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현대 문화에서 자라고 살아온 현대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내가 어린 시절 감정과 생각들이 '평가'를 당하는 일을 많이 겪어서 인지 나는 내가 심리치료를 제공할 때도 이 부분을 항상 조심한다. 마음이 아파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혼자서 힘들어하고, 혼자서 스스로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다가 안돼서 용기를 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우선 '들어져야 하고, 이해받음을 느껴야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져야 한다'가 내가 추구하는 일에서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즉 인간의 감정을 '좋고, 나쁨'이 없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을 우선 그만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첫걸음인 것 같다. 슬픔, 불안, 두려움 같은 유쾌하지 않고 불편한 감정들이 있고, 기쁨, 평안함, 짜릿함 같은 기분 좋은 감정들은 있지만, 경험하기에 유쾌하다고 해서 '좋은'거고, 불편하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심지어 기분 좋은 감정들만 지나치게 경험하는 증상들은 '조증 (mania)'로 분류되고, 이 것은 심리 장애이다. 그리고 기능에 엄청난 손상을 가져온다 - 일상 생활 하는 것에 큰 영향이 갈 만큼. 우울과 불안함을 경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기분'만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니 '마약/술 중독'의 문제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억누르려고 하다 보면, 기분 좋은 감정까지 못 느끼게 된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생존/대처 방법으로 삼고 살아오신 분들은, 기분 좋은 감정까지 잘 못 느끼게 된다고 하고, 그런 감정의 무감각 함에 힘들어하시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심리치료 중 하나는 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 수용전념치료)인데, 이 치료접근법의 주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불편하고 유쾌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평가 없이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내 마음과 생각과 싸우는데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내가 가치를 두는 것들에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의 불편한 감정들 자체가 우리에게 꽂힌 1차 화살이라면,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것을 나쁘다고 평가하고, 부정하려 하고, 저항하는 것이 우리에게 진짜 심리적 상해를 입히는 2차 화살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힘들고 불편한 감정들도 있는 그대로 봐주고, 그 감정들이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귀 기울이고 (예: ‘우울'의 메시지: 지금 이 상황이 내가 통제권을 잃은 상황으로 느껴지나, '불안'의 메시지: 내가 지금 나의 마음의 안전, 신체적 안전에 뭔가 위협을 느끼고 있나. '분노'의 메시지: 지금 이 상황을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나. 내가 뭔가 액션을 취하라는 사인인가), 그 감정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본 후, 이해해 주는 것이 첫걸음이고, 그래도 내 감정이 이 상황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지나치다고 느껴져서 이해가 안 된다면, 이해가 안되는 데로, 그냥 바라봐주고 보듬어주기. 즉, 그 감정들을 없애려고 밀어내는 것도 아니고, 억누르거나,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라봐주는 것. 그 대신 그 감정들이 주는 메시지를 '진짜라고 무조건 믿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기. ‘거리 두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ACT (수용전념치료)에서 권장하는 연습 중 하나인 '종이 밀어내기' 방법은, 원하지 않는 생각과 감정을 종이에 적고, 이 종이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모든 생각과 감정이라고 상상하고, 그 종이를 가능한 몸에서 멀리 밀어내보도록 한다. 양손으로 잡고, 팔꿈치를 펴고, 1분 넘게 가능한 한 우리의 몸에서 멀리 세게 밀어내 보기. 그랬을 때, 몸에 얼마나 많은 무리가 가고 힘이 들고, 나에게 중요한 삶의
다른 부분들, 가치를 두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워지는지를 경험하게 한다.
그러다가 내 얼굴 앞에 가까이 대고 시야를 가리게도 해본다. 생각과 마음에 압도당하는 상태.
그러다가 그 종이 (불편한 마음과 생각)를 무릎 위에 그냥 두고 편안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따뜻하게 품으로 안아주기도 하는 여러 시도를 해보고 그때의 느낌을 느끼게
한다.
이 연습의 목적은 불편한 내적 경험을 피하거나 억압하려는 노력이 우리의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하는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우리의 내적 경험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는 것의 한계를 보여주려는데 있다.
결국 우리의 마음/생각 (내면경험) 과의 건강한 관계, 불편한 마음 생각들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싸우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고, 밀어내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 마음에 사로잡혀 압도당하는 것도 아니고,
몸에 힘을 주지 않고, 그 종이를 바닥에 놓고 바라보기.
그러다 무릎에 놓고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따뜻하게 안아주기.
우리의 마음대로 안 되는 불편한 감정들과 생각들의 존재는 그대로이지만, 그것들을 온몸에 힘을 주고 강하게 밀어내느냐, 그것들을 내 시야를 가로막을 정도로 가까이 두고 거기에 압도를 당하느냐, 그것들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몸에 힘을 빼고 그냥 관찰하느냐, 더 나아가서 그것들을 가슴으로 안아주느냐에 따라, 나의 고통의 크기는 달라진다. 불편한 마음과 생각자체가 우리에게 심리적 고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그 마음과 생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그것들과 우리와의 관계가 심리적인 고통을 좌우한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고 그 크기가 클 때는, 이렇게 건강하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나에게 잘 먹히는 가능한 단순간 구절들 준비해 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음이 비교적 안정되었을 때/덜 압도적일 때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말을 해보고, 그중에 내 마음에 가장 잘 와닿는 말들을 찾아보는 연습하기.
여러 가지 시도 후에 내가 찾아낸 나에게 제일 잘 먹히는 말들은
-바라봐주기, 비판 없이: "그렇구나"
-그다음에는, 그래도 괜찮다고 인정해 주기: "암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이 마음으로 인해 불편한 나 자신 다독여주기/달래주기, 따뜻하게: "힘들고 불편하겠다"
-인정해 주기: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그렇게 나의 불편한 감정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봐주는 것을 먼저 하면, 그 감정들에 압도당하는 것은 덜해진다. 여전히 그 감정들을 경험하는 게 불편할지라도. 그 감정들이 나를 압도하는 힘에서 한 발자국 물러날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이 감정들을 '자료'로 사용해서 '액션'을 취할 것인지 (예. 부당한 상황에 정당하게 '화'가 나서, 나의 '화남'이 나에게 이 상황에 맞서 싸우라는 메시지로 느껴진다면, 부당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한다거나), 아니면 이 감정들이 상황에 대한 말이 되는, 적합한 정도의 반응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어떤 이유로든 그런 어려운 감정을 경험하느라 힘든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고 ('그런 감정을 경험하는 나를 비판하거나, 싸우는 게 아니라!'), 그렇게 불편한 마음 경험하느라 지친 나의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채워준다.
그러면 이제 긍정적인 부분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불편한 감정을 억압하는데서 오는 저항이나 부작용 없이.
‘감사 일기'와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삶의 불편한 부분 (상황, 나의 감정 모두 포함)에 집중되어 있던 나의 주의를 발란스를 맞춰주는 거다. 물 컵에 비어있는 부분에 초점 맞췄던 나에게, 물이 채워져 있는 부분도 보게 만들어 주는 것.
물컵이 반만 찼네 (X) -부족한 부분 초점
물컵이 반이나 찼네 (X) - 지나친 긍정
둘 다 아니고, 물 컵이 반은 찼고, 반은 비었구나. 이렇게 나의 삶의 불편한 부분, 감사한 부분 둘 다 봐주기. 평등하게.
이때 중요한 건 긍정적이고 감사한 부분을 찾아볼 때, '소소하고 작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 생각, 감정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압도당할 때는, 그 반대의 긍정적인 것들을 찾는 것은 당연히 힘들다. 억지스럽다. 그리고 긍정적인 것들을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스트레스, 고통에 비하면, 그 소소하고 작은 순간들이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소소하고 작은 기분 좋은 순간들에 ‘억지로’ 초점을 맞추는 연습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심리치료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이 있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항상 잘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잘 들어주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내 컨디션 상태가 양호해야 한다는 부담감. 모든 직업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지만, 이 직업은 그 '좋은 상태'의 기준이 더 높고, 그래야 한다는 부담감도 더 큰 것 같다. 심지어 호주 국가에서는 psychologist 직업 자격증을 매년 재평가하고 승인하는데, 이때 의학적, 정신적 상태를 체크한다. 일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이라도 몸 컨디션이 안 좋고, 개인적인 일들로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일을 시작하기 전 마음이 무겁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내담자들을 돕지, 좋은 에너지가 있어야 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받아주고, 같이 길을 찾아나갈 텐데'. 그런 '좋은 컨디션 유지'에 대한 부담감에서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베스트가 아닌 날에는, 추가로 노력을 기울여서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럴 때 있다. '나 요즘 셀프케어 필요한데, 나 오늘 진짜 에너지 레벨 낮아서 뭔가 에너지를 채워줄 만한 활동이 필요한데' 싶은데, 막상 뭔가 돈과 시간을 들여서 셀프케어를 할 여유는 없을 때. 쉼이 필요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휴가를 갈 수 있는 럭셔리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고 일 년에 한 번 휴가를 눈곱아 기다리며, 셀프케어를 미룰 순 없다.
그래서, 스스로 하기 시작한 연습이, 그렇게 지치고, 번아웃이 오려고 하고, 셀프케어가 필요할 때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부터 매처럼 눈을 부릅뜨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잠시라도 기분 좋은 순간을 찾아내는 프로젝트를 ‘의도적’으로 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양치를 하면서, '아 이 기분 참 시원하다. 치약 맛이 상쾌하다. 아, 이렇게 피곤한데도 내가 나한테 양치를 해주네. 기특하다'. 아침에 커피를 타서 마시고, 일 중간중간 물을 한 모금씩 마실 때도 '내가 나에게 주는 물 한 모금 선물이다. 나의 영혼과 몸에 주는 물 한 모금이다. 음미하자' 하고, 일 중간에 잠깐 창문을 바라볼 때 1초라도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에 하늘을 음미하고, 세션 중간에 오피스에서 화장실 가는 그 순간에 '잠깐 쉬는 시간을 맘껏 즐기자'.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자기 전 샤워할 때 '이야 기특하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이렇게 나를 씻겨주며 하루를 마무리하네. 그리고 이 따뜻한 물 느낌 너무 안정감을 준다'. 이렇게 틈틈이 순간들에서 기분 좋은 느낌, 평안한 느낌, 뿌듯함을 찾는다.
그러면, 신기하게, 하루가 끝났을 때 전체 에너지 레벨이 다르다. 덜 지치고, 내 신체/정신 에너지 배터리가 충전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기 (연출 김석윤, 극본 박해영)’ 중..
구 씨: 인생이 이래. 좋다 싶으면 바로 하루도 온전히 좋은 적이 없다.
염미정: 하루에 오분. 오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아이러니는 세션이 많은 주에는 심리상담을 많이 해야 하니 좋은 에너지 레벨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감이고,
클리닉을 '운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취소들로 세션이 몇 개 없는 날은 자동적으로 ‘걱정’이 된다.
'내 비즈니스가 망하고 있나?'라는 극단적인 생각/최악의 상황으로 생각이 향한다 (우리 엄마 말에 의하면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어하는' 나). 예전에는 이런 자동적인 생각이 나에게 찾아오면 나는 거기에 바로 사로 잡혀서 저런 극단적인 생각으로 향하는 눈덩이에 같이 뒹굴 뒹굴 굴러다녔다.
이제는 내 자동적인 반응을 알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불편한 손님으로 찾아오면 그 생각을 바라봐주고, 너 또 찾아왔구나 하고, 그런 생각과 마음을 갖는 나를 비난하거나 꾸짖지 않고, 바로 멈춘다. 지금 나를 흔들어 놓는 불편한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고, 그런 마음을 경험하는 나에게 지금 필요한 정서적 욕구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마치 신체적 안전을 위한 기본 조건인 의식주가 있듯이,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있다 안전함 safety, 만족감 satisfaction, 연결감 connection
예를 들면, '비즈니스가 망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면 '만족감'을 선택해서, 내 인생이 지금도 괜찮은 이유,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부분에 대해 음미하고, 그 만족감이 나를 감싸 안도록 상상을 하며, 최소한 10초 이상 억지로라도 그 기분에 머무른다. 만약 사람들로부터의 '거절감'에 내가 아파하고 있다면, 반대로 내가 그래도 이 사회와 연결되고, 사랑받고 있는 순간들을 기억해 내고, 그 사랑받는 느낌, 연결감에 10초 이상 '억지로' 머물러 있어 보려고 한다. 만약 내가 미래나 현실이 어떤 이유로든 불안해지고 무기력함과 약함을 느낀다면 '나의 강함, 나의 오뚝이 같은 회복탄력성'을 떠올리며 억지로 그 기분에 머물러 본다.
실제 이건 우리의 뇌를 다시 training 시키는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 뇌에는 자극과 반응이 반복되면, 이 뉴런들의
연결이 점점 더 두꺼워져서, 더 자동적으로 '불안, 우울' 등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고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반응’).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자동으로 올라올 때, 반대되는 기분 좋은 느낌/내가 필요한 안정감을 떠올려 주는 연습을 하면, 뇌의 뉴런 회로가 새로 생성되고, 더 많이 연습할수록 그 회로가 두꺼워져서 지나치게 강한 불편한 감정들이 자동으로 올라오는 것이 점점 덜해진다고 한다 (Hanson, R. (2013). Hardwiring Happiness: The Practical Science of Reshaping Your Brain-and Your Life. Random House).
올해 1월 Good Year Box를 다 먹은 인스턴트커피 병을 이용해 만들었다. 주방 벤치 위해 이 병과 작은 메모지와 펜을 두고 생각날 때마다 소소하고 작은 감사한 순간들을 적어서 넣는다. 2024년 12월 31일에 다 꺼내서 읽어보며, '아 힘든 한 해만은 아니었구나, 그래도 참 감사한 한 해였다' 스스로 말해주고 싶어서.
사실 2023년 말에 한 해를 돌아보는데, 내 파트너는 '내 2023년 한 해는 참 너무 좋고, amazing 한 한 해였어'라고 너무 행복하게 말하는데, 나는 ‘올 한 해 2023년도 참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라고 말하게 되는 것에 충격을 먹었다.
’왜 쟤에게는 2023년이 행복했고, 나는 힘들게 느껴졌지? 모든 일을 거의 다 같이 겪었는데도 (좋은 변화들). 2024년 말에는 나도 ‘올 한 해 참 괜찮았다’라고 말하고 싶어! 2024년의 삶에서도 여전히 예상치 못한 불편하고 스트레스받는 일들을 피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한 해가 끝날 때 스트레스받는 일만 기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이런 마음이 들었고, 이 것이 동기 부여가 되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론
"I am here to help you, not to judge you"
(Perel, E. (2017). The state of affairs: Rethinking infidelity-A book for anyone who has ever loved. Hachette UK)
Esther Perel이라는 저자가 심리치료사로서 자신이 간직하는 태도를 위의 책에서 나누었는데, 심리치료사로서 참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인생은 울퉁불퉁 한 치 앞 알 수 없는 꼬불길을 가는 여행이다. 내 마음이 하는 여행. 그리고 나의 임무는 그런 나의 마음 여행을 도와주는 것. 나는 나를 도와주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거지, 나를 평가하고, 닦달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러니 나의 불편한 마음도, 내 삶의 힘든 부분도 있는 그대로 봐주고, 동시에 내 인생, 나 자신 괜찮은 부분도 같이 봐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