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
소장한 만화책만 8,000권, 같은 만화책도 세 질씩이나 갖고 있는 남자….
네이버에서 만화 관련 서비스를 시작하려는데 어쩌다 보니 소문난 만화광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는 뜬금없이 프로그래머 일을 배워 네이버 개발팀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준구였다.
네이버에 만화팀조차 없던 시절, 김준구는 만화와 연관된 아이템을 찾아내며 그야말로 스스로 일을 만들어갔다. 인터넷 불법 유통 문제 속에서 위축되는 출판 만화 시장을 보며 ‘만화를 계속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실현 가능한 작은 아이템부터 회사에 제안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일을 현실화시켰다. 불법, 탈법 빼고는 안 한 일이 없을만큼 모든 것을 해봤다고 할 정도다.
2005년 네이버가 네이버웹툰 서비스를 출시할 당시만 해도 ‘웹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김준구는 소수의 팬들만 읽던 만화를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이를 위해 당시 만화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독자들이 작품을 접할 공간, 즉 프로모션 플랫폼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서비스 기획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기보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내는 데 핵심이 있는 것 같다.
K는 가장 먼저 서비스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명확히 규정했다. 경쟁사에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용자를 선점하고 있었다. 네이버웹툰은 동일 유저를 대상으로 하기보다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하겠다고 생각했고, 초기에는 10대 학생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 다음 다양한 연령대를 포괄할 수 있게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은 결과적으로 주효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시장, 사용자, 프로덕트, 자기 자신’ 이 네 가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시장과 사용자는 바꿀 수 없으니 프로덕트와 자기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 콘텐츠를 디지털화해 서비스했는데,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직접 작가들을 발굴해 작품을 수급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네이버웹툰은 2006년 1월 ‘도전 만화’ 코너를 론칭했다. 누구나 이 곳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올릴 수 있게 한 것이다. 나아가 해당 작품이 이용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면 실제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기존에 만화를 보지 않던 이용자들도 거부감 없이 웹툰에 다가오게 됐다. 독자층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만화의 장인 웹툰 시장이 형성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네이버웹툰은 조석, 정다정, 기안84 등 다양한 장르의 웹툰 작가들을 발굴했고, 요일별 연재 시스템, 유료 콘텐츠 등 웹툰 IP 비즈니스를 안착시키며 국내 온라인 만화 시장을 개척했다.
또한 이는 텍스트 광고, 이미지 광고, 콘텐츠 유료 판매 중 각 작품에 가장 맞는 방식을 취하는 ‘선택형 수익 모델’ PPSPage Profit Share의 구상으로 이어졌다. 작가들의 콘텐츠 제공 만족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웹툰 작가 마인드C의 말처럼 네이버웹툰은 작가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준구는 네이버웹툰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작은 일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롱런할 수 있는 지속적인 동기 유발이 되고 결국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창업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기보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잘 풀릴 것이라는 조언이다. 그는 한국의 웹툰을 아마추어 작가의 작품까지 모두 본다고 한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으로 36년 치 계획을 작성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3분의 1쯤 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무언가에 미쳐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조직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3분의 2는 무엇일까. 네이버웹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디즈니의 수많은 캐릭터들이나 심슨과 같은 창작자의 가치관이 투영된 상징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지구촌이 배꼽을 움켜쥐게 만드는 걸 넘어 네이버웹툰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본 포스트는 《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을 웹연재용으로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