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이야기>
우울증, 이 의학적 상태를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다. 현재 ‘우울한’이라는 단어는 다소 기분이 나쁜 사람이나 실제로 기분을 저하시키는 질환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사용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울증을 단순히 작은 문제로 치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한 번씩은 우울해지지 않는가? 우리는 단지 이를 극복할 뿐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경험만으로 판단하며, 뇌는 자동적으로 경험을 부풀리고 확대 해석하거나 다른 사람의 경험이 우리와 다르면 이들 경험의 의미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한다. 자신도 우울해봤으며 이를 극복했다는 것만으로 정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문제를 가볍게 치부하는 것은, 자신도 종이에 베어본 적이 있으므 로 팔을 절단한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울증은 굉장히 무기력해지는 상태이다. 우울증은 아주 심각해서, 결국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상태로 몰아가기도 한다.
우울증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우울증은 감정적 질환이므로, 감정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는지는 경우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강한 절망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다 결국 곧 죽음이 닥칠 것만 같은 경계심에 휩싸이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뚜렷한 감정 변화 없이 공허감을 느끼며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우울한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화가 나고 불안한 사람도 있다.
여기서 우울증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왜 힘든지 일부 이해할 수 있다. 한동안 모노아민 가설이 가장 보편적인 이유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뇌가 사용하는 신경전달물질 중 상당수는 모노아민류이며, 우울증 환자들은 모노아민의 활동이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뇌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로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게 모노아민 가설의 내용이다.
가장 잘 알려진 항우울 치료제는 뇌에서 모노아민의 활동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SSRI다. 세로토닌(모노아민의 하나)은 불안, 감정, 수면 등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이는 다른 신경전달물질 체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세로토닌의 수치가 바뀌면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세로토닌이 분비된 뒤 시냅스에서 재흡수되지 않도록 하여,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인다.
하지만 모노아민 가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이유는 실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세로토닌 농도를 즉시 끌어 올린다. 하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몇 주가 걸린다. 왜 시간 이 오래 지나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이론이 성립되지는 않았다. 이는 자동차 기름이 다 떨어져 기름을 채워 놓고는, 한 달이나 지나서 시동이 걸리는 격이다. ‘연료가 없음’이 문제일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다른 가능성도 많다. 전대상피질 역시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전대상피질은 심박수 관찰, 보상에 대한 기대, 의사결정, 공감, 충동 억제 등 많은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일부분이다. 게다가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전대상피질의 활동이 더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대상피질이 고통에 대한 인지적 경험을 처리하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담당하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역시 주요 연구 대상이다. 하지만 다른 이론에서는 우울증 메커니즘은 특정 뇌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다고 주장한다. 신경가소성, 즉 뉴런 간의 물리적인 연결고리를 새로 형성하는 뇌의 능력은 학습 및 뇌의 일반적인 기능의 상당 부분 기초가 되며, 우울증 환자의 경우 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앞의 모든 이론들은 우울증의 원인보다는 결과와 좀 더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우울증에 관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울증이 매우 실제적인 증상이며, 때때로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은 끔찍한 기분 말고도 인지능력도 저해시킨다. 많은 의사들은 우울증과 치매를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 배운다. 인지 능력 테스트에서 결과만 놓고 보면,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와 굳이 테스트를 끝내야 할 동기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서로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치매 진단을 받고 우울증에 빠져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도, 우울증과 치매의 치료 방법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테스트를 살펴보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부정적인 자극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임을 알 수 있다.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여러 개의 단어 목록을 보여주면, 이들은 중립적인 단어(‘잔디’)보다 좋지 않은 의미(‘살인’과 같은)에 더 집중한다. 우리는 뇌의 자아편향적 특성, 즉 우리가 자신을 좀 더 돋보이게 하는 것에 더 치중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우울증은 이를 뒤집어 놓는다. 긍정적인 것은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다. 반대로 부정적인 것은 100%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우울증이 발생하면 이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을 ‘갑자기’ 겪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암, 치매, 신체마비처럼 다른 심각한 상황과 함께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의 큰 문제점, 아니 아마도 우울증의 바로 그 문제점은 ‘정상적인’ 행동과 사고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땅 위에 있는 사람처럼 ‘공기를 마시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우리가 인지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뇌를 통해 처리되며 걸러진다. 그런데 만약 뇌가 모든 것이 아주 끔찍하다고 결정한다면, 이는 인생의 모든 부분에 있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울증 환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가치는 매우 낮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전망이 너무 절망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없으면 가족, 친구 혹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더 잘 살 거라 믿는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은 사실 상대에 대한 배려의 행동이다. 아주 심란한 결론이긴 하지만 ‘똑바로’ 생각해서 도달한 결론은 아니다.
우울증은 일반적인 질병처럼 눈에 보이거나 전염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울증을 가혹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로 인정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문제라고 부인하기 쉽다. 그리고 이를 부인함으로써 사람들은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안심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기분이 더 나아진다고 해서 이들을 이기적이거나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기적인 행동으로 따지자면 이런 태도가 오히려 더 이기적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아주 무기력한 정신적 장애 때문에 자기 존재까지 흔들리게 되는 이 증상을 쉽게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특정 견해를 가지게 되면, 그 생각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들다.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생각을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증거 앞에서 자신들도 생각을 바꾸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 때문에 가장 심각한 우울증 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우울증이 더 악화되며, 이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 본 포스트는 《뇌 이야기-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중 'Part8-01'을 요약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