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거북, 유설화 지음, 책 읽는 곰.
어쩌다 보니 나의 인생 그림책이 된, <슈퍼 거북>. 신기하게도 아이들도 이 그림책을 좋아라 한다. 어른이 된 나와 아이들이 이해하는 깊이가 다를 것 같은데. 치료실에 오자마자 "오늘도 슈퍼 거북 책 보여주세요!"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놀랐던 적이 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거북이의 모습이 아이들의 눈에도 재미를 넘어서서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의 모습,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나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속도를 조절하리라 다짐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결혼을 하기 전에도 늘 내가 정한 목표에 따라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아이를 양육하는 도중에도 나의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때로는 아이가 내 목표를 이루는데 걸림 돌이 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기 비하는 아니지만 내가 그렇게 능력이 타고난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사회에서 알아주는(?) 의사나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여자 혼자만의 능력으로 가정 경제를 유지할 만큼의 벌이가 되지 못한다. 육아에 대한 탈출구가 공부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없었을 때, 싱글이었을 때에도 일로서 크게 인정을 받는다거나 공부로 이름을 알린 것은 아니었으니.
늘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가려고 하는 걸까? 블로그도 온라인 상담도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또 무엇을 손에 쥐려고 하는 걸까?
부모님들이 아이의 언어발달에 대해 문의를 주실 때 안정적인 애착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나는 집에서는 아이의 사소한 요구에도 버벅거리는 그런 엄마인 것 같다.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도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지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임상현장에서 간접적으로 그렇게 경험했음에도.
밤마다 이런저런 작업을 한답시고 신랑과 깊이 대화를 나누며 침대에 누운 지도 꽤 된 것 같고, 아이는 늘 재우기 바빴던 것 같다. 적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일을 아예 안 하기에는 경제적으로나 나의 개인으로서의 자아 성취감을 고려해보았을 때에도 무리가 될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생각나게 된 건데, 슈퍼 거북 그림책을 보고 아이들이 웃음을 짓는 것은 아이들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른만큼 남의 시선을 신경써가면서 애를 쓰지 않기 때문에. 거북이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대학생 때 세상에서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신이 보았을 때 우스워보일 수도 있다고 누군가 해준 이야기처럼.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또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소중한 것을 늘 마음 속에 되새겨야겠다. 육아가 없었다면 지금의 '엄마 언어치료사'로서의 나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