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기쁨, ebs제작진 지음, GREENHOUSE.
서점에서 발견한 책, <놀이의 기쁨>. 뻔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하고 펼쳐 보았다가 '꼭 사야겠다'라고 생각이 바뀌어서 구입한 책이었다. 역시나 그런 느낌이 온 책은 잘 읽히기도 하고, 찔리기도 하고, 밑줄도 그을 부분이 많다.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은 내 아이가 두 돌이 지날 무렵부터 깊이 깨달았지만 이 책은 꽤나 비수를 꽂는 문장들도 많았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를 돈 주고 배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더 부정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듯하다. 내가 어릴 때는 골목이면 동생들이 나와있었고 빌라 곳곳마다 담벼락은 주말이면 아이들로 가득했다. 인천 빌라촌이었는데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늘 가득했던 곳이었다.
모든 게 놀이였다. 엄마놀이, 선생님 놀이, 인형놀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OO+놀이'로 창조될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8살이 되던 해부터 눈*이 사교육을 시켰는데 당시만 해도 늦은 시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여전히 6, 7살 동네 동생들은 사교육을 받지 않았고,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 전부였던 90년대 중반. 그런데 점점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마주하는 직업이지만 아직 놀이학교와 영어유치원, 숲유치원의 큰 차이점이 머릿속에 잡히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문화센터를 갔었는데 (당시에는 코로나가 없었다) 집에서는 치우기 부담스러워서 꺼내놓지 못하는 각종 재료들이 바닥에 있는 것이 신기했다.
재료만 있다면 엄마도 충분히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겠지만 이 생각은 핑계에 불과했고 얌전하게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아주 가끔 미역을 꺼내 주는 것이 나의 돌 이전 온이 육아의 전부였던 것 같다. 안 그래도 이유식을 시작해서 저절로 촉감놀이가 시작되는 시기에 일을 더 벌리고 싶지 않았고 문화센터 다녀온 이후에 유독 낮잠을 잘 자는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두 번째와 닿았던 내용은, 아이의 선택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이가 선택한 놀잇감으로 놀기.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선택한 놀잇감이 아이를 통제하기 더 쉽고 어딘가 학습적인 준 것 같은 엄마만의 만족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언어치료에서도 늘 강조하는 것은 '아이가 선택한 장난감으로', '아이의 주도에 따라' 가정에서의 놀이 세팅을 구성하는 것이지만 나 역시도 이 부분에서 늘 갈등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한창 숫자와 알파벳을 알아가고 있는 온이에게 신기한 마음에 더 학습적인 자극을 주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수 없다. 33개월 아이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샘솟는데 6, 7살 아이들에게는 어떠할까.
그리고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자기 조절 능력. 자아 효능감.
학습만을 목표로 놀이를 한 아이들은 '자기 조절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자기 조절 능력,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능력,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출하는 방법을 배워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러한 요소들이 가장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 아이의 교육 목표에서는 눈에 두드러지는 학습적인 것들이 1순위가 된다.
마치 부모가 아이의 개별화 교육 계획안을 짜듯이.
1. 숫자 1~5까지를 센다.
2. 글자 ㄱ~ㄹ까지를 읽고 쓸 수 있다.
3. 영어 A가 들어간 낱말을 읽는다.
이런 셈이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생기면 내 아이의 교육 방법에 대해 되돌아보지만 그때뿐인 것 같다. 스마트폰, 아이패드도 거기에 큰 일조를 했다.
나에게도 반성이 되는 책이었다. 최근 온라인 상담을 통해 부모님들께 가정에서의 놀이 방법을 안내하면서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계산대로 책을 들고 갔는데 오히려 그 이상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 아이가 때로는 천재 같고 내 아이가 누구보다 인격적으로도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모든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아이는 조금 더 일찍 드러내고 어떤 아이는 조금 더 감추어두었다가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 이후, 청소년기 때 드러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기에 앞서서 생각난 것은, 24~36개월 아이들이 온 집안의 모든 것을 꺼내고 다시 꺼내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역사는 아이가 엄마를 힘들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 아이에게는 하나의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그만큼 고민도 격상되는 부모님들께 이 책을 조심스럽게 건내드리고 싶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놀이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엄마아빠들에게. 답답한 집에서 널려있는 양말빨래들이 최고의 장난감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