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6월에 작성한 이후 임시저장을 했던 글인데, 뒤에 부분 글을 모두 삭제했다. '한글'에 대해 깊게 글을 쓰고 싶었는데 사실 자신이 없었다. 논문을 찾아보고 명확한 근거에 의해 글을 작성해야 하는데 한글교육에 대한 의견은 학자들마다 너무나 상이했다.
(그래서 다시 쓰는 글) 치료실 안에서 그림책을 보여주다가 보면 간혹 부모님들께 한글 공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학령기 아이들의 경우는 그림책과 한글 교육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굳이 언어치료 시간에까지 그림책을 읽어주어야 하나?라는 의문을 보이시는 분들도 계셨다.
나 또한 그림책을 영유아에게 읽어줄 때와 학령기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는 목소리 톤과 목표 자체가 달랐다. 학령기로 넘어갈수록 그림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언가를 해야만 목표가 달성된다는 생각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활동지를 만들고 활동지를 채우고 멋지게 사진을 찍고 난 후에야 오늘 무언가 한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아동도 나름 만족을 한다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고 있었고 부모님의 반응 또한 결과가 담긴 페이퍼를 보여드리면 꽤나 만족스러워하셨다.
그림책을 보면서 한글을 학습하는 것에 대한 반감은 없다. 내가 한글학자는 더더욱 아니고 그림책에 대해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한 것도 아니니까. 나는 단지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면서 그림책에 빠져든 엄마 중 한 명이고, 직업이 언어치료사이던 터라 수업 시간에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니 아이들의 크고 작은 경험을 발견한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림책을 보여주는 목적이 한글에 대한 노출을 넘어서서 '한글 교육'이 되면 아이들에게 책이 주는 이미지는 점점 '부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디저트도 맛있게 먹는 순간은 레시피가 궁금해지고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지만, 누군가가 재료를 알아맞히기 위한 간단한 테스트를 한다면 디저트 본연의 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상금 선생님의 <어린이와 그림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가르치고 싶은 기분은 제쳐두고 오로지 이 책을 재미있어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를 생각하세요.
생각해보니 내가 만난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안에서 교사의 지시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늘 소외되었던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친구도, 친동생의 친구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했던 중학생 친구도, 이제 막 한글을 배우려고 시도했던 7살 친구들도. 내가 그림책을 교육용 매개체로 가지고 왔을 때는 전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책 한번 봐봐! 선생님이 우리 OO(이) 위해서 서점에서 어제 열심히 고른 책이야!" 혹은, "선생님이 이 책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안 가지고 올 수가 없었어!"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며 내가 빠지게 된 그림책을 아이들 각각에게 읽어주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글자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이도, 글씨 쓰기 자체를 거부했던 아이도, 유치한 책은 보지 않겠다던 아이도, 책상 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모습에서 점점 고개를 드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한글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나온 그림책들도 요즘은 너무나 잘 나왔다. 내가 보여주는 그림책의 목적은 한글을 가르치기보다는 그림책이란 이렇게나 재미있고, 글자를 알면 선생님처럼 그림책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힘들 때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어쩌면 한글 공부의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그림책 활동지를 꼭 아이와 함께 채워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거창한 활동지가 아니면 어떠한가. 평소에 사용하던 노트에 느낀 점만 어휘로 표현해보아도 최고의 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읽어줄게. 너는 그림 보면서 귀 기울이기만 해도 돼!
고학년 아이들의 한글 공부가 필수적인 이유는 학교 수업도 있지만 글을 읽음으로써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글을 읽기에 어려움을 보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매일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어떨까?
그림책이 만병 통치약은 아니지만, 고된 온라인 수업과 학교 생활 속에서 위로의 시간과 동기 부여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학년이더라도 그림책은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읽어주시는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