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월 육아, 그리고 일과 공부.
학업을 다시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20대, 신혼 때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던, 일만 조정되면 할 수 있었던 일이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해졌다. 아이는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단 10분의 시간조차 허락해주지 않는다.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짜증을 내는 빈도 또한 높아졌다. 작은 물건을 던진다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 속에는 '엄마, 어제 나 어린이집에 오래 있어서 힘들었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게 때로는 느껴진다. 그렇다고해서 7시 넘어서까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아이는 점점 엄마를 더 찾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지만 정서적으로는 엄마를 더 의지하는 것 같다. 마치 어른들이 단짝 친구에게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고 그 친구와만 함께하고 싶은 기분과도 비슷한걸까.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고민을 이야기할 때마다 선배 엄마들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 '당신의 인생도 중요하다' 혹은 '이 시기는 다시 오지 않아요.' 전자의 말도 후자의 말도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후자의 말은 마음에 콕 박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말의 뜻 또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시기, 아기띠에 의존해서 대롱대롱 덧신 신은 발을 흔들던 아이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간간히 구글 포토가 그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오동통한 다리를 실제로 만져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거워던 어깨, 자꾸 자세가 흐트러지는 아이를 힙시트에 바르게 앉히려고 애쓰던 당시의 느낌만 기억날 뿐이다.
옷방에 작은 탁자와 노트북 그리고 논문을 잔뜩 가지고 와서 은신처를 만들었다. 아이는 물론 이 공간에서조차 엄마의 자유시간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사실 자유시간인지는 모르겠다.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발악하는 내 모습이 때로는 애처롭기도 하고 아이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감정이 섞여버린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속에 저자들은 대부분 프리랜서다. 혼자 사는 분도 계시고 나처럼 전투육아를 하는 분도 계신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책은 공간에 대해 그것도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는데. 제목 탓인지 '네가 기쁘고 즐거운 일을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공부는 또 할 수 있지만 아이의 이 시기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공부하기 싫어서 생긴 하나의 핑계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방에서 과제를 하며 놀아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아이를 외면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거절감을 심어주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정답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제 1의 직업은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