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해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출산하는 순간만 기다렸다. '막달까지 입덧을 하는 임산부' 였고, 아이의 모습이 너무 궁금했다. 성격이 급한 탓도 있었다.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좋은거야.' 친정엄마의 말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후각을 마비시키지 않고(입으로 숨쉬지 않고) 샴푸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감각적으로 모든게 예민한 사람이었다.
아이를 출산한 이후, 친정엄마의 예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해왔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랄수록 소통이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이렇게나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아이가 주는 사랑에 과분했다. 과분하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까지 몸은 떨어져있어도 머릿속 한 켠은 늘 아이의 자리가 있다. 이렇게 출근 전에 글을 쓸 때도, 일을 할 때도, 퇴근을 할 때도.
때로는 주말이 오는게 두려웠다. 우리는 사랑하는데 왜 떨어져있어야 애틋해질까.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듯 아이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하루종일 엄마를 찾는 아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엄마" 부르는 소리를 하루에 100번 넘게 들었다는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었다.
어제는 아이와 함께 오래간만에 카페에 갔다. 그림책을 가지고 카페에 간게 얼마만이었는지. 아이는 책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은듯했다. 옆 테이블에도, 뒤 테이블에도, 아이를 하원시키고 온 아이 엄마들이 보였다. 나의 아이보다 두 살 정도는 더 어려보였다. '나도 매일 아이와 하원하고 산책하던 때가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카페 데이트를 강제적으로 자제하게 되어서 너무 힘들었다. 육아가 힘들고 지칠 때는 엄마가 좋아하는 곳에 아이와 함께 가는 것도 건강한 육아를 위한 방법인 것 같다. 이러한 일상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해와서 더 힘들고 지쳐있었던걸까. 아이스크림 2500원, 커피 3000원. 6천원이면 이렇게나 달콤한 휴식을 짧게라도 누릴 수 있는데.
아이가 카페에서 돌아다니지 않고 착석을 유지할 정도로 자라기 전까지는 사진만 찍고 나온 적도 있었다. 앉아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함께 물을 마시고, 대화가 오고가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신기했다. 오래된 친구와 카페에 온 기분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의 자리는 친구로 채워지고, 언젠가는 이성친구와 데이트를 갈텐데. 카페에서 엄마와 그림책을 보던 때를 아이는 이후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몸은 지치고 힘든데 머리로는 이 순간을 언젠가는 그리워하게 될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