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엄마는 언어 선생님이 아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나는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이 착각의 공식을 '내 아이'에게 대입할 때 엄청난 오류가 벌어지게 된다. 아이를 키울수록, '한 아이'의 내면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아이들을 너무 교과서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는지. 깊은 반성에 빠지게 된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은 자신도 모르게 '틀'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토끼는 귀가 길고, 고슴도치에게는 가시가 있다.' 이렇게 누가 봐도 사실인 것을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진다.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확장시켜주고 인정하고자 노력하지만 언어치료 현장은 그렇게 여유 있게 돌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나의 아이와 미술활동을 해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아니지, 얼굴은 살구색이지. 에이, 눈은 두 개잖아. 하나, 둘. 맞지?" 여러 설명을 늘어놓는 순간 어느덧 지적이 되고 아이는 풀이 죽어간다. "나 안 해! 그냥 토토(애착 인형)랑 놀 거야!" "여휴, 그렇지 뭐. 그래. 여기 정리는 하고 가!"
예민함이 극에 달했을 때는 서로 이렇게 최악으로 끝나버리고, 그나마 감정 컨트롤이 될 때는 "엄마가 미안해. 너무 온이 생각을 인정 안 해줬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야 멋진데? 팔이 보라색이니까, 더 예쁘다."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아이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집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하기 원하고, 그리고 놀고 싶어 한다. 또래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고, 놀이를 재창조하고 싶어 한다. 이런 아이의 마음은 읽어주지 않은 체 정해진 답을 은근슬쩍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엄마인 나의 만족을 위해 그림책 읽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오늘도 반성문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