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면?
18~24개월 무렵을 '언어폭발기'라고 한다. 더 넓게는 18~36개월까지의 시기를 볼 수 있다. 아이들마다 언어발달의 속도에 있어서 개인차가 있고, 발달 순서 또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발달 순서에 있어서 옹알이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문장을 산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근차근 언어발달의 계단을 밟아가고, 어느 순간, 아이는 부모와 '대화'를 하게 된다. 물론, 대화의 발달 또한 처음부터 어른들의 대화처럼 유창하고 세련된 경우는 거의 없다. 가정에서의 경험과 또래들과의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다.
나 또한 아이가 24개월 미만이었을 때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가 어느 정도 말을 하는가'였다. 언어치료를 학부와 석사에서 배웠지만 내 아이에게 적용할 때에는 냉정해지거나 관대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중간은 없었다. 어떤 날은 한없이 아이에게 언어자극을 주며 마음의 평안이 오다가, 어떤 날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아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1급 언어재활사 시험을 준비할 때 <아동 언어장애의 진단 및 치료> 책을 보았는데, 학부/석사 때와는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달라졌다. 언어발달 이론을 다시 외우는 것도 일이었지만, 책에 제시된 발달대로라면 나의 아이는 '언어발달이 느린' 축에 속했다. 24개월이 되어갈 때까지 두 단어 조합은 나타나지 않았고, '맘마, 마, 빠, 무, 띠띠, 까까' 정도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 아주 가끔 이 단어들 중에 몇 개를 붙여서 말할 때도 있었는데 다시 시켜보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림책을 열심히 읽어주었는데 할 수 있는 말이 열 개도 안되다니!' 책장에 놓여있는 그림책들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이후, 한두달 뒤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쩔수 없이 휴원과 강제휴가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시 중고서점으로 몸은 움직이고 있는데, 카드결제를 하는 순간 '왜 읽어주어야할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 아이가 24개월이 되어도 단어 산출이 적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용언어는 정상이니까'라는 나만의 판단에서였다. 지시 따르기(친숙한 물건 가지고오기, 가리키기), 행동 모방하기, 간간히 상징행동(흉내내기)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마음이 한껏 놓였다. 그리고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가끔 질문을 하면 아이는 책을 보며 정확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었다.
수용에 크게 이상이 없다면, 표현은 이후에 따라올 수 있다.
아이가 새로운 음소/음절을 모방하고 있다면 꾸준히 자극을 주면서,
서두르지 않고, 아이의 반응을 유도해주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 부모상담 때 전해드렸던 말을 나의 아이에게 차근차근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토끼'를 /띠띠/로 발음하고, '코끼리'를 /꼬띠띠/로 발음하였을 때에는, 정확한 단어를 들려주었다. 그림책을 읽어주었던 이유가 온전히 '언어발달 촉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림책은 아이가 엄마의 말을 듣고, 말소리를 기억하고, 간단한 문장을 듣는 기초를 마련해준 도구였다.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위해 시작하였는데 돌이켜보면 언어발달을 위한 기초를 잡는 도구가 되어 있었다.
내 아이가 자라고, 그림책 육아를 시작한 후배 엄마들께 조언 아닌 조언(!)을 드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이 명확해질 수 있었다. '말'은 '듣기'에서 그 틀이 세워진다는 것을. 엄마/아빠의 언어로, 선생님의 언어로 책을 읽어주고, 눈을 마주하고, 아이의 반응을 기다려주는 것.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문화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나에게 "그림책을 읽으면 말이 빨리 트이나요?" 라고 질문한다면, 이제는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다.
"네. 아이들마다 다르지만 언어발달을 촉진하는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 말을 많이 듣고, 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느껴야해요. 그리고 다소 부정확한 발음이더라도, 모방해보고, 시도해보아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은 엄마/아빠가 매일 열 수 있는 작은 언어발달 교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