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기록하는게 좋은 엄마 언어치료사 이야기.
2018.02.09. 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조리원 퇴소와 함께 소위 말하는 '그 전쟁'이 시작되었다. 100일 이후 복직은 커녕 아이가 자는 시간 외에는 내 시간이 없었고, 그 자는 시간조차도 정말 불규칙했다. 하루는 아이가 새벽이 지나서도 쉴 새 없이 울어서 친정 엄마가 달려온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10년 가까이 가르쳐왔고, 그것도 디테일하게 언어발달 부분을 봐왔고, 상담을 하게 되면 신체적인 발달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정작 내 아이에게는 머릿속이 백짓장이 되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하는건가?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어가서 갈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그건 그냥 나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행동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리원 동기들과 연락을 하고, 어떤 기저귀가 발진이 덜한지, 어떤 분유가 좋은지, 100일은 셀프 백일잔치가 좋은건지 그런 것들을 알아보기만 해도 하루가 다 지나가있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 사랑스럽고 옹알이 소리, 눈맞춤, 안길 때의 그 느낌 하나하나가 지금도 다 기억이 날 만큼 소중했다. 무언가를 해야 에너지가 샘솟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게 버거울 뿐이었다.
한 가지 찾은 답은 육아서적인듯 아닌 책을 읽는거였다. 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부부의 책이었다. 유명한 출판사도 아니었다. 책의 줄거리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던 부부에게 생긴 아이에 대한 이야기. 그 부부는 유산을 한 번 겪은 부부였다. 작가분이 일을 하면서 뱃속에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지금 찾아온 아이가 너무 소중하다고. 작가님의 블로그를 들어가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글을 쓰는 것'.
나도 부족하지만 묵혀 두었던 블로그에 육아 이야기, 언어치료 이야기를 하나둘씩 풀어나갔다. 아이가 잠든 뒤에 쓰는 글은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특히, 언어치료 교재교구 소개글을 쓸 때는 이웃 수가 늘어나는게 한 눈에 보였고 나와 비슷한 육아의 길을 가는 선배님들과도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답이 '그림책'이었다. 임신했을 때 다짐했던 것 중 하나였는데. 아이에게 전집이 아닌 낱권의 그림책을 골라서 보여주고 싶었다. 한 방송국의 유명 아나운서가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그림책 채널을 오픈하게 되었는데 그 채널 영향도 컸다. 그리고 괜한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언어치료사 엄마는 전집을 사지 않는다. 내가 골라준다는.
처음엔 어떤 책을 골라야할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분명 수업을 할 때는 그림책을 활용한 적이 있었는데. 내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포부와 다짐으로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중고서점에 갔는데 아는 책이 하나도 없었다. 그림책도 공부가 필요하다는걸 느꼈다.
그림책 관련 책을 보이는대로 구입해서 보기 시작했다. 작가분들의 공통점은 육아를 하면서 그림책에 빠져들게 되셨다는 점인데. 그림책이 육아 우울증을 해소하는데 한 몫을 크게 했다는 점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림책을 보면 어릴 때 추억이 소환되기도 하고 내가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출근하는 여자들이 부럽고 퇴근하는 여자들이 부럽고 sns속 친구들의 모습이 부러웠지만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그런 감정들을 모조리 잊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아이도 그림책을 좋아했다. 30개월이 되어가는 지금도 약간 편식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책이 너덜너덜해지고 하루에도 10번이 넘게 같은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뿌듯했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아이에게 웬만하면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영상예배를 어쩔 수 없이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6개월이 될 무렵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직장 구인 공고가 떴다. 신이 나에게 주시는 자리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친정엄마 도움을 구하기도 좋았고, 수유를 서서히 끊기도 좋았다. 일주일에 두 개, 5개, 일주일 2일 출근, 3일 출근. 이렇게 서서히 늘려갔고 그 다음 해에는 시댁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고 나도 나의 일을 조금씩 더 늘려갈 수 있었다.
여전히 마음 속에 '병원 정규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작년 12월 이제 아이도 어린이집에 적응도 하고 24개월이 지나가니까 지원해보려고 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지금 직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곳에 파트타임으로 출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조건은 없었다. 아이 등하원을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그대로 돈이 나가는 거였고, 무엇보다 아이의 정서가 트이는게 느껴져서 남에게 맡기는게 불안했다. 친정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아이 등원을 챙겨줄 여력이 되시지 않았다.
안정적인 길이냐 프리랜서냐. 아이를 남에게 맡기느냐(친정엄마 포함) 내가 그래도 보느냐. 아이 엄마는 평생 이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걸 배우고 있었다. 결국 지금 다니는 직장을 유지하면서 새로 개원하는 소아정신과에 프리랜서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여전히 근무체계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아이 등하원은 적어도 일주일에 2일 이상은 내가 시킬 수 있어서 그 부분은 감사한 것 같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수업 때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그림책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발음이 좋지 않은 아이들, 학교에서 소위 '공부 못하는 아이들' 이미지의 아이들에게 그림책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코웃음이 나왔다.
그림책으로 오랫동안 육아를 하신 분의 블로그를 들어가다보니 또 다른 블로그가 연결이 되고, 하나의 책을 알다 보니 또 다른 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인스타그램은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작가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그렇게 아름아름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그림책을 도입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선생님, 오늘은 무슨 책 읽어줄꺼에요?"라고 무관심하듯 묻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게 되었다. 그림책은 힘이 있었다. 육아 우울증을 해소하는 힘. 학교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던 아이의 마음을 조금씩 여는 힘.
비록 40분 세션 안에 짧게 들어갈 때가 더 많지만 꾸준히 그림책과 만나고 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내가 소개팅을 받듯이 소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간들이 늘 완벽하고 변화가 뚜렷하고 드라마틱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질 때도 있고, '좋아요' 한 단어로 감상평을 끝낸 적도 있다. 무겁게 폭염 속에서 쇼핑백 안에 그림책을 넣어서 출근한 보람이 그렇게 끝날 때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책과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두서가 길었다. 그림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나의 출산여정까지. 그림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다 아이 엄마는 아니지만 출산 여정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이유가 있구나. 또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19로 인한 불안감, 이 또한 그림책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이여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계속 고민하고 풀어나갈 수 있다는 그 힘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