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사회적으로 성 역할의 평등이 대두되고 있지만 여전히 육아는 엄마의 몫이 더 크다. 출산의 과정을 거친 이상, 바로 직장에 복귀를 하는 것은 내 몸에게도 너무나 가혹하다. 육아휴직 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프리랜서 엄마는 자연스럽게 육아의 할당량을 더 받게 된다. 아기는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인데 출산 후 100일 전까지는 나의 고단함이 아기의 사랑스러움을 덮는다.
아이가 더 크면 나아질 줄 알았다. 직업을 다시 갖게 되면,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면, '다시' 무언가를 한다면, 내 자리를 찾고, 그 과정에서 출산 이전의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착각의 늪은 오히려 좌절감만 줄 뿐이었다. 육체적인 고단함을 벗어나니 정신적인 싸움이 시작되었고, 사회적으로 맡은 업무의 양이 늘어날수록 아이 앞에서 날을 세우는 경우도 늘어났다.
복귀 후, 한 1년 간은 출근하는 것 자체가 숨이 트이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24개월이 되었을 무렵, 코로나를 함께 맞이하게 되었다. 내 힘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이제야 조금씩 내 나름의 퍼즐이 맞추어지고 있는데, 퍼즐 조각이 산산조각이 났다. 조각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 아이의 발에 치여서 소파 밑, 벽과 맞닿은 곳으로 들어가 버린 우리 집 퍼즐조각처럼. 나의 계획도 그렇게 사라졌다.
힘겨운 팬데믹 3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여전히 바이러스에 대한 염려를 안고 살아간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시간이 더 생길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변수를 안고 살아가는 게 엄마의 삶이라는 것도 이제야 조금씩 터득되고 있다. 불안감 최고조인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었던 시간은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글을 써서 얻은 수익이 큰 것도 아니었고 독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한 2년 정도의 수익은 0원이지 않았을까!), 유일하게 숨을 트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흔히 말하는 금융치료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먼 곳으로의 여행도, 그 순간은 엔도르핀을 가져다주었지만, 금융치료 이후에는 영수증과 카드 할부가 남았다. 지인들과의 즐거운 만남 이후에는 돌아오는 길에 sns에 사진을 올리고 나면 다시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사로잡히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심리상담을 받아보자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여러 가지 근거를 만들기 바빴다.
글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까, 'ㅇㅇ치료'를 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온전히 나와의 독대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등원 이후, 육퇴 이후, 글을 쓰는 시간은 나의 생각과 마음을 돌아볼 수 있도록 데려다준다. 그렇다고 매일 육아 일기와 반성 일기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내면 깊숙한 곳과 독대할 수 있다.
6년 전과는 비할 수도 없이, 요즘은 글쓰기 챌린지나 책 쓰기 모임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동기화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에 혼자 글을 쓰기 어렵다면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직접 써보는 것.
고 3 때, 인서울 대학 진학을 위한 커뮤니티에 가입한 적이 있다. 고된 주중 공부를 마치고 기숙사에서 집에 오면 그 사이트를 보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원하는 대학교에 갔던 후기글을 보며 마치 내가 그 대학에 붙은 것처럼 위안을 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 공부를 했어야 했다. 한국사 지식을 한 자 더 넣었어야!
글쓰기 또한 이와 비슷하다. 타인의 글쓰기 책도 각을 잡는데 도움이 되지만 먼저 내 글을 시작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맞는 글감, 톤을 잡아갈 수 있다. 화장도 비슷하지 않을까. 자꾸 해봐야 알 수 있다. '나에게 맞는' 글감, 톤, 글이 잘 써지는 시간대를.
책 출간에 관심이 없더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 것은 특히 5세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아직 눈도 침침하고 체력이 부족하지만 시작하고 1년, 3년, 5년이 지났을 때, 분명 금융치료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