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는 이제 그만!
아이를 양육하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아마도 "죄송합니다."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아이의 행동으로 인한 죄송함은 당연하고 여기에 나의 선택으로 인한 죄송함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 오늘 글의 주제와 결이 맞는다.
욕심을 내려놓는다고 다짐하고 이런저런 일을 내 딴에는 축소화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죄송함을 이야기해야 한다. 오프라인 강의를 갈 수 없으니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의를 신청했지만, 아이가 아프면 강의를 수강하지 못해 죄송하고, 시험 공부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해야 할 상황이 따른다. 이건 응시료 일부 납부해준 남편(가계를 합치고 있으므로)에게 갖는 미안함도 있다.
언제까지 죄송해야만 할까? 방법은 '일을 벌리지 않는 것'이다. 내 선에서, 내 판단에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립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일'까지 벌리는 것. 이 중요한 진리를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그리고 6살이 되던 해에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다. 4살이 되던 해에는 휴학을 했는데, 6살이 되던 해에는 또 어떤 것을 다시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긴 터널과도 같은 육아의 시간을 포기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가혹하다. 아이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없다. 아이의 작은 몸짓, 공중에 퍼지는 듯한 아이의 말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감정은 '미움'이고 그 다음 감정이 '타인을 탓하는 마음' 그로 인한 좌절감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앞으로도 엄마를 계속 원하는데, '아이 때문에'를 마음 속에 두고 살아가기엔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우선 순위를 다시 세워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육아. 아이의 마음을 잘 돌보아주는 것. 필요한 때에 정서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 그 뒤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 '하는 것은 좋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 포기하는 것도 이 시기에는 지혜다. 지금의 아이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내가 포기한 어떠한 것은 재도전을 할 수 있으니까.
나의 우선순위를 잘못 세운 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죄송해하지 않기. 내 선에서 적절하게 끊어내기. 관계의 영역에 있어서도 오래 갈 것 같지 않은 관계에는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기. 이건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