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이름 '포기'.
'요즘 시대'에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때문에 출산이 두렵고 육아가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나에겐 '포기'하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의 계획을 타의에 의해 포기하는 것. 명절 때도 고3이라는 특권으로 할머니 댁에 가지 못했던 나의 성장과정을 떠올렸을 때,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
'82년생 김지영'은 엄마의 삶을 극적으로 더 우울하게 그린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호르몬이라는 존재는 우울감을 더 크게 만들기에, 영화 또한 엄마의 현실을 꽤 많이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지영이도 매 순간 꿈꾼 것들을 포기하고, 내 주변의 엄마 'ㅇㅇ'(이)도, '나'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쉽지 않고 화가 날 때도 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포기하는 것을 아까워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걸까? 아이의 엄마로서, 가장 행복한 것이 무엇일까? 40대,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어떠한 삶을 살아온 나의 모습이 가장 뿌듯하게 느껴질까? 생각해보면 정답은 어렵지 않게 나오는데. 욕심 때문에, 비교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하는 습관 때문에, 그게 그렇게 어렵고 억울했다.
"조금 더 천천히 가면 어때. 남들에게 보일 땐, 나도 대단해보일 수도 있어. 천천히 가는 것도 어쩌면 엄마의 특권 아닐까? 조금 더 천천히 가더라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아이를 양육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
엄마니까 가능한, 엄마니까 더 현숙해질 수 있는, 엄마니까 더 갈고 닦을 수 있는, 더 뾰족해질 수 있는 무기가 있다. 나는 지금 그 무기를 찾고 매일 걸레로, 때로는 부드러운 헝겊으로 닦고 있다. 가끔은 유연하게 닦기 위한 세제도 사용해가면서.
작년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에 무리가 오면서 더욱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정한 틀대로 결코 맞춰지지 않고, 그 틀대로 맞춰지지 않는 경험이 나를 더 부드럽게 만든다는 것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누군가를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을.
문제는 육체도 정신도 쉽게 지친다는 거지만 이 시기에 지치는건 너무나 당연한데, 어른들의 세대 땐 그런 커뮤니티가 온라인으로 없었기에(천리안에 있었으려나?) 그 감정이 드러난지 겨우 20년 즈음 되었을 것 같다. 이 시기를 잘 보내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후배 엄마들에게 더 자신있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