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할 것.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서, 여섯살 된 딸과의 신경전이 끊이질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의 여자아이처럼 퉁명스럽고 짜증내는 말투는 물론, 대답하는 말마다 불평과 불만이 섞여있었다. "아니이~!!그게 아니고오~!!" 이 말을 반복해서 들으니, 나 또한 참을성의 역치를 넘어서 결국 아이의 엉덩이를 철썩 때리고 말았다. '앗...내가 실수했다.'
아이에게는 역시나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여느 육아서에서의 구절처럼, 아이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부모는 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것, 화를 냈다는 것, 엉덩이를 순간적으로 철썩 힘을 가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자신이 왜 혼났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처럼 외부 교육기관에서 아이를 엄격하게 가르치기 어려운 시대에, 가정에서만큼은 똑소리나게 가르치고 싶었는데. 통제의 끈을 놓아버린 나는, 나의 감정과 피로도에 따라 아이를 조종하고 있었다. 권위있는 부모가 아닌, 권력을 갖고자 발버둥치는 엄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의 언어발달을 다루는 글에서 부부 싸움이 등장하기엔 조금 어색하지만, 아이가 한창 말이 많아지던 4-5살 무렵을 떠올렸다. 우리 부부는 정말 많이도 싸웠다. 주말이면 주말마다, 연휴면 연휴마다, 그나마 평일 저녁이 평온한 편이었고, 아이 앞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바빴다. 생각해보니 아이의 짜증 섞이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화법은 엄마인 나에게서, 아빠에게서 배운 말이었다.
아이가 5살 이전의 부모들은 육아서를 꽤 많이 보는 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요즘 출판 시장이 워낙 불황이지만, 36개월 미만의 양육자는 책을 보며 육아를 배우는데 에너지를 쓰는 시기인 것 같다. 육아서의 한 구절을 읽으면 나 또한 저자처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문제는 언제나 그 찰나의 순간에 발생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 한 마디, 속으로만 했어야 하는 한 마디에 서로의 역치를 자극한다.
"이건 당신 때문이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됐어! 애 들으니까 그만해."
"자기가 질 것 같으니까 그런거지."
"(펑! 뚜껑이 열린다) ..."
아이의 짜증 가득한 말투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말에 "너 계속 그렇게 말 안 들으면, 유치원 아에 가지마!" 이렇게 말했지만, 오히려 내 아이가 기관에서 나쁜 말을 전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가정에서의 말 교과서는 부모가 써가는 거였는데. 신랑의 잦은 건강 악화와 일 병행이라는 핑계로 나의 말을 다듬지 못했다.
오늘부터 우리 존댓말을 써보자.
존댓말을 사용하면 평소에 서로를 더욱 존중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권위를 세워야 하는 순간 외에는 지금보다는 더 말의 포장지를 예쁘게 씌울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 뿐 아니라 남편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다. 고쳐주고 싶은 습관 하나하나 짚지 않고, 비난의 화살을 쏘지 않고, 존중해주는 것.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힘은 더욱 세질 것이다. 그때는 엄마의 힘 뿐 아니라 말로도 아이를 가르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지도, 에너지를 쓸 겨를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마음이 스펀지 같은 유아기, 이 시기에 다시 한번 우리 집 말의 정원을 가꾸어본다. 밭을 갈아 엎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