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선생님 Jul 26. 2024

아이가 처음 비행기를 탔던 여행.

7년만에, 여행기록.

"너, 말 안 들으면 오사카 안 데리고 간다!"


물질적인 보상이나 시간 제약이 있는(여행처럼) 보상으로 하는 아이와의 협상은 위험하다. 언어치료 상담 현장에서도 권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의 오사카는 아이에게 협박이어도 괜찮다고 느껴질 만큼의 단어였다. 24개월도, 4살도, 5살도 아닌 7살인 아이의 첫 비행기 탑승 해외여행!


태교여행을 갔을 때만 하더라도 아이가 24개월 전에 한 번, 그 이후에도 종종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24개월이 되었을 무렵 바로 코로나가 시작될 줄 몰랐고, 신랑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줄은 더더욱 몰랐다. 어쩌면 건강 이슈로 인한 여행의 차질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이었을 지도 모른다. 

철철마다 간 것은 아니었지만 때에 맞게 (잊혀질 즈음) 국내 어딘가로 여행을 가긴 했지만 해외는 아이에게만큼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회였다. 친구들에게 그토록 들었던 비행기, 탄천을 산책할 때마다 보았던 비행기, 서울공항에서 한창 훈련이 있는 가을에 귀를 막을 정도로 큰 소리를 냈던 그 비행기를 직접 탈 수 있는 시간. 즉, 오사카 =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회이자 소원성취였다.

1시간 30분 이상의 지연이 있었지만 아이는 오로지 비행기만 생각했다. 이 즈음에서 부모는 갈등이 되기 시작한다. "엄마, 비행기 언제 와요? 엄마, 언제 와? 엄마, 나 지루해. 언제 오는거야?" 

아, 육아서에서 여행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겠구나 생각이 드는 찰나였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더우면 잠시 카페에 들어가고, 그늘에 앉고, 편의점을 들리는 것과는 다른 일정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아이도 조금씩 예상하는 듯 했다. 


"우리가 너무 곱게 얘를 키웠지?"

"맞아, 그런 것 같아."

"온아, 여행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어. 그런데 그 때마다 이렇게 재촉하고 짜증을 낸다면 엄마아빠, 함께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계속 이렇게 재촉하면 엄마랑 아빠는 비행기를 타지 않을 거야."


아이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졌다. 왠지 집에서의 엄마의 말과 행동을 기억해보았을 때,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과감하게 싱크대 하수구에 버렸던 엄마는 정말 비행기를 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이가 잠시 조용해졌다. 덥다는 오사카를 어떻게 이 아이와 함께할까 걱정이 가득했지만 조금은 아이와 동행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밤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오사카는 번화가이면서 일본의 문화를 담고 있는듯 보였다. 20대였다면 젊은이들의 옷차림, 화장품, 디저트가 눈에 들어왔겠지만 내 아이와 딱 30살 차이가 나는 나이가 되어서 온 지금은 관심을 가는 영역이 조금 달라졌다. (물론, 말차맛 디저트를 주섬주섬 담아오긴 했다만...)


대학교 4학년 때 잠시 탐방을 왔던 일본은 소박함 그 자체였다. 당시에 나는 도서관-기숙사 루틴을 가진 모범생 대학생이었는데, 미국은 관심이 있었지만 일본은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던 나라였다. 교양과목 일본어를 b+을 받았던, 지우고 싶은 과목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에 다녀온 일본은 지금까지 기억이 선명할 정도로 사치가 없고, 조용하고, 신기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2010년 무렵이었는데, 식당을 지나가다가 혼밥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혼밥이 자연스러워졌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김밥ㅇㅇ가 아닌 다른 가게에서의 혼밥은 약간 외롭고 친구가 없는 느낌을 풍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많이 걷고, 음식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지하철에서 소음을 내지 않는 그런 장면 장면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4년만에 온 일본이 왠지 모르게 궁금하고 반가웠다.  

아이는 오사카에서 이 곳이 유명하고 사진 찍기 좋은 명소임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많이 걷는지, 무엇을 먹는지, 아이스크림은 언제 사줄 건지 이 부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이 아빠가 중간중간 짧게 전해주는 일본 문화의 이야기, 오사카성 이야기, 지역의 이름 이야기에 아이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전쟁 때 왜 성을 만든건지, 우리나라는 어떤 전쟁이 있었는지, 아이와 아빠의 이야기가 그래도 몇 마디 이어질 수 있음에 신기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더 많은 대화를 보다 깊이있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마루젠 앤 준쿠도 서점에서>

온이가 너무 많이 보고 물고 또 봐서 몇 번을 다시 샀던 그림책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서점도 들렸다. 엄마인 나는 추억이 생각나서 찡긋해졌는데 아이는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님의 굿즈를 살 수 있는지에 관심을 더 보였다. 그러니까 아이지 생각이 들면서도 나 또한 일본어 그림책을 사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느랴 애를 먹었다. 아이와의 추억을 나눌 수 있음에, 작가의 이름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만족스러웠다. 


아이는 분명, 초등학교 3-4학년만 되어도 비행기가 지금보다는 시시해질 지도 모른다. 그래보아야 겨우 3-4년 남은 시간. 10년 후면 엄마, 아빠가 아닌 친구와의 여행을 기대하며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겠지, 15년 후엔 친구와 배낭여행을 가겠지.


말로는 신랑이랑 단둘이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온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 때가 되면 이 시간이 아련하고 그리워질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아이와 함께 더 많은 나라를 돌아보고, 문화를 체험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회복탄력성을 길러주고 싶다. 


물론, 해외여행만을 예찬하고자 함은 아니다. 지난 7년동안 아이와 동네 하천을 산책하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귀한 가치들을 담아왔고,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우리 가족은 해외에 대한 갈망이 큰 편도 아니었다. 다만, 여행이 주는 장점이 있다면 추억과 함께 더위와 추위, 지루함과 기대되는 마음, 설렘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시점이 아닐까.


다음 기회가 허락된다면, 도심이나 관광지보다는 정말 더 사람냄새 나는 그런 마을에서 지내보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주어진 시간을 또 성실하게 보내야함을 알기에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녀교육서는 왜 인기가 없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