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8년차 엄마의 시선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곁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의 차림새를 보니, 퇴근을 하자마자 아이를 하원시킨 듯한 모습이었다. 유모차 주변에 어린이집 가방이 있으면 100% 확신을 가졌을텐데 그렇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저녁 5시~7시 사이에 아이의 손을 분주하게 붙잡고 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내 심장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 아이도 늘 유치원에서, 학원에서, 엄마를 마지막까지 기다리던 아이였다. 함께 있는 워킹맘 동료이자 친구가 있다면 땡큐베리감사지만, 담당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연락을 받으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던 그 기분. 평생에 잊지 못할 시간대와 기분이 될 것 같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는 모르던 세상이 있다면, 하원하러 가는 그 마음과 하원을 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초조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에게 아이를 낳기 전 저녁시간은 퇴근을 한 이후 자유시간이거나 데이트를 하는 시간이었으니까. 회사에서조차도 아이가 아파서 일찍 퇴근하시는 선임 선생님들을 보면서 아이를 출산한 이후에 굳이 일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였다. 지금쯤 그때의 그 아이는 나의 아이보다 훨씬 큰 언니나 오빠가 되었을테고, 당시에 아픈 아이를 두고 눈물을 훔쳤던 선생님은 이제 '나도 다 겪은 일'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실 것만 같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내 영역에서 통제가 가능한 것들이 많았다. 나의 정신력과 의지만 허락한다면, 아침 시간의 독서도, 야근 수당을 받기 위한 야근도, 쏟아지는 대학원 과제도 가능했다. 특히, 아침 시간의 묵상 은 나의 충전소가 되어주었다. 당시에 영상으로 보았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속 엄마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20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저런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적어도 이 행동만은 하지 말아야지.' 이 생각을 하면서 실상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통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대학교 학년이 높아질 수록, 회사에서 연차가 높아질 수록, 이 일에 대한 경력이 쌓일 수록. 어른 흉내를 내면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임신 내내 입덧을 하면서, 새벽까지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하루종일 신경을 날카롭게 달구는 아이와 함께하면서, 나라는 사람은 도무지 한 영혼을 품을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8년이었다. 그동안 교회에서의 나는 누구이고, 가정에서의 나는 누구일까. 육아의 현장은 가식이란 통하지 않는 생생한 리얼리티였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예배 시간에 자모실의 엄마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귀여운 아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곳. 교회 엘리베이터는 운이 좋으면 저층에 갈 때도 탈 수 있는 수단이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서고 있는 유모차 주인인 엄마아빠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상담 때도, 양육자분들이 왜 치료시간에 지각을 하는지 가정 과제를 하기 어려운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때로는 부모가 부지런하지 않아서, 아이에게 관심이 없어서, 또는 내가 초보 언어재활사이기 때문에 내가 내어드린 가정 과제는 하지 않으시는 거라는 자격지심이 가득했다.
이제는 세상의 반을 조금씩 보고 있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아이로 인해 본 세상은 어떨땐 렌즈가 세상을 힘겹게 보게 만들고, 어떨 때는 따뜻한 곳으로 보여준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알려주면서, 또 때로는 제발 하루라도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워낙 이기적인 사람이기에, 신께서 아이를 통해 세상을 보여주신걸까. 올 한해는 지하철에 아이와 엄마가 있다면 더 많이 양보하고, 걸어갈 수 있는 계단은 걸어가겠노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