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임신하기 전에 3년 정도 근무했던 직장은 신기하게도 아이 엄마 직원분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연애에 한창 빠져있었던 때였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아줌마 갬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회식을 하려고 음식점을 알아보는 것도 막내인 내 몫이었고(20대 후반이었는데도 막내였으니...) 워크숍을 기획하는 것도 어쩌다 보니 나의 차례가 오게 되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았다. '왜 아줌마들은 모이면 남편 이야기만 할까? 왜 아이랑 같이 외식조차 안 할까? 왜 나도 바쁜데 나보고 그래도 여유 있는 거라고들 이야기할까?'
온이를 출산하고 나서야 그 때의 궁금증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외식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고, 출산 이전의 바쁨은 내가 통제할 수 있었지만 출산 이후에는 아이가 허락해주지 않는 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친정 엄마의 도움이나 직장과의 조율이 되어야만 했다.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으면 어젯밤 미루어 두었던 일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림책에 대해 소개하는 책, 그리고 책방 주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출산 직후에는 그 말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얼마나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으면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는지, 아이가 30개월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이해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제일 견디지 못하는 것을 견뎌내야만 하는 시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언어발달과 문제행동에 대한 책을 읽는데 저자 서문에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신이 나에게 아이를 주신 이유는 이제껏 내가 내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기억이 나는 대로 투박하게 내 기억을 따라 옮겨 적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깊이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교회에서 '당신은 죄인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라는 생각이 들어오는 것처럼 '내가 그동안 세상을 얼마나 내 마음대로 살았다고 신은 나에게 이런 좌절을 주시나'라는 생각이 앞설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여름 무렵부터 출근 일수를 하루 이틀씩 늘려가면서 수입이 늘어날 때에는 그림책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주제별로 사기도 했고 수업할 때 사용할 그림책 목적으로 신랑의 카드를 긁기도 했다. 책꽂이를 가득 채운 그림책을 보면서 '이젠 더 이상 안 사도 되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공간이 없어서 책을 빈 공간을 찾아가며 꽂아두고 있다. 출산 이후 모유수유가 끝났을 때 마카롱에 중독돼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처럼 그림책도 소비를 통해서 육아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소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임이 많이 줄었지만 그림책 한 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같이 웃고 있거나 같이 울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그림책 모임을 진행하시던 상담 선생님은 늘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쏟아내야 한다.' 나의 묵힌 스트레스, 어린 시절의 상처, 그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 직장 내에서의 어려움, 아이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이것들은 결국 스트레스가 되고 사람은 스트레스를 언젠가는 쏟아내야 하는 존재인데 그걸 쏟아내지 못하면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가장 연약한 나의 아이가 된다. 결혼 전, 방송을 보면서 '나는 절대 저런 부모는 되지 않아야지' 결심했지만 그런 부모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현실은 우리 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점점 '바보 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여성은 경력이 단절되고 남성은 등골이 휠 정도로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지만 어린아이의 아빠들은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닐 것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하고 집에 오면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된다. 여성의 경력단절, 감당해내야 하는 과제들은 여기에 적다 보면 밤을 지새울지도 모른다.
자라오면서 '너는 엄마가 되어야 한단다. 그러니 희생하는 법을 배우렴. 슬픔은 감추는 거란다.'라고 배운 엄마는 없다. 소중한 나의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사' 직업이나 혹은 '전문직' 타이틀을 가지고 일을 하기를 바라며 부모님들은 희생해왔다. 글을 적다 보니 이상하지만 부모세대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자연스러운데 현재의 2030 세대에게 희생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단어다. 그리고 부모가 되면 그 단어와 친해져야만 한다.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온이가 백일도 되기 전,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들마다 빠지지 않고 나와있던 책이기에 중고서점에서 구입했던 책이다. 요즘은 표지가 새롭게 바뀐 걸로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온이에게 흔한 엄마의 사랑고백 책인 줄 알고 책을 읽어주다가 목이 메어서 차마 끝까지 읽어주지 못했던 책이기도 하다. 변기에 엄마의 시계를 빠트리던 아이는 어느덧 사춘기가 다가오고 어느덧 자신의 아이에게 엄마가 불러주었던 자장가를 불러주는 아빠가 된다. 그리고 그 아들은 엄마가 늙어서 힘이 없을 때에 그 자장가를 그대로 불러준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엄마가 되기 이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도 이렇게나 마음에 깊이 와 닿았을까. 그림책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울어, 울어도 돼. 잘 해내고 있어. 또 잘 해내면 되지. 아이는 계속 자라잖아.'
조금 이기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는 요소 중 '엄마의 감정'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하거나 익명성을 앞세워 내 마음을 털어놓는 맘카 페나 친한 친구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될 때는 그림책을 추천하고 싶다. 나 또한 내 감정을 통제하는데 여전히 갈팡질팡하지만 그림책은 나의 비밀을 가장 철저하게 지켜주고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 <삶>. 이 책도 추천하고 싶어요. 소중한 지인, 그런데 그 지인이 엄마인 경우에 선물해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