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 않은지도 어느덧 한 2주가 되어간다. 원하는 기관으로의 취업에 성공한 경험은 많지 않지만 어느 기관에 어느 채용 형태로 공고가 났는지 늘 레이더망이 가동되어 있었는데 전원을 off 한 지 보름이 되어가고 있다. 나도 나의 이런 모습이 낯설다. 아이를 출산하고 가까운 직장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어딘가 충족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근무 일수는 늘어가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에 속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편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나의 수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모르겠다. '언어치료사'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요즘은 명칭이 '언어재활사'로 변경되었다), 적어도 이후에 종합병원 정규직 혹은 계약직 자리에 최소 3년 정도는 근무하거나 학생들의 관찰과 실습 지도는 해보아야 한다는 나만의 틀이 있었다.
이러한 틀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커갈수록 내 마음처럼 되어가지 않는 '육아'와 더 내 마음 같지 않은 '팬데믹'을 경험하면서였다. 블로그에 출산 이후로 거의 매일 글을 올리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나 언어치료 교재교구를 소개해왔지만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큰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온이가 두 돌이 지날 무렵 블로그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있어서, 아무런 틀이 없어서, 수익을 창출하는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신이 났다.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브랜딩' 관련 책들이 밑거름이 되었고, 김미경 강사님의 강의와 책이 줄기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관심사를 공유하고, 일종의 '덕질'을 매일매일 소개하는 글이 유독 더 눈에 들어왔다.
'배달의 민족' 장인성 님이 쓰신 책 <마케터 _의 일>을 보면 무언가에 깊이 빠져보아야 소비자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월급의 반을 문구류를 구입하는데 쓸 정도로 문구류 덕후가 되어 보아야 소비자와 마케터로서 어떻게 물건을 디자인하고 브랜딩해야 할지 잘 보인다는 것이다.
<기록의 쓸모> 책의 저자 이승희 작가님의 전공은 치기공이었다. 치과 병원 일을 하면서 배달의 민족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에 배민 직원 분들과 페이스북을 통하여 소통을 매일 이어오다가 배민의 마케터가 되었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수익을 창출해내는 하나의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대학 전공을 정할 때에도 부모님께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학과를 선택하려고 하면 "얘야, 그건 졸업하고 좋은 직장 얻어서 취미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단다."라는 설득이 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떠한 일에 타고난 능력이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의 열정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사회적으로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두 개인데 하나는 연애할 때부터 신랑과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둔 계정이고 하나는 그림책이나 언어치료 교재교구 사진을 올리는 계정이다. 두 번째 계정을 만들었던 목적은 책장에 점점 채워져 가는 그림책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 찾아보기 위해 만든 계정이었는데 어느덧 팔로워 수가 1300명을 넘었다. 물론, 연예인이나 전문 작가 분들에 비하면 터무늬 없이 적은 숫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계정을 그렇게 크게 키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숫자이다.
블로그는 주로 언어치료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주로 인스타그램에서 나의 그림책 덕질을 마음껏 하고 있다. 출판사 계정을 함께 올리면 출판사 혹은 작가님께서 내 글이 '좋아요'를 눌러주시기도 한다. 후기를 적고 업데이트를 한지 불과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작가님의 좋아요와 댓글을 받았을 때에는 처음엔 너무 신기해서 하루 종일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았다.
사진은 2019년 가을 무렵의 사진들이다. 그림책 배송이 오면 아이를 태운 유모차 뒤에 그림책을 그대로 싣고 카페에 들어가서 예쁘게 그림책 사진을 찍었다. 치료실로 출근을 할 때는 치료실 공간 안에서, 때로는 집 안에서 그림책을 정성스럽게 찍어서 올리다 보니, 아이돌 가수의 팬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이돌 가수 대신 그림책에 빠져서 그림책 사진을 거의 매일 올리다 보니 때로는 신랑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나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그것도 임신 전이었는데! 갓 따끈따끈한 논문을 쓴 경력 7년 차의 '가임기' 여성을 환영해주었던 기관은 단 한 곳 밖에 없었다. 저렇게 많은 이력서를 썼을 때에도, 바로 직전에 근무했던 기관에서 서류와 조직생활에 치여서 단 하루도 더 출근하지 못하겠노라 했던 나 자신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이다. '병원'이라는 곳은 어쩌면 더 위계질서나 서류가 중요한 곳인데 단지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그렇게 노력하더니 좋은 직장에 들어갔구나!'라고 알아줄 수 있는 기관에 입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어디서든 "요즘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게 그렇게나 재미있어요. 거의 매일 올려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그림책 사는 돈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얼굴이 발그래해져서 말문이 막혀있지 않는다. "네. 전혀 아깝지 않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게 그림책인 거예요. 대신 화장품이나 명품 가방에 욕심 없어요."
<매일 아침 써봤니?>의 저자 김민식 pd는 책 제목처럼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하나둘씩 올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가가 자신의 본업이 아니라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 김인식'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더 만들어주었다. 김민식 pd에게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일종의 '놀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저서에서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님의 책 <행복의 기원>을 인용하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문장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책의 앞부분에 이 인용구가 나오는데 책을 계속 읽다가는 퇴근 시간을 아예 놓쳐버릴 것 같아서 뒤 챕터를 읽는 시간을 퇴근 이후 온이가 잠든 밤으로 양보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하는 것은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매일매일'은 어떠한 재능과 타고난 무언가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덕질'이 부끄러운 세상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분야의 일부분으로 흡수되어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림책 덕후인 것도,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한 때는 누군가 나를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드러내기 망설인 적도 있었다. 전염병으로 인해 아이들이 수업을 오지 않을까 봐 불안해서 이른 아침 6시면 눈이 저절로 떠지기도 했다. 요즘도 7시 정도면 일어나는 편인데, 온이가 따라서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 오전에 그러한 시간을 갖지 못한 오늘 같은 날은 온이가 자는 이 시간을 그렇게 채워 나간다.
진정으로 즐기다 보니 정규직 채용 서류 지원 기간을 놓쳐 버렸다. 엄청난 신의 은총으로 최종 합격을 한다고 한들 온이와 나의 삶이 지금보다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이 들기 때문에 크게 아쉽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안의 잔고는 지금보다 더 채워지겠지만. 지금은 '좋아서', '행복해서', '신이 나서' 하는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게 어쩌면 온이를 출산한 이후가 내 인생에서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매일 아침 써봤니?> 책은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에 쓰인 책인데. 이 시대의 흐름과 너무나 잘 맞는다. pd님께서 미래인 2020년을 여행 다녀오신 것 같다. 이지성 작가님의 <에이트> 책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이지성 작가님의 책은 출간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바로 코로나 19가 터졌다. 인공지능 시대가 훨씬 더 앞당겨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