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를 추천해주고 싶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인터넷 창을 열었는데 '등교 개학 연기' 검색어가 보였다. 앗! 어제 아이의 가정보육에 대한 글을 썼는데, 어느덧 학생들에게까지 넘어올 것이 넘어온 것 같았다. SNS에서는 금세 초등학생 학부모님들께서 작성하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의 게시물이 보였다. 다시, 지난 3월로 되돌아가는 걸까?
2019년 하반기는 학령기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는데 굉장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1급 언어재활사 시험을 앞두고 있기는 했지만 학령기 아이들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면 내가 마치 교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문제집 출판사 직원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실력은 장담할 수 없지만 학령기 아이들의 언어치료를 진행해가면서 다양한 활동을 구상하고 자료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육아 스트레스 또한 날려버릴 수 있었다. 현장에서의 경력도 10년이 되었고 특히 학령기 언어치료는 내가 가장 자신감이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블로그 안에서 내가 만든 자료를 공유하고, 추천 책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면 다음 날 200명이 넘는 방문자수를 볼 수 있었다.
독서 관련 책을 읽고, 그림책 관련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수강료가 저렴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난독증 중재 관련 수업도 들었다. 2020년은 더욱더 나의 전문성을 살려서 아이들과 '모의 학교'를 만들어갈 예정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지만, 대상자 또한 영유아를 받는 것보다는 학령기 아이들을 받고 싶었다. 나의 아이가 24개월 무렵이었음에도 나는 '아기들' 수업보다는 '언니, 오빠들'의 수업 진행에 훨씬 매력을 발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왔다.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수업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해서 신랑 눈치를 보며 구입한 그림책들, 두꺼운 종이사전, 수업 활용에 도움이 될만한 참고서적들은 그저 우리 집 책장을 채워주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너무 답답했다. 그런데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님들께 구입한 책의 사진을 찍어서 '이 책 가정에서 한번 읽어주시는 건 어떨까요?' 정도의 제안이 최선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삶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에 적응을 해야 했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라인에 적응을 해야 했다.
기관 휴관이 끝나고 아이들과 처음 마주했던 4월. 아이들이 다행히 퇴행한 느낌은 없었지만 대신에 무기력함을 가지고 왔다. 생활 패턴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특히, 맞벌이 부모님의 아이들은 형, 누나 또는 언니가 있다면 다행이었다.
수업 중에 하품을 연달아하는 아이들에게 마냥 왜 자꾸 하품만 하냐며 닦달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수업이 온라인이 주는 자극에 비해서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마치, 어른들이 넷플릭스 영화를 최신 화질의 화면으로 보다가 갑자기 90년대 TV로 보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을까? 학교에 일주일에 한두 번만 등교한다고 해서 에너지가 더 남아있으리라는 것은 아이들보다도 더 온라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들에게 계속 지루함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아날로그 식 수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수단은 그림책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그리고 청소년기 아이들에게는 요즘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그림책들보다 출간한 지 오래된 그림책(예 : 강아지똥, 만년샤쓰, 온양이 등)이나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는 역사를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마침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인 김미경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모든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온라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온라인이 주는 자극과 중독성을 나 또한 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삽화도 문장도 예스럽기도 하고 요즘 말로 하면 오글거리는 문장도 있지만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마치 인스턴트식품만 먹다가 먹는 구수한 된장국과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달,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에너지가 방전되셨던, 어머님들의 깊은 한숨 소리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2~3월은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을 보호하시는데 온 신경이 쓰였고, 4월~6월까지는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고 과제를 함께 올리는데 에너지가 소진되셨을 것이다.
그 안에 내가 감히 예측하지 못할 아이들과의 실랑이가 매일매일 존재하지 않았을까. 치료실 안에서, 일주일 40분 혹은 80분의 시간 동안에도 신경전이 벌어지는데. 가정이라는 공간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어치료사로서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찾은 답은 부모님들께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많이 읽어드리고, 아이들에게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지라도 나와 마주하는 공간 안에서는 잠시 아날로그의 세계로 아이들을 초청하는 것.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가 어쩌면 가장 편안한 시기고, 일을 하기에도 적기일 수도 있다고. 이 시기를 지나감에 있어서 방역과 마스크 착용, 외출의 절제와 같은 공동 수칙들을 함께 지켜나가면서, 자녀의 연령을 떠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눈으로 보기엔 초등학교 고학년은 스스로 신변처리가 가능하고 혼자 두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으니 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가장 주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