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재접근기가 찾아오다.

서른이 넘은 나도 늘 재접근기인걸.

by 말선생님

육아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용어들이 있다. 하나는 '원더윅스'였고, 하나는 '재접근기'다. 그렇다면 원더윅스의 뜻은?

Wonder weeks : 아기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 육아의 입장에서는 더 많이 보채고 우는 과정에서 부모를 가장 힘들게 하는 때를 말한다.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오픈사전

이 시기가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오는 이미지에서 제시된 원더 윅스 기간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조리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이가 이유 없이 보챌 때 한동안은 '원더 윅스' 기간에 대해 숱하게 검색을 해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으이그, 차라리 원더 윅스 기간이라면 말을 안 해!' 이렇게 생각이 변화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재접근기는 무엇일까? 정확한 의미는 네이버 사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는 엄마와의 애착을 더 바라는 시기인 것으로 해석된다. 일명 '엄마 껌딱지'로 다시 돌아가는 것. 생각해보면 온이는 엄마에게 숨 쉴 구멍을 꽤 많이 주었던 아이였다. 출근을 하고 난 이후에 엄마를 찾는다고 친정엄마가 종종 이야기하곤 했지만. 퇴근 이후에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던 시간은 길어야 1시간 정도였다. 밤에 잠을 자는 시간도 밤 10시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에 글을 쓰고 교재를 만들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었다.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데 아이가 28개월이 되면서 뭔가 아이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적어보자면 '조짐이 보이다'라고 표현해야 할까. 첫 번째 변화는 아이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수면 시간이 일정한 편이어서 늦게 잔 날은 오전 8시 이후에 일어났었다면, 11시에 잠들어도 어김없이 7시면 눈을 떴다. 그리고 주말만 되면 잠을 자지 않았다. 오늘 같은 공휴일에도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야 카시트에서 간신히 잠이 들고, 집에서는 아무리 산책을 하고 오래 걸어도 낮잠을 자지 않았다.

30개월이 된 지금 또 하나의 변화는 엄마와의 스킨십이 충분히 충족된 이후에 자신의 자리에 가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엄마의 가슴에 자신의 온몸을 맡기고 뽀뽀해 주기를 원한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낮에 그 사건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낱낱이 보고한 이후에 잠이 들었다. 28개월까지 특히 수면에 있어서 일정한 패턴을 깨본 적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문제는 이러한 재접근기를 겪어가면서 나의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감정은 그래도 평정심을 꽤 유지하고 있었지만 엄마인 나는 직장 일에 따라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도 있었고,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는 전혀 일을 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짜증이 솟구칠 때도 있었다.

언어치료 현장에서 36개월 미만 아이들이 왔을 때 어머님들께 거의 자동화되어 이야기하던 그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애착형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고 대충 몇 점을 줄 수 있을지 보이기 시작했다. 5점 척도 중 감정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부분에 있어서 2점도 안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의 감정은 아예 통제 장치가 망가져버렸다.


출근을 한다고 해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난달까지 나는 주 6일 일을 하고 있었다. 주 3일은 거의 오전부터 오후 5시 혹은 6시까지 수업이 차있었고 하루는 오전 홈티, 하루는 오후 시간대로 병원 근무, 그리고 토요일 오전 병원 근무.

그리고 교구 원고를 매일 밤 채워 나가야 했고 이제 막 브런치 작가가 되기 시작했는데 글을 웬만하면 이틀에 한 개씩은 올리고 싶었다. 교재 원고를 쓰는 것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을 먼저 선택한 날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교재 원고 작업을 시작했고 다음 날 아침에 교재 원고를 다시 읽어보면 주어와 서술어가 맞는 문장이 거의 없어서 다시 한 장 전체를 수정한 날도 있었다. 블로그 포스팅은 이제 밥을 먹는 것처럼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지난달에는 그 좋아하는 블로그 포스팅 조차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생각에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가장 피해자는 어쩌면 '아이'였다. 한창 호기심이 많아져서 집안 곳곳의 물건을 한두 번씩은 망가져야 직성이 풀리고 어린이집 하원 이후로는 엄마와 시간을 보내면서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 아이. 아이에게 쏟아낼 에너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하지 않아서는 될 행동을 하게 되었다. 이 집의 가장 약자인 아이에게 감정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

언젠가 김미경 선생님의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밑줄을 긋고 다짐을 했지만 이미 그 결단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온이도 나중에 커서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곳을 찾게 될 것이고 그 감정을 쏟아내는 상대는 온이보다 약자가 될 것이다. 그럼 온이가 또 한 명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인데.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일을 하루 줄이는 것이었다. 상담, 치료 일이라면 그렇듯이 요일 하루를 비우려면 치료사는 두 분에게 '죄송합니다'를 연신 거듭해야 한다. 우선 기관장(오너), 그리고 아이의 부모님. 그렇다면, 하루에 다섯 명의 아이의 수업을 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다섯 분 이상에게 '아이의 육아 때문에... 죄송합니다.'를 말씀드려야 하는 셈이다. 일을 정리하면서 차마 토요일 근무조차 포기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발목을 잡았던 것은 '일을 안 한다고 해서 과연 내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올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책꽂이 안에 각을 맞추어 꽂아두었던 육아서들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한동안 육아서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낳기 전에 많은 육아서들을 읽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한창 브랜딩과 마케팅에 빠져있던 터라 육아서를 읽다 보면 어딘가 나를 잃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서 육아서를 읽기보다는 뭔가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나의 모습만으로도 자유를 얻는 것만 같았다.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전지민, 비타북스>과 <심리학으로 오늘 아이의 마음을 읽는다, 이다랑, 길벗>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엄마가 된 이후 다시 한번 아이의 발달을 심리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지민 작가님의 책을 보면서 내가 하고 있는 육아도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육아를 생각하면 드라마 '고백 부부' 초반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생각하지만 전지민 작가님의 책 속의 육아는 참 아름다웠다. 나의 육아도 언젠가는 그렇게 그려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일을 하는 모습으로 주변에게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는 롤러코스터가 존재하지만(여름이니까 후름라이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일을 조금 줄이고, 좋은 책들을 옆에 두면서, 그리고 간간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지난달보다는 조금은 더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직업병을 살려서 밤에 잠들기 전 시간만큼은 핸드폰을 보지 않고 온이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 온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면 그다음 구절을 함께 부르기도 하고, 이어 부르기를 하기도 한다. 온이가 요일 노래를 부르고 나면 '오늘은 무슨 요일이었지?' 질문을 하고, '오늘은 즐거운 월요일!'로 마무리를 한다. 어린이집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사실 음식은 매번 /김치 먹었어. 김치 매웠어/가 전부이긴 하다), 오늘 만난 친구들 이름을 한 명씩 이야기한다. 가끔 그 친구가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다.

한 번은, 밤에 자지 않으려고 할 때 "자지 않으면 번개 아저씨가 찾아온대!"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너무 무서워하길래, "엄마가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말해주었더니 더 빨리 잠이 든 적이 있어서 무서운 협박이나 번개 아저씨의 출현은 가급적 삼가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부터 배꼽, 다리, 발까지 쪽쪽 뽀뽀를 해주거나 간지럼을 태워주기도 한다. 발음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겨드랑이'를 /여드랑이/라고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요즘은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마도 이렇게 자기 전에 10분, 길면 20분씩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모이고 모이면 하나의 언어치료 회기가 되지 않을까. 내가 그토록 현장에서 이야기했던 순간을 정작 나는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님, 집에서 10분씩 놀아주시면 그 시간이 모여서 치료 40분 받은 효과가 나올 거예요."



* 오늘의 영감 : 대학원 동기와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동기가 그랬다. 우리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엄마를 찾는 '재접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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