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잘 다루는 너와 내가 되기를.

감정 표현을 글로 배웠어요.

by 말선생님

전공이 상담과 관련이 깊다 보니, 나는 학부 때부터 부부 상담 프로그램이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육아 프로그램을 틈나는 대로 시청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어디서든 영상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TV 재방송이나 노트북을 이용해서 찾아보았다.

매일같이 폭언을 내뱉으며 싸우는 부부들, 아이에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소리를 지르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생각해왔다. 부모상담을 조금 더 능숙하게 하기 위해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결혼 전까지는 그 목적을 잘 달성해주었다. 어딘가 서툰 부분이 있었지만 간접적으로 방송을 통해 접한 게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의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의 양육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어딘가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나의 결혼생활과 나의 육아가 시작되면서 시작되었다. 초등학생 때 이후 누군가와 크게 싸워본 적도 없었고, 치료실 안에서 아이들에게 '너'라는 소리 한번 해본 적 없었던 나의 삶이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요즘 빠진 책, <내 마음은 보물상자>

연애와 신혼 시절에도 나의 감정이 예민한 부분이 있었지만 특히 출산 이후에는 감정 조절이 더 되지 않았다. 모든 안전장치가 아이의 출산과 동시에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모진 말이 쏟아져 나왔다. 초반에는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이 또한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돌발행동을 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에 끌어 오르는 분노는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역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연애할 때든 신혼일 때든 서로 감정이 격해지면 한 사람이 화를 누르기 위해 나갈 수도 있고, 둘만의 시간을 경치 좋은 곳에서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아직 세 돌도 안된 아이를 양육하는 환경 속에서는 그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 분노가 차오르고 있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자면 어린 시절에 무언가와 연결이 되는 걸까? 남편과 아이가 나의 틀을 벗어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 점점 격해지고 있었고 감정 기복 또한 편차가 벌어져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마음'을 돌보아야 할 때라는 느낌이 왔다.

<안아 줘> 그림책. 이 또한 아이의 최애 그림책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전쟁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에 대해 매끄럽게 전달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물론 직장에서 관계로 인하여 지옥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의 방법은 회피였다. 내가 상대하기 싫은 사람은 내가 퇴사를 해서라도 보지 않도록 회피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상대방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더러운 꼴 보이느니 피해버리고 말지'이런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과 육아는 회피할 수가 없다. 갈등이 생기면 이혼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은 잘 풀어야 하고 아이에게 있어서도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잘 가르쳐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압박감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온이는 모든 것에 있어서 참 솔직하다. 마음이 기쁘면 "온이 신나~" 이야기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콩콩 뛰기도 한다. 엄마나 아빠가 요구를 즉각적으로 들어주지 않아서 속상하면, "온이 슬퍼, 온이 울었어!" 이렇게 말해준다.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는, "온이 화났어. 소피 언니처럼 화났어!" 이렇게 이야기하며 엄마와 함께 읽었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그림책 속에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해 준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온이를 보면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아이에게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 코로나, 그리고 넘치는 정보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 지식을 사용할 겨를도 없이 스스로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을 당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스마트폰 세상은 아직까지 아이의 감정과 속마음까지는 읽어주지 못한다. 언젠가 AI가 각 가정에 보급된다면 모를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매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서로가 서로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네(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거야. 내가 네 마음을 알아'라고 말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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