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의 추석 이야기, 이억배, 길벗어린이.
나는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반가운 친척들을 만나는 것은 좋았지만, 명절 특집 TV 프로그램만 보는 시간들도 재미가 없었고 일상을 깨는 그 시간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불편함은 20대가 되어서 정점을 찍었는데, 차라리 대학교 기숙사에서 홀로 있는 나만의 시간이 더 편안했다. 명절 때 문을 여는 식당은 없었지만 룸메이트가 없는 기숙사 방에서 듣고 싶은 노래를 이어폰 없이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명절에 집에 오래 머무르는 것과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별개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 이후. 진정한 명절은 역시 결혼 이후에 느낄 수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당시 직장 동료 선생님들이 9월 초, 혹은 1월 초만 되면 명절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셨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시어머님은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요리도 홀로 해놓으실 정도로 부담을 주시지 않는 분이셨지만 맘 카페 속에 올라오는 명절 이야기는 현실 속 '사랑과 전쟁' 방송 내용 감이었다.
점점 명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부분이 글을 쓰자면 정말 조심스러운 부분인데(이 글을 쓰는 사람의 가족과 친지들은 며느리를 엄청 괴롭힐 것이라는 편견을 만들까 봐서...), 그렇게 생각해주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읽었던 <상상하지 말라, 송길영, 북스톤> 책에서도 보았듯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명절이 지난 이후인 3월, 그리고 11월 무렵이 가장 높다고 한다. 각 가정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 부모님들께서 자식,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시는 마음,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실 것 같은데. 왜 이혼율은 그 마음과는 또 별개로 치솟고 있는 걸까?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에너지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 재정적인 부분도 많이 들고 오며 가며 드는 육체적인 에너지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남편과 아내에게 있어서 서로 말을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고 상대방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이 때는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명절 때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사전 합의 또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각 가정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시댁에서 혼자 설거지를 할 때는 적어도 그릇 정도는 갖다 주었으면 좋겠어.' 등의 합의가 되어야 감정이 상할 소지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재정적, 육체적,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결국 높은 이혼율을 만드는 명절 문화가 참 안타깝다. 그리고 또 하나의 궁금증은 '음식'이었다. 옛 어르신들은 평소 밥상에 음식이 풍족한 경우가 거의 없었던 시대를 살아오셨다. 농촌 문화가 그러했을 수도 있고,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는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명절 문화는 그러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배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떡, 기름진 전, 고기가 가득 들어간 국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시간들은 그래도 연 중에 두 번 찾아오는 명절이 아니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아도 명절 때 먹는 음식은 평소에 집에서 먹어보지 못하는 음식들이 많았는데 과거에는 더 그러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다. 음식이 부족해서 먹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통 음식을 먹고 싶다, 한식이 먹고 싶다' 하면 한식 뷔페를 가면 되고 코로나 감염이 걱정된다면 다양한 배달 어플을 사용하면 된다. 불만 있으면 조리가 가능하도록 포장 또한 깔끔하게 집 앞까지 안전하게 배달되고 완성된 음식 자체로 집 앞에서 받아볼 수 있다.
음식을 모여서 만드는 문화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순기능이 분명 존재하기에 이토록 그 문화가 이어져온 거라고 생각된다. 오래간만에 모인 친척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서 전을 부치고, 송편을 만들고, 때로는 만두도 만들어 먹는 그 문화가 좋다 나쁘다를 어찌 내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마음에 불편함이 있다면 조금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 그림책은 1995년에 나온 책이다. 95년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 책에 그려진 모습들과 너무나 흡사하다. 다소 촌스러운 색동 한복을 입고 할머니 댁에 가는 모습, 엄마는 큰 어머니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아빠는 집안에 허술한 곳을 공사하는 모습, 그리고 장기나 바둑을 두고 있는 사촌 오빠들의 모습까지. 마치 당시의 앨범을 펼쳐보는 듯한 추억까지 불러일으키는 그림책이다.
작년에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이 눈에 유독 들어왔다. 명절 때 요리를 담당하는 것은 여자의 몫, 무거운 짐을 들거나 집안 곳곳의 보수공사를 담당하는 것은 남자의 몫, 즉, 역할이라는 것이 이 당시만 해도 확연하게 드러났던 것 같다.
시간이 20년은 더 지난 지금, 다시 <솔이의 추석 이야기> 그림책이 출간된다면 작가님은 어떤 모습으로 명절을 그려주실까? 올해 추석은 여느 해와는 많이 다를 것 같아서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그림책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작년에 이 그림책을 만났을 때는 '왜 여자들만 부엌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나왔을까?'에 더 초점을 두었던 나의 관점 또한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복잡한 고속도로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 바이러스 전염의 걱정 없이 음식을 하고 있는 모습들, 무엇보다 마스크 없이 한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들. 마음이 먹먹해지고 울컥해지기도 한다.
편리해진 세상 속에서, 성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았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는 '다시 저렇게 마스크 없는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다소 아날로그적이지만 2020년에는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림책. '솔이의 추석 이야기'를 9월 한 달 동안 아이들에게 읽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