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뒤레와 피에르에르메, 무엇이 달랐나(1)
긴자 미츠코시의 라뒤레
출국 전날 남편이 물었다.
“라뒤레 예약창 있는데, 예약 할까? 애프터눈 티는 예약해야한대.”
라뒤레의 애프터눈 티라니,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할까? 싶었으나, 하지 않기로 했다. 티 세트로 한정된 위장 공간을 채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행 가서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하루 세끼로도 부족할 지경인데! 그리고 사실, 먹고 싶은 디저트 메뉴는 정해져 있었어서 그 이상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런 생각들을 빠르게 해 내다니. 이것이 바로 30대의 연륜인가!
긴자로 이동하기 전날에도 남편이 한번 더 물었지만 굳이 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큰 실수였음을, 라뒤레 매장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도쿄에 간 건 지난 연말, 가뜩이나 관광객도 많고 현지 시민들도 연휴를 즐기는 시점이었다. 오픈 시간 근처에 도착했지만 홀 대부분 좌석이 예약석이고, 입구 근처에 한 자리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남편은 아쉬운대로 홀 내부를 보라고 내게 안쪽 자리를 양보했고, 아직 예약 손님들이 도착하지 않은 빈 홀을 구경하기에는 좋은 자리였다. 내부 장식도 유럽 감성이 넘실넘실하고, 고개 들면 바로 보이는 창가 자리는 테라스 느낌이 물씬 나서 참 예뻤다. 만약 남편이 예약 이야기를 했을 때 했더라면, 저 자리가 내 자리가 될 수 있었을까? 아쉬운 마음이야 있었지만 그래도 홀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사람이 없는 시간이어서 사진찍기에도 편했다. 또 문가 자리라고 안예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마카롱은 어느 자리에서 먹으나 똑같으니까.
모닝 티타임을 겸해서 갔으므로 티와 마카롱을 주문했다.
나와 남편의 목적이었던 이스파한은 칵테일로도 주문이 가능해서 디저트와 칵테일 모두를 주문했다.
(티는 라뒤레 시그니처인 마리 앙뚜아네트이고, 마카롱은 카라멜과 사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스파한은 이전에 파리 피에르에르메에서 먹어본 뒤에 푹 빠진 향이다. 그 뒤에 우리나라에서도 디저트 가게에 이스파한이 있다면 꼭 사서 먹어보고는 했는데, 모두 훌륭했으나 내 첫 이스파한의 기억만큼 강렬하지는 못했다.
남편은 약 일년 전 즈음에 함께 방문했던 서울의 디저트 가게에서 첫 이스파한을 맛보았었다. 꽤 단 맛이었으나 그 날의 경험을 계기로 남편도 이스파한의 매력에 빠져 허구헌 날 내가 말하는 최고의 이스파한을 경험하길 기다린 듯 하다.
우선 이스파한 칵테일로 입을 적셔보았다. 남편과 나 모두 눈이 동그래졌다. 향긋한데 달지 않다. 장미 향과 과일 향이 밀도있게 액체 가득 메우고 있음에도 그 느낌은 심지어 가볍고 개운했다.
보기에도 너무 예뻐서 차마 나이프를 대는 게 두려웠던 디저트 이스파한 역시 '달지 않았다'. 우리 부부에게 이 맛은 너무나 신기했다. 이 질감에, 이 재료에, 당연한 공식처럼 혀 구석구석에 단 신호가 와야 할 것 같은데 어째서 달지 않고 그 향기만 가득한 걸까? 꽤 오랜 시간 피에르 에르메의 이스파한을 최고라고 여겼던 내 머리도 복잡해졌다. 왜 진작 라뒤레에서는 안 사먹었던 걸까.
함께 주문한 나머지 마카롱 역시 마카롱의 대표 답게 맛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라뒤레 매장은 디저트 말고도 인테리어도 참 재미있다. 유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이 분위기는 '정통'과 오리지널에 어긋나지 않은 디저트를 즐기기에 참 잘 어울렸다. 또 다정한 직원분은 우리가 편히 찻자리를 즐기고, 내가 들고 간 라뒤레 가방을 알아봐 주었다. 팬심을 알아봐주니 또 팬심을 이어가고 싶어진다.
나는 이 경험만으로도 앞으로는 라뒤레를 위해서 굳이 파리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도쿄 피에르에르메 마루노우치점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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