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뒤레와 피에르에르메, 무엇이 달랐나(2)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된 피에르에르메 마루노우치니쥬바시
모닝 티타임이 라뒤레였다면, 오후의 커피는 피에르 에르메였다.
구글 지도상 도쿄에는 피에르에르메가 두 지점이 있는데 하나는 아오야마, 하나는 긴자에 있다. 긴자에서 라뒤레를 방문하고 나서 바로 비교해보기 좋게 같은 날 긴자의 피에르에르메로 가기로 했다.
방문 당일, 라뒤레에 다녀온 이후 남편은 피에르에르메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연애시절부터 데이트하며 방문하던 꽤나 괜찮은 디저트 가게에서도 마카롱은 피에르에르메다, 피에르에르메의 이스파한만한 디저트는 아직 없다는 나의 말*을 귀딱지가 앉게 들었던 터였는데다가, 오전에 라뒤레에서 너무나 훌륭한 이스파한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몇년 전 파리 피에르에르메에서 먹었던 이스파한 마카롱은 내게 미각 혁명을 일으켰었다. 파리에 가기 전에 청담의 디올 부티크에서 첫 피에르에르메 마카롱을 접했었으나 그때는 디올 접시에 나온다는 이유로 비싸다는 생각 뿐이었다. 본고장에서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방문했었는데, 정말이지 안 갔다면 후회할만큼 너무나 맛있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꽤나 오랜 시간동안 내게 최고의 마카롱은 단연 피에르에르메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연애시절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도 마카롱을 먹을 때마다 내게 듣는 남편은 그게 얼마나 궁금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방문은 우리 목적에는 실패했다. 매장에서 판매중이던 마카롱은 서너종류 뿐이었고, 그 중에 이스파한은 없었다.
그래도 다른 맛이라도 최고의 맛을 느껴보려 판매중인 마카롱들을 종류별로 사 보았으나 글쎄.. 그렇게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오히려 함께 주문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오후의 나른함을 씻어주어 좋았다.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지만 그래도 인사이트를 얻기에는 적절한 공간이었다. 정통 디저트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의 마카롱 브랜드가 BI마저 현지화한 일본식 매장이라니, 솔직히 당일엔 실망감이 커서 사진을 제대로 남기지도 않았지만 다행히 온라인에 자료가 많아 온라인 자료로 설명할까 한다.
긴자 마루노우치의 피에르에르메 매장은 마카롱 가게가 아닌 디저트를 일부 판매하는 식료품점의 모습이었다. 약간의 브랜드 디자인 상품을 갖춘 라이프스타일 샵. 머릿속에 떠오른 브랜드가 하나 있었다. 롯데몰과 백화점에 입점해있는 '시시호시'.
간결한 이미지의 브랜드 디자인과 깔끔한 디자인의 식료품들, 소품들을 판매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왠지 일본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부 매장에 함께 입점한 베이커리에서 일본식 빵(도리야끼)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일본 감성이 크게 느껴진다. 무인양품(MUJI)이 만든 일본식 디자인의 이미지 덕분인지 비슷한 맥락의 공간을 가면 일본스러움이 느껴지고는 한다.
마루노우치의 피에르에르메는 이런 일본식 감성을 적극 이용한 것 같다.
유럽 브랜드에 일본 감성을 입힌 결과물은 디자인 측면에서는 좋아보였다. 아주 간결하게 정돈된, 그에 걸맞는 가타카나를 이용한 BI와 1950년대 일본 월간지 표지 디자인을 이용한 시즌 패키지는 확실한 일본풍 브랜드 느낌을 주었다. 흰색과 검정색을 기반으로 하는 그래픽 디자인과 스토어 디자인 역시 이와 같은 감성을 매우 강하게 살렸다.
동시에 야외 좌석을 이용하고, 수직적 디스플레이와 높은 의자를 사용하는 등 서구적 요소를 결합하여 일본의 전통 느낌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을 살렸다. 이 부분에서 흔하지 않은, 이 브랜드의 특징이 외적으로 구현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일본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내가 느끼기엔 원래도 유럽의 요소를 잘 사용하는 일본이다 보니 이마저도 일본다워보였다. 피에르에르메가 유럽 브랜드임을 알고 보면 일본 현지 요소를 많이 수용했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피에르에르메가 본디 어디 브랜드인지 모르고 이 매장을 먼저 갔다면 유럽풍 일본 브랜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과감하고 오묘한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바랐던 점을 얻지는 못했다. 나는 파리의 디저트를 가장 가까이에서 맛보기 위해 도쿄로 갔고, 파리의 감성을 좀 더 편하게 느끼고자 했으나 이 매장은 둘 다 충족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우선 마카롱은 정말 의문이다. 마카롱이 맛이 없을 리는 없는데 왜 파리에서 먹을 때와 다른 나라에서 먹을 때 맛 차이가 이렇게나 큰걸까? 나는 디올 카페에서 먹었던 피에르에르메 마카롱도 파리에서 먹은 것에 비하면 굉장히 별로라고 생각했었다. 여기서 먹은 마카롱도 마찬가지였다.
두번째는 공간이다. 이 매장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기대한 피에르에르메는 아닌 것 같았다. (이 매장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나의 탓..)
이런 면에서 같은 도시 내에 다른 매장을 운영하는 것은 아주 잘 한 선택같다. 한쪽 매장은 파리 감성을 느끼고자하는 고객을 위해 본래 브랜드 그대로 운영하고, 다른 하나는 브랜드의 새로운 도전으로 현지화하는 것. 흥미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오전의 라뒤레와 비교가 극명히 되는 시간이었다. 라뒤레는 파리 그대로 옮겨온 듯한, 누구나 라뒤레에서 경험하기를 바라는 그 요소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이 곳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하지만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을만한 요소들로 가득했다.
이렇듯 완전 다른 마카롱 브랜드 샵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해본 결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라뒤레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의 사람들이 서비스를 제공했고, 피에르에르메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어와 성격은 그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파리 라뒤레를 그대로 옮긴듯 한 공간에서도 나는 일본의 감성을 여전히 느꼈고, 피에르에르메 역시도 성격은 다를 수 있어도 일본의 어느 부분을 경험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경험을 디자인하기에 앞서서 이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큰 능력이다. 결국 이 모든 경험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록 마카롱 투어로서는 실패지만 커리어로서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래도 다음번 도쿄 방문시에는 피에르에르메는 오모테산도 점으로 방문하겠다. 아쉬우니 제일 맘에 들었던 커피컵 디자인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도쿄 라뒤레 미츠코시점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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