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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Mar 13. 2018

내셔널갤러리 - 고흐의 <해바라기>

2014년 3월 4일의 기록

오후 두시에 일을 마치고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왜 사는지 스스로 묻게 하는 새벽 다섯시 출근, 눈물 찔끔 하며 양말 신고 점퍼 지퍼 목 끝까지 올려 출근한 보람이 있었던 거지. 사실 고흐의 <해바라기> 두 점이 내셔널갤러리에 60년만에 모여 있다는 건 1월 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발이 그 쪽으로 향한 건 사실 해바라기는 핑계고 목적은 딴 데 있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스콘 중에 제일 맛있다고 생각해 온 내셔널갤러리의 스콘을 먹고싶었던 것이야. 서너 번 집에서 이렇게 저렇게 스콘을 구워 보면서, 이제 내 스타일의 스콘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 자부하며, 그 맛있는 스콘을 오랜만에 먹어 보아 뭐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했던 것이다. 


해바라기 특별전은 무료 관람이었는데, 지하에서 노란 티켓을 받아 일층의 전시장으로 들어가도록 돼 있었다. 표를 받을 때도 줄을 서야 하고, 방에 들어갈 때 또 줄을 서야 하는데 운좋게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갔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줄이 아주 길었는데, 이런 소소한 운이 괜히 사람을 참 기분좋게 하는데, 기분이 좋으면서 한 편 기분 좋은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는 인간 참 쪼잔하다 하고 꼭 끌끌 혀를 찬다. 어쨌거나 사람이 참 많았다. 

들어오는 사람들은 전부 해바라기를 찾아... 


그는 알까 이렇게 많은 사람 모인 줄을.

그 속에 무엇이 저리도 울렁였을꼬. 


뭐 다섯달 간격으로 같은 소재를 가지고 그린 두 점의 그림은 내 눈엔 거의 똑같아 보이고... 오늘 내 눈에 들어온 건 내셔널갤러리 소장품인 <A Wheatfield and Cypresse>였다. 고흐의 그림은 일렁일렁, 파리에서 세느강의 야경을 바라볼 때는 오르세에서 본 고흐의 그림이 저 물을 딱 보이는대로 그려냈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오늘 본 그림은 정말 마음으로 본 풍경처럼 느껴졌다. 마음속에 무엇이 저리 일렁였기에 풀도 나무도 하늘도 저리 울렁일꼬. 살아있을 때는 명성과 부귀 그 어떤 것도 누리지 못했고 다만 자기 안의 소리를 참지못해 끌어내고 또 끌어내고 그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참 이 작가에 대해서는 경외보다 연민의 감정이 늘 앞선다. 사실 누구에게 없을꼬 그 울렁임이. 누구는 겉으로 감추고 속으로 꺼이꺼이 울고, 어떤 이는 자신을 속여서까지 덮어버리려 하지만 결코 도망칠 수는 없는 삶이라는 멍에, 그걸 대놓고 드러내고 내가 멍에를 멨소 힘드오 아프오 하는 것, 그거 할 수 있는 사람 진짜 순수한 영혼이다. 고흐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까페의 스콘은 실망스러웠지만, 언제나처럼 맛있게 먹었다. 3.5파운드나 줬는데... 조그만 플라스틱 종지에 클로티드 크림과 라즈베리 잼을 챙겨 주었는데, 둘다 싸구려 맛이 났다. 갤러리에는 차마실 곳이 세 군데 있다. 모두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간단히 몇 개 소파가 놓여 있는 에스프레소 바, 그리고 갤러리 샾 옆에 위치한 작은 까페와 그 옆의 천장이 높고 으리으리한 레스토랑. 내가 좋아하는 스콘은 레스토랑(이름은 내셔널갤러리카페)의 것이었는데, 작은 까페의 스콘도 같은 맛있줄 알고 기대하였더니, 비지떡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콘이 그 스콘이었다. 2018. 03.13.)


그래도 비지떡이 먹고싶을 때가 있는 법. 까페에서 일하는 에디와 샴샤는 좀 비지떡같은 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쁘고 똑똑하고 매너있고 고객을 '모시는' 것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것임을 몸소 아는, 우리 레스토랑의 홀 친구들과는 참 다른 친구들이었다. 커피사려 줄 선 손님들에게 꼭 테스코 점원처럼 목청껏, "NEXT PLEASE!!!". 


종이 접시에 스콘 담아 계산대에 섰더니 덩치 큰 남자가 다짜고짜 "Where are you from?"하며 취조를 시작하여 아주 짧은 순간 여기 들어와서는 안 되는 국적의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허무맹랑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암것도 아니야, 얘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벙쪄 굳어 약간 공격적이기까지 했을 내 표정을 눈치 빠르게 읽고 까무잡잡한 여자가 말했다. 이 콤비는 돌아가며 공부하냐, 어디 사냐, 런던엔 언제 왔냐 쉴새없이 신상을 캐 댔고 왠일인지 나는 무장을 해제하고 자꾸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동종업계 종사자의 묘한 유대감을 표시하면서 뭐 "Coffe or tea? It's alright."한다. 괄괄한 사람들... 덕분에 아쌈 한 잔 얻어마셨다! 종이컵에 트와이닝스 티백, 차 맛도 딱 스콘급! 역시 맛있게 먹었다. 


샴샤는 인도에서 왔다고 했다. 박사학위까지 있지만 인도에서 일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인도에 갔다 오려면 너무 비싸서 5년째 가족들을 한 번도 못 만났단다. 한국 가기 전에 꼭 다시 들르라 해서 그러겠고마고 했다.  서양미술사 다 읽을 때까지 내셔널갤러리에 닳도록 드나들 생각이었는데, 그곳에 찾아 인사할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 생각하니 좀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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