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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Dec 25. 2017

<온더무브>

2017.12.25.

올리버 색스 박사(1933~2015)의 자서전 <온더무브>(알마, 2016)는 말과 모터사이클 얘기로 시작해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끝난다. 2016년 5월에 이 책을 샀는데, 오늘에서야 책장을 덮었다. 힘들 때마다 조금씩 이 책을 읽었다. 너무 즐거운 세계가 펼쳐져서 잡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다시 또 읽어도 그렇게 즐거울 것이다. 탐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했고, 집채만한 파도에 내동댕이쳐져 서핑을 하다 죽을뻔 한 적도 있고, 무리해서 역기를 들다가 뇌혈관이 터지기 직전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조됐으며 산에서 황소와 맞딱뜨려 냅다 도망치다 벼랑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가 근육이 전부 파열돼 재활치료를 받기도 했다. 실은 감히 탐낼 수 없는 것들이다.


색스 박사가 중년으로 접어드는 부분부터 한동안 이 책을 읽는 걸 중단했었다. 공부, 사랑과 좌절, 운동 중독, 마약, 모터사이클, 수영, 이런 것들을 하면서 젊음을 말 그대로 불태우는 그가 늙어가는 것을 차마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간까지 퍼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오늘 끝까지 읽어보니 그리 슬프지 않았다. 


신경의학자로서 그가 흥미롭게 탐구했던 많은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는 항상 자신을 대상으로 (심지어 마약까지) 실험을 했고, 몸의 고통을 연구자의 호기심으로 객관화하려고 노력했다. 


사유와 성찰의 바탕에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게이라는 성적 정체성, 그리고 마이클 형의 정신분열증이 그것인데, 색스 박사의 삶은 이 두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인생 최후의 몇 년 간은 이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마침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피아노는 일흔 살 때부터 다시 쳤다.


(열여덟 살의 어느날) 그러고는 아버지가 정말로 우려하는 문제로 넘어갔다.
"여자친구가 많은 것 같지는 않더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여자애를 좋아하지 않니?"
"여자애들, 괜찮죠." 나는 대화가 여기서 끝나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혹시 남자애들을 선호하니?" 아버지는 물고 늘어졌다.
"네, 그래요. 하지만 그냥 느낌 뿐이에요. 뭔가를 '해본' 적은 없어요." 그러고는 두려운 마음으로 덧붙였다. "엄마한테는 말씀하지 마세요. 받아들이지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는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격노한 얼굴로 내려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가증스럽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어머니는 그대로 방을 나갔고 며칠 동안 나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다시 말을 시작했을 때도 당신이 한 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다시는 이 일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그토록 열린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주던 어머니였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가혹하고 완고했다.


런던의 유대계 집안에서 자란 그는 스물일곱에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난다. 


내가 스물일곱 생일에 잉글랜드를 떠날 때는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희망 잃고 방치된 애처로운 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마음이 내 환자들에게서 내 방식으로 정신분열증과 뇌-정신 장애를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낳았으리라.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연인 빌리를 만났을 때 그는 일흔 다섯 살이었다. 리처드 셀리그, 그리고 멜과의 사랑 얘기는 성소수자로서의 혼란과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끔 돌아보면 내 인생의 일상이 즐거움하고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곤 했는데, 이것이 빌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달라졌다. 스무살에 처음 리처드 셀리그와 사랑에 빠졌고, 스물일곱 살 때는 멜을 만나 애만 태웠고, 서른 두 살에 만났던 카를과의 관계는 정체가 불분명했고, 그리고 지금 나는(맙소사!) 일흔일곱 살이 되었다. 


정신분열증이 있던 마이클 형도 말년에 행복한 삶을 산다. 평생 어머니 아버지와 살던 그에겐, 1990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담한 노년만 남아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신질환 유대인 노인을 위한 요양원인 일런 요양원(Ealon House)에서 좋은 환경을 만나면서다. 이 부분은 정말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우리 모두 어떤 의미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인데,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난다면, 더이상 장애는 장애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형은 이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고 실용적인 기술도 몇 가지 익혔다. 내가 방문하면 형이 방에서 손수 커피나 차를 끓여 대접해주었는데 그전까지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형은 또 지하실에 있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보여주었다. 빨래 한 번 직접 해보지 않았던 형이 이제 자기 것은 물론 다른 연로한 입소자들의 빨래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 형은 차츰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갔고 모중의 지위도 구축했다. 
형은 사실상 더이상 책을 읽지 않았지만 다른 입소자들이 언제든 모르는 것을 묻고 의견을 청할 수 있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서 평생 해온 독서의 결실을 ㅁ재고 있었다. 거의 한평생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무시당해왔다고 느꼈던 형이 이곳에서 지식인의 자리, 현자의 신분을 얻어 새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말로 재밌는 부분은 여기에 하나도 옮기지 않았다. 새로운 책을 읽기에도 모자라지만 사는 게 시시하게 여겨질 땐 언제고 이 책을 다시 찾을 것이다. 색스 박사에겐 운동(excercise), 사랑, 예술, 학문, 사람 그리고 자연이 있었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마지막 칼럼을 보면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지형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10대 시절 키부츠에 머물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던 기억을 무척 좋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이후로 계속 이스라엘을 찾지 않은 건 이런 불편함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늘 돌아다녔지만 유대계의 대가족은 그에게 굉장히 중요한 울타리였다. 부모와 세 형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수십 년 동안 기억과 지각기능, 의식이 중지된 채 "죽은 생명체처럼 굳어있던"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에게 엘도파를 투약해 이 사람들을 '깨워낸' 일을 그는 병례사(<깨어남>, 1973)로 기록했는데, 새로운 시도와 기적과같은 변화 앞에서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버려진 사람들, 제대로 된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빛을 발견하는 게 그의 특기였다.


1988년까지 시위나 행진같은 데 참여한 것은 그해 투렛증후군협회가 최초로 연 전국모임에 나간 게 처음이었다고 색스 박사는 회고했다. 신경질환의 한 종류인 투렛증후군은 틱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색스 박사는 투렛증후군 환자도 연구했다. 그때까지 투렛 환자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보지도 못해서 서로 틱이 "옮을까봐" 두려워 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투렛증후군 환자들이 만나면 서로의 틱 증상을 따라하는 경우가 있었다.


투렛 증상과 외설언어증이 있는 한 젊은 남자는 햄버거를 사려고 웬디스 매장에 갔다가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경련을 일으키면서 음란한 말을 한두 마니 뱉었다. "경찰 불렀으니까 당장 나가요." 식당 매니저는 나가 달라고 했다. 이 남성은 투렛증후군이 있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투렛인 200명은 이날 웬디스로 시가행진을 했다고 한다. 참가자들이 수시로 각자의 틱 증상을 보이면서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에 색스 박사도 있었다. 


이어 같은해 3월에는 워싱턴D.C.의 청각장애, 농아인 대학교인 갤러뎃대학교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청각이 정상인 사람을 총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학생들은 "유창한 미국수화로 학생들고 소통할 수 있는 총장"을 요구하며 캠퍼스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항의 행진에 취재를 하러 갔던 색스 박사는 결국 시위 대오에 합류해서 행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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