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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Sep 17. 2017

미신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

최근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워 상담소를 찾을까 하였다.

알아보니 회당 7~10만원. 시간과 비용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상담 가능한 날이 아직 한참 멀어 답답하던 와중에 사주카페가 그만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도 만족스러웠다.나오면서 마음이 꽤 홀가분해진 것이다.


사주를 처음 보러 간 것은 대학교 2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딸이 뭘 해서 먹고살지를 속 시원히 정하지 않고 있자 무척 조바심을 냈다. 채근해도 내 입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자 '전문가'의 말로라도 듣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도 함께 가신 것은 좀 신기했다. 늘상 미신을 배격하는 발언을 해오셨지만 딸의 앞길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중년의 아저씨가 노트에 한자를 끄적여 풀어댔다. 우선 '수학이 약하다'는 말로 온 가족이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내리며 눈빛을 주고받게 하는 데 성공했다. "외국에 갔다 와야 하네." 그가 했던 많은 말 중에서 이 한 마디가 나를 살렸다. "지금 진로를 결정하면 어차피 바꾸게 되어 있고, 어학연수를 갔다 와서 결정하면 그게 진짜 길이야."


부모님, 특히 엄마는 내가 중문과에 진학하는 걸 극구 반대하셨다. 아직도 기억한다. 학부 첫 두 학기를 마치고 지망 학과를 써낸 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그 주에,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빨리 영문과로 바꿔 써내라'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마트에서 두부며 찬거리를 사다가 나도 불같이 화를 내며 싸웠던 날을...


그런 내가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는 걸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하신 데는 바로 그 중년 아저씨의 말 한 마디가 크게 작용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사주를 보러갔던 그 때 내가 어학연수를 떠날 마음을 이미 먹었었는지 아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쪼록 사주를 보고 온 뒤로 엄마는 더 이상 진로를 빨리 정하라고 나를 닥달하지 않았고, 적어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동생과 함께 살던 시절에 나는 다시 한 번, 내 발로 사주를 보러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 준비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온 동생은 2년째 나와 함께 살면서 매일 밤에는 영화를 보고 낮에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친척들에게선 간간이 '동생은 공부 잘 하고 있냐'는 전화가 내게 걸려왔다.


"27살부터는 동생이 먹여살리네."

그날 내 사주도 같이 봤지만 기억 나는 건 오로지 이 한 문장이다. 복채로 각 오만 원인가를 냈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날부터 나는 부모님께 이 말만 팔고 다녔다. "스물일곱부터는 **이가 다 한대. 돈도 많이 벌고 일도 잘 풀린대."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지만, 반복해서 말하자 꼭 그렇게 될 것 같이 나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에는 사주를 봐 주는 선생들을 시험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내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네가 알긴 뭘 알아. 어디까지 아는지 한 번 보자, 하는 마음이...

그러나 그렇게 하면 돈이 아깝다는 걸 저날 깨달았다.


냉담한 나와 달리 함께 간 나의 소꿉친구는 선생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다. 선생이 무슨 말만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으래애요오?" "아~그렇구나!!"를 연발하는 등 연신 물음표와 느낌표를 번갈아 보냈다. 선생은 신이 나서 친구에겐 이런 저런 얘기를, 내 사주를 풀 때 보다 훨씬 편안하게 하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뽕을 뽑으려면 믿는 척이라도 신나게 해야 하는구나...


사실 나는 오랫동안 점집을 지나는 것조차 싫어했다. 누군가 내 운명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싫었다. 산밑의 기숙사에서 나와서 서울로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특히 그랬다. 세상 수많은 사람에게 불행한 일은 예고없이 참 쉽게 닥치며,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이 온 피부로 느껴지던 시절이다. 다 정해져 있는 거라면, 누군가는 미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하고... 설령 그런 운명이 내 앞에 있다면 그냥 모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이는 점쟁이들이 실제로 유능하다는 걸 전제로 한 생각이었다. 일의 실체를 알게 되는 데는 경험 만 한 것이 없었다. 딱히 본격적인 '점'을 보러 가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사주 따위를 보러 간 뒤로는 점차 두려움이 사라졌다.


중국 유학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베이징의 어느 후통을 지나는데, '작명소' 간판을 조그맣게 단 집에서 흰 난닝구를 입은 할배가 쑥 나오더니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필요 없다 했더니 돈은 안 받겠다고, 이름이 좋은지 봐 주려 하니 잠깐 와 보라고 했다.


순서대로 얘기를 해 준다며 남들은 들어서는 안 되는 큰 비밀이라도 말할 마냥 우선 나만 남고 다 나가라고 했다. 이름을 묻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들으라고 했다. 


심약했던 나는 마음이 이미 철렁, 내려앉았다. 베이징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원촨지진으로 놀란 가슴이었다. 대재앙을 국경의 테두리 안에서 언론을 통해 목도하고 그 분위기를 겪은 당시에 곧바로 떠오른 건 나와 가족의 신변 문제였다. 죽는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결혼을 두번 할 운명이네." 

확실한지 손금을 통해 다시 확인해 보겠다고 하며 한쪽 손바닥을 유심히 봤다. 

"더 확실하네 확실해. 여자에겐 치명적이지...이름을 바꿔야 해."

이런 가벼운 상술이었다니.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뿐만 아니라 콧노래까지 부를 지경이 되었다. 헛소리가 아니라 한들, 결혼 두 번 할 때까지 목숨 붙어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알고보니 주변에는 사주며 타로, 신점을 수시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삶은 그 자체로 불안한 것이고, 나에 대한 얘기는 언제 누구와 해도 끝도없이 재미가 있으니...  한때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인정한다.  어차피 이 업계에서 어디까지가 '사기'인지는 구분할 수도 없으며, 믿고 위안 받으면 그것으로 땡인 것을...


이제 나도 사주카페서 벌써 세 번이나 '신점'을 봤다. 그리고 이 사주카페는 '애프터서비스'를 해 주기 때문에, 1년 안에 무료로 두 번 더 신점을 봐준다. 일년에 세 번을 가기란 쉽지 않아서 지난번엔 한 번만 이용했지만 아마 이번에는 세 번을 다 채울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답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내게 있었는데, 내가 스스로에게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던 얘기들이 남의 입을 한 번 거쳐 나오니 귀에 쏙쏙 들어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이번에 나는 내 얘기도 숨기지 않고 신나게 했다. 정보가 많을수록 더 구체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나를 모르는 사람과 나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 찬찬히 복기해 보면 거기엔 온갖 설득의 기술과 문학적 표현이 동원됐고 나는 숙련자에게 홀랑 넘어간 게 틀림었다. 어쨌거나 나는 듣고싶은 말들을 주워 모아 일기장에 잘 써뒀다.


그럼여도 여전히, 미신은 비열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속여넘겨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어쩌면 '대부분'일까) 작자들은 사람의 약한 고리를 먼저 파고 든다.


점을 보고 온(사주의 경우 덜하다)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20대 여성들에겐 이 작자들이 임신중단('낙태') 얘기를 자주 꺼내는 걸 알게됐다. "자네...애 뗐지! 한번 더 그러면... 평생 없어!" 하고 호되게 꾸짖으면 그 본인은 화들짝 놀라고 그와 '절친'이라 믿으면서도 이처럼 내밀한 얘기는 몰랐던 옆자리의 동행도 '펄쩍' 뛰고. 


스스로를 '용하다' 믿게 하려고 던져보는 많은 얘기들(예컨대 '집안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이 있어'라고 하면 사돈의 팔촌 얘기를 건너건너 들은 것까지 한 개는 생각 나겠지) 중에 하필 이 이야기, 를 20대 여성에게 많이 하는 건 그만큼 이 일이 빈번하다는 것을,  이 일이 참 피하기 어렵지만 말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당사자들에겐 굉장한 죄책감을 남긴다는 것을, 인간사를 썰로 푸는 직종에 있는 이 작자들이 누구보다 빨리 간파해 이용한다는 것 아닐까. 


[관련기사] '낙태 쌍둥이 한풀이 굿' 하자고 속여 수억원 챙긴 무당이 무죄받은 이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83010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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