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의 치타들과 엄마의 목걸이

지구를 반으로 접을 수 있다면 4

by 박다예



부모님이 브라질에 처음 도착하셨던 날의 일이다. 여행객은 아니지만, 미라솔에 가기 전 모처럼 상파울 구경이나 하자 싶어 파울리스타 거리로 나섰다. 파울리스타는 각 종 외국계 회사들과 대기업, 각 나라의 영사관과 문화원들이 있는 한국의 강남 같은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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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서 '돈이 흐르는 거리' 라 불리우는 상파울루의 Paulista 거리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파울리스타에 오니 왠지 언젠가 들었던 브라질 치안에 관한 도시 괴담이 떠올랐다. 길 거리에 도둑들이 즐비하고 심지어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 게다가 부모님과 나는, 누가 봐도 비행기에서 갓 내린 한국인처럼 보이니 더욱 표적이 될 것만 같았다.


길을 걷고 있는데 백발의 키가 큰 할머니가 “ Are you from here? ”이라며 말을 걸어왔다. 너희들은 누가 봐도 여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위험하게 가방을 뒤로 메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이 곳은 매우 위험하다고. 조심하라고.


갑자기 며칠 전 상파울에서 버스를 탔는데 한 여자가 나에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라는 시늉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손에 들 고 다니다간 누군가 낚아채갈 수 있다는 말을, 말이 아니라 손동작으로 표현하는 그녀를 보며 핸드폰을 잽싸게 주머니 가장 깊은 곳에 넣었다.


우리 셋은 한 마음으로 배낭을 앞에 메기 시작했다. 가방에는 가장 중요한 신분증, 여권, 카드가 들어있었으므로 한 껏 경계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가방은 아버지가 들고, 엄마와 나는 주변을 살피는게 우리의 역할 분담이었다.


기분 탓은 아닌 것 같고, 열 셋, 열 넷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눈 짓을 주고받으며 우리를 주시했다. 누가봐도 우리를 타깃으로 삼은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큰 성인 세명이 어린아이들을 두려워하는 상황이 조금 이해가 안가지만, 그 때 우리는 주위에 도와 줄 사람 한 명 없는 이국땅에 떨어진 이방인들이었으므로 비이성적인 공포가 주위를 감쌌다. 위치는 버거킹 앞, 주변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괜찮을거야. 라고 되뇌이며 아버지가 메고 있는 가방을 지키려고 아버지 앞에 섰다.


그 때 두 대의 유모차를 밀고 가는 썬글라스를 쓴 여성이 우리 눈 앞을 스쳐갔다. 포대기에 쌓인 아이의 얼굴이 빼꼼히 보였다. 아, 그래.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지. 하며 조금 안심한 그 순간 엄마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악!!!!!!”


순간 우사인볼트처럼 우리를 지나쳐 빠르게 도망가는 아이들 손에는 엄마의 예물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금 줄 사이로 우아한 루비가 반짝이는 목걸이. 엄마는 그 자리에서 붉게 부풀어 오른 목덜미를 부여잡으며 굳어있었다. 우리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파울리스타 거리르 달리는 아이들의 치타같은 다리를 보며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그 때 젊은 브라질 남자가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놀랐지? 미안해. 혹시 핸드폰 있으면 잠금하는게 좋아. 나한테 주면 내가 해줄게.”


엄마와 나는 본능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갔다.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건 나였기에 다가가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 숙소로 돌아가야하는데 무서워서 핸드폰을 꺼낼 수 없다고 얘기하자 그는 우리에게 그럼 택시 정류장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브라질 사람으로서 내가 미안해. 여긴 가끔 이런 쓰레기 같은 곳이 일어나곤 해. 그래도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너희 혹시 한국인이니 ?”


“도와줘서 고마워. 맞아 한국인이야. 어떻게 알았어 ?”


“일 때문에 미국을 자주 가거든. 거기서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어. 친구들과 비슷해 보여서 알았지. 난 프랑스 회사에서 일해. 이상한 사람 아니야. 어머니는 괜찮으셔? 너무 놀랐지?”


“응.. 너무 놀라셨어..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목걸이를 훔쳐갈 줄 알았으면 안 하고 나오는 건데..”


“다시 한번 내가 사과할게.”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으며, 믿음 반 두려움 반으로 우리는 그를 따라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설마 납치하진 않겠지? 구석진 곳으로 데려가면 빨리 도망가자. 난 부모님께 눈 짓을 했다.


다행히 그가 데려다 준 곳은 택시 정류장이었다. 그제서야 조금 안도하는 우리를 보며 그는 브라질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고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안함과 민망함이 섞인 표정이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의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렀다. 우리는 한 때 탯줄로 이어진 사이. 엄마가 우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너무나도 소중한 목걸이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이 곳에 나를 두고 가야하는 절망 이라는 것을.


나도 그 마음이 이어져와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두려웠다.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다행히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그 때 일을 웃으며 말한다. 부모님과 브라질에 와, 친절했던 그 청년 말대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상파울에 갈 때는 모든 악세서리를 두고 가지만.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다는 서울에서 살던 나는, 정글과도 같은 상파울에서 목걸이를 잃어버렸지만 또 잊을 수 없는 친절도 받았다. 어느 곳이나 흑과 백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도 택시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 일들을 통해 더 강해지기도 했지만. 여기 있는 그림은,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목걸이이다. 당연히 실제 목걸이처럼 목을 빛내주지도, 진짜 금도 아니지만 내 마음과 사랑을 담았다. 힘든 일도 있지만, 사랑은 또 우리에게 위로를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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