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슈퍼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던 날

지구를 반으로 접을 수 있다면 5

by 박다예



나는 브라질에 와서 다시 세 살이 되었다. 말을 못하는 아이처럼.


해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인간관계도, 일도, 날씨도 모두 중요하지만 나는 단연 ‘언어’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가 되지 않으면 다시 미취학 아동시절로 돌아가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다시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태어나서 한 번도 배워볼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포르투갈어로 의사소통 해야했으니.. 마치 지구에 처음 도착한 외계인이 된 것 마냥 모든 것이 낯설고 답답했다. 특히 한국에서 대학, 대학원까지 마치고 나름 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활동하던 나로서는 다시 아이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쓰다고 뱉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 않는가? 난 일주일에 두 번씩, 착실하게 포르투갈어 과외를 시작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책상 앞에서 배운 문장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흘린 땀이 더 오래 남았다. 말이 되지 않아 난처하고 곤란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극복해가며 언어를 머리로, 몸으로 배운 것이다.


그 중 잊히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다. 아마 미라솔에 온 지 두세 달 쯤 되었던 시기에, 슈퍼에서 처음으로 혼자 장을 본, 마침 카드를 두고 온 그 날이다.


한국이었다면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이고, 양해를 구하고 장 본 물건들을 한쪽에 넣고 카드를 가지러 집에 다녀오면 될 일이었다. 혹은 물건들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고 다음에 와서 장을 보거나.


문제는, 그 간단한 이야기를 포르투갈어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해외에 살면 나도 모르게 항상 긴장하고 예민한 상태로 일상을 살게 된다. 그 날도 바짝 긴장해 장을 보고 물건을 계산하러 섰는데,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나에게 포르투갈어로 뭐라 물었다. 난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 Não entendi 넝 엔텐지.. (이해 못해요)’ 라고 대답했다. 아마 회원가입 되어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1차 관문을 넘기고, 물건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냈는데... 아니. 있어야 할 카드가 그 자리에 없는 것 아닌가. 갑자기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고 당혹스러움이 온 몸을 감쌌다. 내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 차례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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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난 최후의 수단인 바디 랭기지를 하기 시작했다. 지갑을 가리키고, 손으로 엑스를 그리고, 고개를 세게 저었다.


‘카드 없음,’을 최대한 언어 없이 표현한 몸짓이었다.


브라질 사람들은,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람들은 정말로 친절하다. 내 물건을 계산해주던 마트 직원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떻게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손짓을 몇 번 반복하자 마침내 조금 알아들은 표정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말이었다.


‘ 여기 잠시 두고 카드 가지러 다녀올게. 집 가깝거든. ’ 이 말을 몸짓으로 표현했어야 했다. 그때서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던 번역기의 존재가 떠올랐다. 아마 너무 당황해서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제서야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써서 직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잘 이해는 못했는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고기를 가르킨 것으로 보아 냉동 고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해외 생활 삼 개월 차, 언어는 몰라도 눈치는 늘은 나는 금방 올 것이라는 말을 다시 써서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조금 못 말린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 나를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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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우스운 에피소드지만 당시에 나는 ‘ 마트에서 장 보는 것 하나도 이렇게 어렵다니... ’ 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 울적해졌다.


그런데 그 때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신선한 멜로디와 익숙한 노랫말... 이건 분명 한국 노래였다.


한국에서 미술 선생님 시절, 학생들과 함께 매일 틀어놓던 노래였다. 긴 머리 찰랑대며 춤추던 뉴진스가 지구 반대편에서 나를 위로해주다니. 계산대 앞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 작은 슈퍼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이, 그 날의 나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언어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들은 지금도 많다. 아직도 쇼핑몰에서 직원이 말을 걸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경직되고 긴장이 된다. 그냥 구경만 할게~ 라고 웃으며 말 할 정도의 경험치가 쌓이긴 했지만 말이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경험은 나를 난처하게도, 우울하게도 만들었지만 인생에 맷집도 쌓이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조금 터무니 없는 믿음도 생겼다. 낯선 곳에서도 나를 붙잡아 줄 무언가는 반드시 있으니까. 그게 뉴진스의 노래이든, 다른 무엇이든.


덕분에 나는 오늘도 세 살의 마음으로, 조금 더 용기있게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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