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귀 기울여야 할 내면의 목소리
드라마 '이 사랑도 통역되나요? '의 내용에 담긴 심리학적 이해를 담은 글이라 스포가 담깁니다.
이 드라마를 스포 없이 보고 싶으신 분들은 지나쳐주십시오.
주인공이 얼마나 이뻤는지는 이야기하지 말자.
이미 넘치고 넘치는 이야기니까.. 난 작가가 이 드라마에 담아둔 심리적 장치들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다.
한 주가 지났으니까 이런 관점으로 드라마를 다시 보시라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떠오르는 심리치료기법이 있다.
IFS (내면가족체계치료: Internal Family Systems Therary).
인싸이드 아웃, 유미의 세포...
우리 내면의 수많은 에너지들이 있다는 것을 소개한 드라마들이 있다.
'이 사랑도 통역되나요?'는 IFS 심리치료의 교재로 써도 좋겠다 싶을 만큼 여주인 차무희의 내적 성장과정이 매우 창의적이고도 디테일하게 녹여져 있다.
IFS에서는 내면의 수많은 목소리를 세 가지 역할로 구분한다.
관리자, 소방관, 그리고 추방자...
그 세 가지의 에너지는 내면의 부분일 뿐 그의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진정한 자아의 힘으로 이 세 가지 목소리를 조화롭게 통합할 때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드라마는 낯선 타국을 배경으로 우리가 얼마나 소통에 낯선 존재인지를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상처를 지닌 통역사 남주가 여주의 성장을 격려하는 과정을 로맨틱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치명적인 외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 아픈 상처를 드러내게 되면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 기억을 추방시켜 버렸다. 부모님을 잃고 낯선 친척들 앞에서 왜 내가 베란다에서 추락했는지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미소 지었다.
그녀도 알고 그녀의 친척들도 직면해야 했던 상처를 그렇게 추방시키고 난 후, 그들은 서로에게 낯설어졌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낯선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에게도, 친척들에게도, 쓰레기 같은 전 남자 친구에게도 버림받아 마땅한 불행을 안고 사는 여자.
그녀는 자신의 바람을 포기하고 불행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녀가 영화촬영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빌딩에서 추락했을 때...
추락... 은 내면의 트리거가 되어 그동안 침묵했던 추방당한 상처를 불러일으켰다.
관리자인 차무희가 관리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갔을 때 자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소방관을 소환했다.
그녀는 거침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어떤 행동이든 과감하다.
소방관인 도라미가 인생역전한 절정의 순간에 좀비처럼 나타난다.
좀비... 죽었는데 죽지않고 매번 다시 살아나 나를 위협하는 존재.
처음 도라미를 만난 차무희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너무 무섭고, 위협적이다.
레드카펫의 영광 앞에서 그를 추락시켜 기절시키고 귀신처럼 나타나 노려보던 도라미.
심지어 도라미가 처음 내뱉는 말은 저주, 조롱, 비아냥 거림뿐이다.
어떻게든 사라지게 하고 싶은 도라미를 남주인 통역사가 이해해 주기 시작했을 때...
도라미는 오히려 남주를 물고 위협한다.
그를 이해해주고 싶었던 남주의 조용한 격려를 통해
그 무시무시하던 도라미는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애교를 떨며...
차무희는 도저히 입밖에 내지 못했을 깊은 상처들...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내면의 추방자에 대한 아픔을 말한다.
그리고 남주에게 안겨 '사랑해 달라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를 사랑해 달라고...
그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네는 변화를 보이게 된다.
아이는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다.
동화처럼 꾸며진 그녀의 집에서 엄마는 살인자가 되고 아버지와 자신과 병아리는 피해자가 되어 죽음의 공포와 직면한다. 두려움에 도망치다 베란다에서 추락했던 아이.
자신이 진실을 말하면 다시 내쳐질 거란 두려움에 마치 처음부터 엄마와 아빠가 없었던 아이인양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듯... 생일케이크를 먹고 죽은 아빠와 병아리가 자신의 미래가 될까 봐 두려웠던 아이는
진실을 외면하기로 다짐했다.
남주가 추방자의 존재를 수용했을 때, 비로소 차무희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도라미를 수용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왜 나를 그렇게 미워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두려웠노라고. 너를 볼 때마다 그 사건을 떠올리게 될까 겁이 났었다고.
차무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힘겨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작가에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장면...
드라마 내내 굉장히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사건일 것만 같았던 차무희의 엄마와의 만남은
마치 잠시 다녀온 여행인 것처럼, 그녀의 어린 시절 동화책 같은 거실을 구경하고 온 것처럼...
다녀왔다는 정도로 밖에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실상 우리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그 실체적인 진실이 중요하다기보다.
그때 어린 자아가 느꼈던 충격적인 감정, 그것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 했던 사적 신념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아이는 엄마의 폭력 앞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고.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자신을 숨기고 회피하고,
미소 짓고 자신의 불행을 운명처럼 수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의 곁에서 끊임없이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존재가 있어
그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진실을 마주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해 간다.
누구에게나 이런 에너지들이 있다.
사회 안에서 반듯하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관리자.
추방자의 상처를 잊기 위해 무슨 짓이든 질러버리고 싶은 좀비 같은 소방관
그리고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가두어야 할 것 같은 추방자.
그 어떤 에너지도 아픔을 견디고 살아가기 위한 노력일 뿐 진정한 나의 모습은 아니다.
매번 나를 자책하고 놓아버리고 몰아붙이는 내 안의 전쟁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김선호같이 멋진 통역사가 짠 하고 나타나줄 가능성이 희박한 우리들에겐(ㅠ)
나의 어떤 모습이든 기가 막혀하면서도 웃고, 어이없어하면서도 네 잎클로버를 같이 찾아주는
위로와 격려의 내가 절실히 필요한 건 아닐까.
Amami, Alfredo, amami quant'io t'amo... Addio!
사랑해 주세요, 알프레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듯이... 안녕!
당신의 내면의 그 수많은 감정의 목소리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안녕을 위해 그렇게 애잔하게 노력하고 있다.
그 내면의 목소리는 지구상에서 당신 자신 만이 들을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용기 내어...
사랑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