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으로 질주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와 사회, 삶의 의미를 묻고 싶었죠
오체투지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강순례 끝나기 이전, 7월에 이야기가 시작되었죠.
수경 스님이 맨 처음 제안을 하셨어요.
지리산에서부터 한반도를 오체투지를 하며 참회를 하시겠다 하셨는데
이 오체투지 순례로 어떤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겠다.
그런 생각이 간절했던 건 아니에요.
사실 너무 큰 일이라 그 어떻게 진행될지 무슨 결과를 낼지를 가지는 상상하기 어려웠어요.
다만 처음에 고민했던 건 사람들이 이런 순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였어요.
당시 2008년도는 어려웠던 시기였잖아요.
광우병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죠.
4대 강 사업을 한다고 하고...
이 시기에 하는 오체투지가 정치적 시위로만 보여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었죠.
사실 사회 정치적인 의미는 좀 약했어요.
물론 던지는 메시지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죠.
그 시기에 좌절을 겪고 절망하고 있었던 개개인들이
삶의 희망을 찾아가도록 함께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던 거죠.
선배는 처음 이 제안을 기획하자고 할 때 어떠셨어요?
긍정반 우려반 그랬죠.
일단 그 일을 하겠다고 하셨던 수경 스님이나 문규현 신부님에 대한 걱정이 제일 앞섰어요.
나이가 있으시니까. 몸도 좋지 않으셨고.
또 그 전 삼보일배 때도 그 순례를 했던 의미나 메시지가 성찰되기보다
그 과정이 이슈가 되고 새만큼 사업에 미치는 영향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우려를 했었거든요.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에서는
삶에서 사회에 대한 좌절을 겪었던 우리에 대한 자기 치유,
내적인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이 순례를 통해 사회적으로 큰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 기대를 할 수는 없었어요.
그건 우리 손을 떠난 문제들이죠.
그런 큰 결과를 기대했다기보다 이 순례에 참여한 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는 내적인 변화를 기대했었죠.
개개인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아주 분명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당시 모든 사회운동이 좌절을 경험했었던 시기였죠.
솔직히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어요.
우리의 삶 자체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돌아가잖아요.
오래전부터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갈망은 있었죠.
지금 와서 오체투지 순례가 그 목적에 충실했었는가 하는 반성은 좀 별개로 해야겠지만요.
삶의 속도가 빠르다. 선배의 삶을 예로 들어봐 주실 수 있을까요?
글세요. 속도가 빠르다는 말을 제가 하는 시민단체의 활동 입장에서 본다면
일반 기업과 비교한다고 해도 이슈를 만들고 진행을 하고 결과를 내는 데까지
속도가 굉장히 빠르죠. 며칠 안에 끝내는 경우가 많죠. 당일에 진행되기도 하구요.
늘 현안인 사회 이슈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보니까
내밀한 성찰, 돌아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요.
아마 일반 기업보다도 더 즉각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톱니바퀴처럼 아주 빠르게 시간들이 돌아가니까
그게 말하자면 활동을 하기 위한 활동밖에는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현안이 있을 때 그 사안을 한 달 두 달 성찰하게 되진 않잖아요. 모. 그럴 수도 없구요.
그렇다고 활동가들이 안식년이나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는 것도 아니구요.
쉬고 싶다. 그런 단순한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종교계에서 천주교나 불교에서 피정을 하거나 하안거, 동안거를 들어가는 것처럼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은 정말 필요하거든요.
직선으로 마구 달려가는 일상의 흐름을 어느 정도 차단하고
나와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꼈었어요.
2008년도의 절망의 시간들이 그걸 더 간절하게 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쉬고 싶다.
그런 단순한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종교계에서 천주교나 불교에서
피정을 하거나 하안거, 동안거를 들어가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은 정말 필요하거든요.
직선으로 마구 달려가는 일상의 흐름을 어느 정도 차단하고
나와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 어떠셨어요?
처음 하자해서 모여서 회의할 땐
늘 앉아서 이 짓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것 같아요.(웃음)
준비과정이 그리 많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어요.
근데 상상이 안 되는 거죠. 엄두도 안 나고.
멀기도 멀고, 무엇보다 이 분들이 끝날 때까지 멀쩡하실까 싶은 걱정이 있었죠.
근데 한 3일 하니까 그 고민이 끝났어요.
시작하고 나니까 걱정과는 달리 그 하루하루에 충실하면 되는 거였어요.
결과는 아예 짐작할 수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구요.
매일매일이 그 날 그 시간 그 자체가 중요해졌죠.
아주 뒤에 벌어질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죠.
딱 이 시간을 이 앞의 상황에 집중하게 됐어요.
매 순간 오직 그 순간만이 중요해졌어요.
상상도 안되고 엄두도 안 나고
멀기도 멀고 괜찮으실까 걱정이 있었죠.
근데, 한 3일 하니까 고민이 끝났어요.
매 순간, 오직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해졌어요.
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지...
일정을 마치고 저녁공양을 하고 나서
노고단 휴게소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문규현신부님께서
김지하 시인이 어느 힘들었던 날에 낚시를 갔는데
밤에 물에 달이 떠있더라고...
저 달이 왜 물에 왔지...
목이 말라서 왔겄지...
물이 그리워서 왔겄지...
....
우리가 왜 여기 있지...
왜 우리가 순례를 하는 거지...
왜 우리가 여기 있는거에요...?
그리워서...
...
목이 말라서...
...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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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2009년 3월에 이루어졌습니다.
생태지평 명호 처장님은 당시 오체투지 순례의 총괄팀장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