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내려놓고 비워야 했죠. 그러자 매 순간이 배움의 장이 되었어요.
너무 많은 일들을 하셨을 테니 뭘 경험하셨느냐고 묻는 것도 좀 그렇긴 한데요 (웃음)
어떠셨어요?
강순례와 오체투지 순례가 순차적으로 연결이 됐는데
그 이어지는 경험이 저게는 숨통을 트이게 해 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정리가 안되었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내 활동과 생활 전반을 차분하고 세세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기였죠. 공부가 많이 됐어요.
아침에 일어나 참가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진행,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기까지
일련의 과정 전부가 배움이 있는 하루 살이 인생이었어요.
비우기도 하고 그래서 채울 수도 있었죠.
그 경험이 내게는 정말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정리가 안됐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말은...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있죠.
아주 단순한 명제이지만 맞는 말이거든요.
그냥 생각 없이 사는 거죠. 관성화된 삶.
그간의 내가 살아온 방식에 그런 부분들이 있었어요.
오체투지는 '내게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어요.
그전의 제 생활은 언제나 결과에 목메고 사는 것 같은 삶이었거든요.
환경단체의 활동가다 보니 늘 어떤 사안에 이기는 가, 지는 가에만 집중하게 되는 거예요.
언제나 결과, 그것에 매달리고, 집착하고. 그래서 잠자다 말고 가위눌려서 일어날 때도 많았어요.
사람이 살자고 하는 일인데 오히려 그 일에 억눌리고 거기에 완전히 집착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 걸 내려놨어야 하는 거예요. 사실은.
결과라는 건 시대의상황이나 조건에 의해서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우리의 생각대로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너무 메어 있다 보니까.
그 외의 다른 것들에는 시선을 두기가 어려웠죠.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있죠.
아주 단순한 명제이지만 맞는 말이거든요.
그냥 생각 없이 사는 거죠. 관성화된 삶.
그 간의 내가 살아온 방식에 그런 부분들이 있었어요.
오체투지는 내게 왜 이 일을 하는 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어요.
잠자다 짓눌려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라면.
예전에 2005년도의 경인운하가 내게는 그랬어요.
그때 운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접하는 사안이어서 대중에게 정말 낯설었죠.
그 사안을 대응했던 활동가가 세명이었는데 정말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분명히 잘못된 일에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거라 막아야 하는 것임에도
도대체 뭘 어떻게 해봐도 꿈쩍도 않는 거에요. 정말 깝깝한 일이죠.
4대강도 그렇구요...
이 사안을 책임지고 있는 활동가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공유하고
여론을 조성해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에요.
그때는 정말 잠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랬어요.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았죠. 아마 지금 다른 활동가들도 그럴꺼에요.
이슈를 대응하는 활동가들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명분과 합리적인 논리 이것 말고는 없거든요.
그걸 대중이 받아 공론을 형성해서 여론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정말 답답하죠.
활동가들에게는 여론 형성이 힘이 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자존감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반응이 없으니 그 사안과 문제 해결에 억눌리고,
그 이슈에 온통 매달려지고 그래서 내 생활이 없어지는. 숨 막히죠.
결과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결과를 내려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시민운동이 너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고 과대평가되어있죠,
외부의 기대심리는 높고, 그런 기대심리가 높으면
담당하는 활동가의 부담은 더 커져요.
내 스스로가 그런 걸 내려놓고 차분하지만 천천히 낮은 자세에서
우리 안의 소통을 우선해서 함께 가는 방식을 찾아야 했어요.
어차피 이 순례는 결과를 짐작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게 이 오체투지 순례가 다른 활동과 달라 배우는 부분들이었어요.
개인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천천히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그 결과보다도 과정에 집중하는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일. 왜 해야 하고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를 묻게 되죠.
내 앞의 문제가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내는가 보다,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는지
과정에 집중하는 것을 배웠어요. 비록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더 많은 것을 돌아볼 수 있었죠.
어쩌면 호사스럽게 여유를 가지면서 세상을 여행하면서 배운 거죠.
편집자주 - 이제와서 돌아보면 그때 여론 형성이 어려웠던 건 활동가들의 탓이 아니었는데, 경인운하와 사대강이 무작정 진행이 될때, 당시 활동가들은 뭔가 자신들의 성찰이 부족해서 꼭 필요한 사안을 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민하곤 했었다. 이렇게 국정원, 군대, 공기업, 민간댓글부대까지 동원해서 정부가 보고를 받아가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을꺼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호사스러우셨다구요? 온갖 고생을 다 하셨는데...
아. 그럼요. 정말 호사스러웠죠. 적어도 제게는. 천천히 전국을 돌며.
길바닥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다 와서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죠.
온갖 세상의 문제와 하소연을 들었어요.
오시는 분마다 당신이 생각하는 마음속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고
그러면서 그분 들은 자신을 돌아보았고 저희는 배울 수 있었죠.
매일 하루하루가 또 다른 출발이었고 또 다른 시작이었어요.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매 순간 강렬했어요.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님 전종훈 신부님 그분들이 오시는 분들의 고민에 답을 주시는 건 아니죠.
답은 그분들 스스로에게 있었던 거에요. 세 분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각자 스스로 과정에 참여해서 온전히 자신이 풀어가야 할 숙제들을 지고 오체투지를 하며
성찰하는 시간들을 가졌죠.
덕분에 우리는 앉아서 하루에 수십 명, 수백 명에 이르는 분들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교육받고 배우고. 그게 우리의 역할이었죠.
어떤 행사를 하느냐, 오늘 일정이 어떠냐 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진행하는 사람들과 참가하는 분들, 또는 참가하신 분들끼리의 만남이 서로를 배워가는 과정이었어요.
사실 거긴 아무것도 없잖아요. 길 외엔.
모인 사람의 지위든 지역이든 징치 성향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누구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세 걸음을 걷고 온몸을 길바닥에 던지는 기도를 바쳤죠.
우린 많은 답을 찾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그것을 얼마만큼 내려놓고 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걸
오체투지를 통해 배울수 있었어요. 비운만큼 채워가는 과정이라는 걸. 행위 자체가 그렇잖아요.
명상이나 절보다 오체투지는 사람을 더 단순하게 만들고 낮아지게 하죠. 바닥에 엎드리니까.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침묵하며 정진하다 보면
더 자신에게 침잠하고 단순해져요. 그래서 더 본질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진행하는 사람이든, 앞에서 하는 사람이든, 참여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멀리서 바라보면서 '저 사람들 참 고생하네'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든 간에
단순해서 명료해지고 직관적인 깨달음을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런 배움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장이었어요.
집단이 함께 만들어가는 명상 기행, 명상 순례 같았죠.
사실 아무 것도 없잖아요. 길 외엔.
모인 사람의 지위든 지역이든 징치 성향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누구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세 걸음을 걷고 길바닥에 엎드렸죠.
우린 많은 답을 찾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그 것을 얼마만큼 내려놓고
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걸
오체투지를 통해 알 수 있었죠.
비운만큼 채워가는 과정이었어요.
기도-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오체투지순례단 | 바느질 - Daum 카페
수경스님께서 행렬이 시작되기 10분쯤 전에
가슴에 대는 몸자보를 바꾸자고 하셨습니다.
어깨끈이 길어서 급하게 바느질을 해야했는데
제가 마음이 불안해져서
실을 급하게 구했으나 매듭을 4번을 시도해도 묶질 못했습니다.
수경 스님께서 멀리서 안자 보고 계시다가 오셔서는
'에그... 줘라... 내가 할께. 중이 바느질은 더 잘한다.'
당신이 익숙한 솜씨로 바느질을 하십니다.
'수발드는 사람이 부족해서 걱정입니다...'
죄송한 마음이 가득해 져서 말씀을 여쭈었더니
'바느질 하는 사람이 오만 걱정을 안고 분심하면 되나
바느질 할 때는 바늘과 실만 보면 되는 거다.
환경과 조건은 내가 만들어가는거다...
이 작업에 집중해야지
만가지 생각으로 바느질이 되랴...'
기도는 만가지생각을 하나로 모아서
그곳에 내 마음을 집중해서 가라앉히는 것이지
시선이 산만하게 흩어져서
흩어진 모습으로 세상을 보니
내 두려움이 세상의 두려뭄이고
나의 번뇌가 세상의 번뇌인거지
내가 온전히 지금의 일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그곳에 번뇌와 어지러움이 있을리가 없지...
이곳은 움직이는 수행처이고
살아 숨쉬는 수도원입니다.
다른 이들의 조건을 따라가느라 숨차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지금 이곳에 마음을 두는 일...
그리하여 투명해진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이라
수경스님께서 바느질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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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2009년 3월에 이루어졌습니다.
생태지평 명호 처장님은 당시 오체투지 순례의 총괄팀장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