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여행 이야기_추억과 감성을 선물하는 오래된 노트 사랑
여전히 너는 노트를 들고 여행을 떠난다. 메모를 한다. 시를 쓴다. 일기를 쓴다. 그리고 시간을 먹는 일상을 넘어가며 너만의 새로운 긁적거리는 문장을 노트에 옮긴다. 다른 이들 책 속의 문장들을 귀하게 다루어 그대로 옮겨 놓고 엮을 때도 있다. 이렇게 2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너의 노트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앞으로도 여전하면 좋겠다. 너의 말을 씹고, 펜대를 움직이며 귀찮게 해도 배신할 줄 모르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서운해할 줄 모르는, 오해할 줄 모르는, 시기할 줄 모르는, 너만을 위해 사는, 그것은 절친한 남편, 절친한 아들, 절친한 친구보다 그 이상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투박한 노트에서 벗어난 지금의 노트는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기도 하며, 질 좋은 속살의 줄을 내어주는 노트는 너의 손때가 묻어 함께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너는 한 남자의 노트를 짝사랑했다. 네가 따랐던 그 남자의 노트는 시향(詩香)이 가득한 문장들의 텃밭이었다. 그 남자의 오른손엔 늘 두꺼운 검은색 노트가 들려 있었다. 그 노트는 일감으로 가득 쌓인 날짜들의 숙제가 아니었다. 그 노트는 그와 함께 학교 사무실을 쫓아다녔고, 학생들이 찾아오는 숙소에서 사람들을, 자연들을, 사물을 탐색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에 초대한 그가 살짝 내어준 노트의 속살은 그의 노트 안에서 편안해 보였다. 이후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너의 작은 틈새를 오롯이 노트에 그려내라 하였다.
너의 노트는 그의 노트를 닮아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것이다.
20여 년 전쯤, 그러니까 네가 일본으로 유학 준비를 하던 때가 있었다. 너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쁜 길로 빠질까 걱정하던 때이기도 했다. 1990년대 무렵은 상당히 많은 어린 여성들이 유흥업소의 돈벌이를 위해 비자를 발급받고, 형식적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며 눈속임을 했다. 유학을 위한 준비는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늦게 만난 직장, 그리고 유학 생활 준비만을 위한 돈벌이 직장 생활은 즐겁지가 않았다. 때문에 직장 아닌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더욱 즐겼던 너다. 뫼아리 산악회, 광주 방송통신대학교 캠퍼스, 국악동아리 삐투루에서 만난 2-3년간의 인연들이 차곡히 쌓였다. 연이어 만들어낸 너의 인연들은 적확히 노트의 줄 속으로 넣어지기 시작했다. 너의 노트는 그의 노트를 따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있어도 때론 외로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사랑의 슬픔을 담아내기도 했다. 너는 자주 방황이라는 길에서 흔들리기도 했다.
[방황하는 건],김미례
방황하는 건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채워짐이 없는
내 마음 때문입니다
방황하는 건
정말 자유입니다
아무 곳에 앉아
쓸 수 있는 여유도 남습니다
방황하는 건
고독과 함께 싸워
이겨낸
크나큰 지혜입니다
방황하는 건
정신적 아픔이
많음 때문입니다.
<1992년 5월 21일>
[눈 오는 밤에], 김미례
방통대의 작은 하루 마감하고,
만원 버스 달리지 않는
신호등 골목길엔
미끄러짐에 나 자신 두려워
저 사람들과 함께
종종 발길 시작된다
눈꽃핀 모자에
책이든 양손에
하얀 운동화에
사과 안은 내 얼굴에
찬바람 뚫은 내 가슴에
나를 자꾸만 감싸 안으려 하는
보이지 않는 비가 있다
검은 그림자 드리운
가로등 하얀 벌판에
다정히 걸어가는
먼 그대들
그들의 따뜻한 겨울 다시 시작되고
옷자락 털고 홀로 걷는 내 모습에
겨울은 빨리 지나갈 것이라
이 눈 오는 밤이 지나면.
<1992년 겨울>
몇 년 전에 만난 너의 짝사랑 2호는 노트를 붙들고 있는 네게 ‘여전히 글을 쓰고 있구나.’라는 말을 남겨주었다. 너는 너의 기억 속에 잠시 끊겨버린 20대 초를 넘보며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옅은 미소로 화답했던 날이었다. 산악회에서 만난 그 짝사랑 2호를 향한 주춤거렸던 마음이 노트 안에 잇대어 고스란히 뱉어내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을 찾아 무등산에서 달맞이 산행을 할 때가 있었다. 자연의 달을 벗 삼아 오르고 올랐던 계절마다의 무등산엔 짝사랑 2호는 산과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 주변에도, 너의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라는 무게는 글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10월이 가기 전에’라는 시는 너의 생일 무렵이 되어 무등산에서 생일파티를 해 준 뫼아리 산악회 동아리 회원들에게 감사했던 마음을 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0월이 가기 전에] ,김미례
함박꽃 웃음 터뜨리며,
겨울 움을 틔우듯
무등산(無等山)의 밤은
바람 속 더욱
열기 날릴 것이다
사람들이 찾아들고
그 허리
감싸 안고서
난 덧없는
기쁨의 눈물 주워 담을 것이다
그리움의 깊이를
알아버릴 것이며
사랑이라는
작은 연못 속에
숨어 들어가는 법을
그들로 인해 배울 것이다.
<1993년 10월 22일>
네가 방황을 하는 동안에도 이렇게 노트는 탐스런 알을 머금은 고목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떠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글이 모였고, 너의 정신의 세계를 움직였다.
지금까지의 노트 여행에서 너의 시를 읽고 밥값을 대신 내어준 어떤 남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일본 행을 한 달 정도 앞둔 어느 날, 경포대를 거쳐 강릉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때였다. 밤기차에서 광주로 내려가 다시 새벽 차를 타고 고흥군 거금도 시골로 향하던 일정이었다. 광주까지 내려오는 옆 좌석에 앉은 남자가 네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노트에 펜을 잡고 손을 올리고 있는 너를 유심히 보고 있었던 그 남자는 너보다는 노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너는 그 남자에게 몇 편의 시를 보여주었다. 오래전 시향 가득한 그 남자의 노트가 네게 다가왔던 그 모습처럼. 연이어 흐뭇한 미소를 보내준 젊은 총각은 2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그 남자는 너의 시를 읽은 답례라며, 역전에서 네게 밥값을 지불해 주고 어딘가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는 네 노트에서 어떤 시를 읽었었던 것일까. 기억은 저편에 숨어버렸다.
[차 안에서(27)],김미례
벌교 터미널
신문을 접고 눈을 드니,
해가 지는 저녁의 햇살
겨울이라고,
강가에 발을 담근
갈대들의 울음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차를 타면
이토록 편안한 마음을
왜 자꾸만,
외로움의 상처를,
끄집어내야 하는가
쓸쓸하게 남겨져 버린
저 들녘의 허전한
풍경 탓일까
무겁게 넘어가는
이 언덕길 위에서
나도 서서히 올라가는
어려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
<1992년 늦가을>
너의 노트는 여행 속에서 너의 많은 고민과 상처를 털어놓게 했다. 비우고 적어내는 너의 치유법을 노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