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마당 이야기_함박꽃의 향을 맡아보셨나요?
마당과 작약은 두 번의 봄을 맞이했다.
올봄, 한 번 더 뜰 앞으로 옮겨온 작약은 힘겹게 한 송이의 큰 꽃을 피어낼 수 있었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꽃향과 함께.
지난해 이른 봄, 자동차로 4시간 이상이 걸리는 친정을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시골 마당에서 이미 싹이 오르고 있는 작약 뿌리를 캐내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딸의 차에 넣어 주었다. 작은 마당을 가진 딸에게, 앞마당에 심어낼 야생화 목록을 읊어내는 딸에게, 당신의 마당에서 키워낸 작약을 함께 심어 보라 말을 건네면서 말이다.
“고거시 말이여, 가져다 잘 심어봐라. 지금 딱 심어도 좋을 시기다. 너무 깊게 말고 살짝 흙을 덮어주어라. 겁나게 예쁜 꽃을 피워낼 것이다. 풍성하게.”
‘해년마다 멋진 꽃을 피어댄단다’라고 했던 것은 보이는 대로 큰 꽃이라는 것과 화려한 색감을 가지고 있는 꽃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 화려한 색의 꽃들이 아름답다 하지 않던가. 나의 아버지도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작약을 함박꽃이라고도 하는데 모란(목단)꽃과 함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상징하기에 실제로 과거 중국에서는 양귀비 등 절세미인을 모란꽃에 비유하기도 하였단다. 특히 부귀와 명예를 나타내는 부귀화(富貴花)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일찍이 어른들의 입소문으로 멋진 꽃으로 각인되어 왔음이 분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조선 후기부터 왕가의 혼례복이나 병풍, 민화 등에서 부귀를 주제로 사용된 꽃이라 한다.
한데, 야생화의 정보나 꽃식물의 이름에 박식하지 못한 나의 짧은 머릿속에서는 모란과 목단, 작약의 수많은 이름이 혼재되어 있었다. 봄이 되면 시골집 마당에서 피어대던 이 화려한 꽃의 이름을 ‘모란’이나 ‘목단’ 정도로 알고 있었다. 나는 먼저 귀에 익숙한 모란부터 그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고 싶었다. 모란을 한자로 표기하면 목단(牧丹)이라 적기 때문에 모란은 중국 이름 목단에서 유래된 것으로 결국 같은 꽃을 뜻한다. 목단-모단-모란으로 변한 이름으로 같은 나무인데도 다른 나무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5월과 6월 사이에 꽃이 피는 갈잎 떨기나무인 모란은 지름이 15센티미터가 넘는 큰 꽃이며 붉은색으로 피어낸다. 9월엔 갈색 털로 덮인 열매가 익으며 세로로 갈라지면서 검은색 씨를 드러낸다고 한다. 작약과 모란꽃의 이름들이 다시 정리된 시기는 바로 아버지가 내게 건넸던 지난해 봄부터였다.
화려한 수식어의 작약꽃에도 사연은 많아 보인다. 신라 선덕여왕이 중국의 당태종이 모란 그림 한 폭과 모란 씨 석 되를 보내왔는데, "꽃은 화려하지만 꽃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아무래도 향기가 없겠구나"라고 하였단다. 꽃을 피어보니 정말로 향기가 없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모란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난다. 꽃이 핀 후 약 5~6일간에 한해서 말이다.(향기가 나는 것은 필자가 꽃이 핀 날로부터 직접 향을 맡아보았기에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약 일주일 정도 향이 나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해 봐야겠다.) 어쩌면 꽃이 피고 난 후 바로 모란의 향기를 맡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모란의 껍질은 벌레를 막는 효과가 있어서 장롱 서랍에 넣어두면 벌레가 안 생긴다고 한다. 뿌리껍질은 약용한다고 하니 화려한 꽃에 활용도가 높은 녀석임엔 틀림없다. 눈과 몸이 즐거운 꽃이 아닐 수 없다. 겨울철에 뿌리만 남고 새싹이 돋아나 피어오르는 것은 '작약'이라고 하는데, 모란(목단)과 작약의 차이는 뿌리에서 나오느냐 나무에서 돋느냐의 모습에 따라 이름을 구분한다. [처음 만나는 나무이야기], 이동혁, (310~311쪽) 참조.
그렇다면, 지난해 봄 아버지에게 뿌리째 받아온 것은 모란(목단)이 아닌 작약이었던 것이다. 후자인 목단은 나무 자체로 남아 있어 새싹을 돋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우리 집으로 옮겨와 첫해를 보낸 작약은 줄곧 성장했던 곳의 땅의 기운과 기온이 달라 꽃 한 송이도 내게 보여주지 않고 겨울을 넘겼다. 나 또한 특별히 좋아했던 꽃은 아니었지만, 올봄 마당 조경을 시작하며 또다시 자리를 옮긴 작약꽃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싹이 나기 시작했던 3월부터 잎이 푸르러지고 꽃이 피는 순간을 하나하나 눈으로 때로는 카메라로 담았다. 여전히 영양 부족으로 몸이 작아지며 꼬이는 꽃봉오리들을 잘라내야만 했다. 꽃 한 송이를 위해 주변의 많은 동료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한 송이를 보고 있자니 애잔함이 묻어 나온다.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았는지 새순으로 가지를 뻗었는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보니 이제 새삼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이 실감 난다. 꽃이 예뻐 보이면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 있듯이. 한 송이를 크게 피어낸 작약은 햇살이 입을 다무는 저녁 나절부터 그 꽃잎을 살포시 덮고 아침 이슬을 먹고 다시 피어난다. 일주일 동안의 향을 내어주기 위해 몸으로 막는 나약함도 보이는 것일까.
작약의 향기에서 아버지가 보내온 고향의 마당 냄새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