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마당 이야기_한옥 마당과 의외로 잘 어울리는 서양꽃, 낮달맞이꽃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여러 야생화들에게는 각자 한두 개의 사연을 지니지 않은 녀석들이 드물다. 얼마 전 단골 화원을 찾아간 내게 반갑도록 눈에 들어오던 꽃이 있었다. 바로 대표적인 여름꽃 낮달맞이꽃이었다. 달맞이꽃은 이름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듯 석양 무렵에 노랗게 피었다가 이튿날 아침 햇빛이 든 후에는 약간 붉은빛이 돌며 시들지만, 낮달맞이꽃은 낮에도 꽃이 피어있는 것이 일반 달맞이꽃과 다르다.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지로 달맞이꽃, 낮달맞이꽃, 황금달맞이꽃, 하늘달맞이꽃 등으로 불리며 귀화한 대표적인 서양꽃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 경북 경주시에 있는 양동마을에 다녀왔던 적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시대 전통 한옥 마을이다. 한국에서 등록된 7개의 전통 마을 중에서도 건물들과 자연, 사람들의 조화가 어우러져 그 원형이 한국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한국 최대 규모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문화가 꽃피운 경주 일대에서 조선시대의 주거 형태나 생활상, 전통건축, 전통 민속을 잘 유지하고 있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는데, 발길 닿는 대로 마을을 구석구석 걷다 보니 역사와 건축, 야생화의 자연과 일상이 소담스레 잘 어울리고 있었다.(경주양동마을 홈페이지, www.yangdongvillage.com)
양동마을은 전체가 꽃밭 같았다. 싱그럽게 물이 오른 신록과 어울린 야생화들은 앞 다투어 꽃잎을 내밀고 있었다. 은은한 향을 선물하는 봄꽃과 여름꽃의 살랑거림 경계에서 관광객의 눈으로 즐거움을 가득 담아왔던 기억이다. 한옥의 흙담과 돌담 밖에서는 골목과 어울리는 애기똥풀, 조뱅이, 봄까치꽃, 괭이밥, 노란 씀바귀 등의 많은 풀꽃들이 멋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감꽃을 머금은 감나무며, 대추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담장마다 길게 늘어진 신록의 가지들은 담 밖을 넘보고 있었다. 작은 꽃들로 하얀 둥근 공을 만든 불두화, 보라색과 흰색, 노란색이 어우러진 창포, 늘씬한 키를 자랑하는 패랭이꽃과 흙냄새를 유독 좋아할 것 같은 꽃잔디들은 담장에 봄 색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역시 그들만의 자연 색감으로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마을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듯했다.
서백당을 향하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던 중간이었다. 널따랗게 마당의 공간이 펼쳐진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의 축담 언저리에 낮달맞이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연분홍빛 꽃잎들이 하늘거리며 수다를 펼치고 한적한 넓은 마당에서 너무나도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낮달맞이꽃이 피어있는 한옥 집에서 오래 발길이 멈췄다. 마당 텃밭에서 소일을 하는 아주머니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꽃의 이름을 물었으며, 이름을 알고 난 뒤엔 축담 아래 무리 지어 피어있는 낮달맞이꽃에게 반갑게 다시 인사를 했다. 무엇 때문에 낮달맞이꽃에 나의 시선이 심하게 끌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생각하고 미련이 남는 꽃이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한옥 모래 마당에 어울리는 꽃이었음은 분명했고, 원을 그리듯 함께 피어있는 연분홍 색감과 부드러운 가지의 늘어진 곡선이 시선을 잡아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낮달맞이꽃은 꼭 손님을 부르는 꽃 같다. 지난해 양동마을 한옥 마당에서 낮달맞이꽃과 마주하고 난 후, 우리 집 마당에 그 꽃이 어울리는 장소를 그려보기도 했다. 비록 한옥 마당은 아니지만, 푸르른 잔디가 함께하고, 회색 벽이 올라간 창문 옆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엷은 분홍과 어울리는 검정 계열과 그리고 나무에 가려 음지를 간혹 만들어주기도 하는 자리로 말이다. 꽃잎에 웃음을 활짝 머금고 있는 소박한 꽃잎을 보며 지나가는 이웃들도 조금씩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여러 굴곡을 기다림으로 삼고, 씨앗으로 이들의 군락지 자리가 자연스레 탄생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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