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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Jun 06. 2017

#48 찔레꽃 그 언덕

나미래의 추억과 마당 이야기_찔레꽃의 감성을 찾아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찔레꽃(가을밤)'은 내가 완벽하게 소화하는 곡 중에 몇 개 되지 않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자주 흥얼거렸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20대의 3분의 2 이상을 바치고 돌아온 일본 동경 유학시절이었다. 입안에서 자주 흥얼거렸던 이유를 들자면 본국을 떠나 타향살이의 향수병이 자주 돋기도 하였거니와 고생하면서 만난 언니 같은, 엄 같은, 많은 인연의 사람들을 하나둘 떠나보낼 때 마음을 달랬던 나만의 차분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앞서서 고백했지만, 이 노래는 내가 완벽하게 한 곡 소화해 내는 많지 않은 나의 18번이라는 연유가 가장 가까운 정답일 것이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세 계절이 교차하며 만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봄에 새싹이 돋아 탄생한 여름날의 하얀 찔레꽃을 표현하면서 스산한 가을밤이 등장한다. 저물어가는 계절 앞에,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사람은 외로워하고, 차분하면서, 우울한 기분까지 들게 하지 싶다. 많은 사람들은 '찔'이라는 제목보다는 ‘가을밤’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픈 가시가 보이지 않도록 철벽을 친 찔레꽃 사연만큼이나 노래 사연도 많아 보인다.  가을밤이라는 노래의 효시는 ‘기러기’라는 윤복진 시에 박태준이 곡을 붙여 불렀던 노다. 이 노래는 윤복진이 한국전쟁 이후 월북했다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이태선이 새로운 가사를 쓴 ‘가을밤’으로 바뀌었다. 다시 이원수 시를 이연실이 개사하여 지금의 찔레꽃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나는 찔레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노래 속에서 등장하는 찔레꽃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내게 다정다감한 고향의 꽃으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곳 가사 속엔 엄마가 있었으니까.

  어릴 적,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엔 높은 언덕에 자리한 산골 깊은 밭을 자주 올랐다. 밭이라는 말로 무엇을 하러 그곳에 갔는지에 대한 설명은 길게 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다. 엄마를 따라 우리 형제자매는 밭고랑이 가지런히 늘어선 언덕 밭에 앉아 이랑과 고랑을 세어가며 결코 원하지 않았던 일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밭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울울창창한 나무와 자잘한 숲을 통과해야만 하는 길이였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 신작로를 돌아 숲길로 이어진 지름길보다 세 배나 더 긴 길이었다. 땅 가시와 온갖 키다리 풀들이 달려와 옷을 못살게 구는 전자의 숲길에 어린 우리 형제자매는 하얀 살갗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엄마와 함께 일을 하러 나설 때마다 마을에서 제일 넓은 길이었던 신작로를 따라가야만 했다. 신작로를 따라 밭가로 올라가면 이웃과의 밭 경계에는 여지없이 하얀 찔레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러 밭의 사정으로 고생하는 주인. 즉 엄마를, 아버지를, 우리를, 나를, 위로하고 있는 듯했다.  


  

  밭가 언덕배기에 가시로 얽히고, 푸른 살을 빼곡히 맞댄 하얀 찔레꽃은 여름이라는 뜨거운 열기와 힘든 일의 만남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고구마 밭에서 엄마와 허리를 구부려 김을 매야 하는 지겨운 노역에서 늘 만나야 했던 꽃이니까. 양파와 마늘을 캐러 가며 호미를 던져버렸던 은밀한 장소였으니까. 그래서 휴식 시간을 벌었으니까 고맙다고 해야 할까. 고추는 그만 빨갛게 익었으면 좋겠다고 짜증을 냈던 표정은 찔레꽃만이 알았던 내 표정이었으니까. 그래서 하얀 찔레꽃을 볼 때면, 노래를 들을 때면, 고향집 그 밭이 생각이 난다. 노동의 시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하얀 찔레꽃이 가득 핀 그곳 언덕 밭이 말이다.

  국가의 돈을 받고 이제는 터널의 한 축이 되어버린 그 찔레꽃 언덕 밭은 27번 국도의 '터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전국도로 지도책에 남았다. 농번기가 되면 땡볕이 애를 태우는 밭으로 끌려 나가기 싫었던 것은 우리 형제자매의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밭이 뱉어낸 금전의 한 몫은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버지의 막내아들의 차지가 되었다.

  우리 집 마당엔 멀리서 개종되어 돌아온 찔레꽃들이 보는 이에게 마음의 감성을 치유해주고 있다.  




작은 마당에 피어낸 파스텔톤 찔레꽃(2017년 4월 초, 분양)과 검붉은 색의 흑찔레꽃(2016년 11월, 화분에서 땅으로 이동)이 환하게 피었다. 내년이면 아직 얼굴을 내밀지 못한 화분 속의 하얀 찔레꽃(2016년 3월)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찔레꽃, 나미래>


엄마가 숨어 있던

 이랑 곁 도랑 언덕

쨍한 햇볕과 눈 마주치며

피어있던 꽃이 생각난다


함지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 엄마

언니 언니

부르며 따라갔던

그 언덕 길 밭

일을 멈추고 싶던 

그 언덕의

하얀 꽃이 생각난다


꽃잎 머리 밖으로 내밀고

온몸을 친친 감은

가시를 아래 숨기고

하얀 꽃이 피었다

언덕 밭 하얀 찔레꽃


꽃이 되어 바라보는

네가 부러웠다


들녘의 초록 바람은

야생화들에게 무

농부의 딸들에게는 유죄가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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