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人이야기_먹어 가는 나이, 고치고 살아야 할 나이!
모른 척했다
시멘트 사각형 창문이
하늘 향해 뚫린 집에서 들었던 몸 소식
벌써 3년이 지났다
마음이 불편했던 것에 비해
힘들었던 적은 없다
살이 되지 못하고
심장이 아파서 흐른 두 해의 여름도
지나가는 일상이고
자잘한 정을 접었을 뿐이다
암보험을 거부당했다
간에 붙은 그 피멍
어디까지 따라 오려나
노랗게 질린 눈빛으로
엄마는 나이 들어가는 딸과
병원 앞에 앉아 있었다
‘몹쓸 병이 왔을까. 우짜까’라고
6개월마다 초음파 검사는
산과 바다와 들판을 넘어오며
잊고 살았다
좋은 물 먹었나
안식처를 둘러싼 낮은 숲과 키다리 나무
문제의 병명을 멈추게 했다
이젠 젊음을 밀어내는 나이
내 나이
해를 먹어가니
몸에겐 미안함을 만든다
엄마인 나는 아직 아프면 안 돼!
이젠 우리 고쳐가며 잘 살자
<나이 안에서, 나미래>
지난해 9월경에 당근 씨를 뿌렸다.
뒤뜰의 나의 작은 텃밭에.
이 녀석을 겨울 동안
계속 지켜보니 성장 모습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9월과 10월에는
붉은 당근 알맹이에 살을 조금씩
붙이는 것 같더니만,
11월부터는 생장을 멈추고
겨우내 푸르디푸른 모습으로
뒷마당을 지키고 있는 거다.
심지어 지치지 않은 푸른 잎으로 말이다.
눈이 와도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고 몸을 지키는 녀석이 신기했다.
당근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꼭 우리네 삶 속 모습 같았다.
엄마의 모습 같았다.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런 엄마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영양분을 다 끌어올려
꽃으로 힘을 쏟는 이 녀석이
그저 아련하지만,
수수한 꽃 색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김장철에
친정을 내려가면 텃밭 양지바른 곳
당근의 군락지를 보기도 한다.
따가운 볕에 피어난 곳에서
당근 꽃을 보기도 했다.
그 꽃이 해를 넘겨 왔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만 둬보니 나의 텃밭에서
당근 줄기가 겨울을 넘기고
꽃을 피어낼 줄이야.
세 계절을 마주하며 끈질기게 붙어 있는 삶으로
당근 줄기에서 꽃대를 만났다.
3센티도 키워지지 않았던
녀석을 간혹 식재료의
색감으로 넣어보기도 했었던 지난겨울.
당근 꽃을 봐 보고자
그대로 놓아둔 시간의 기다림 앞에
감사하다.
겨울을 잘 견디고,
꺽다리가 되어,
담장 곁에서
푸릇한 녀석으로 남아 있었던 녀석이
꽃을 피우고 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