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대상이었던 친정아버지 팔순(산수, 傘壽)을 맞이하다
주머니 많은 작업 조끼 하나로
모든 귀한 패션 뭉개 놓으신다
어떠한 새 옷이 자리를 잡아도
구멍 뚫고 들어온 바람 정답게 맞는다
아버지의 불통을 넘보게 된다
그래도 딸이 가르치고 씌어드린
계절 모자 쓰는 방법은 잊지 않았네
‘패션의 완성은 모자’라고
그 약속만 지킨다
나와 맞는 첫 번째 코드가 되었다
고무신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다닌다
이웃집 아저씨들 흰 고무신 신으실 때
아버지의 검정 고무신이 흙이랑을 밟았다
이웃집 아버지들 운동화로 갈아타실 때
흰 고무신은 출입 패션이 되었다
여행을 갈 때나 남의 결혼식장엔 검은색 구두는 잠깐
지극한 정성으로 아직 고무신을 키운다
나와 맞는 두 번째 코드가 되어주었다
마을 회관엔 십 년 만에 내려가시는 길
당신의 팔순잔치 모임 소식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데려간다
아버지는 집을 좋아하신다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신다
싫어하는 것에 반응하지 않고
관계에 깊이 연연하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언쟁을 싫어하고
말 많은 자리에서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엄마를 괴롭히는 꼰대 아저씨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나와 비슷해진 세 번째 코드가 되어주었다
마을에서 주는 제일 큰 상을 받았다
아버지의 오늘은 침묵으로 기쁨을 받는다
“아이들이 간다니 이렇게 서운 해지는 건가”
대문을 넘어가는 딸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속내
그 옛날 연구대상이었던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다
<아버지, 나미래>
2017년 6월 18일, 거금도, 신금마을 회관에
회갑과 팔순 식사 모임을 위해 모이신 동네 어르신들
아버지를 포함해 팔순을 맞이하신
아버지 동갑 친구 분이시자 동네 어르신인 세 분,
회갑을 맞은 두 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