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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Jun 20. 2017

아버지_나미래

연구대상이었던 친정아버지 팔순(산수, 傘壽)을 맞이하다



주머니 많은 작업 조끼 하나로

모든 귀한 패션 뭉개 놓으신다

어떠한 새 옷이 자리를 잡아도

구멍 뚫고 들어온 바람 정답게 맞는다

아버지의 불통을 넘보게 된다

그래도 딸이 가르치고 씌어드린

계절 모자 쓰는 방법은 잊지 않았네

‘패션의 완성은 모자’라고

그 약속만 지킨다

나와 맞는 첫 번째 코드가 되었다

고무신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다닌다

이웃집 아저씨들 흰 고무신 신으실 때

아버지의 검정 고무신이 흙이랑을 밟았다

이웃집 아버지들 운동화로 갈아타실 때

흰 고무신은 출입 패션이 되었다

여행을 갈 때나 남의 결혼식장엔 검은색 구두는 잠깐

지극한 정성으로 아직 고무신을 키운다

나와 맞는 두 번째 코드가 되어주었다

마을 회관엔 십 년 만에 내려가시는 길

당신의 팔순잔치 모임 소식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데려간다

아버지는 집을 좋아하신다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신다

싫어하는 것에 반응하지 않고

관계에 깊이 연연하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언쟁을 싫어하고

말 많은 자리에서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엄마를 괴롭히는 꼰대 아저씨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나와 비슷해진 세 번째 코드가 되어주었다

마을에서 주는 제일 큰 상을 받았다

아버지의 오늘은 침묵으로 기쁨을 받는다

“아이들이 간다니 이렇게 서운 해지는 건가”

대문을 넘어가는 딸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속내

그 옛날 연구대상이었던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다


<아버지, 나미래>





2017년 6월 18일, 거금도, 신금마을 회관에 

회갑과 팔순 식사 모임을 위해 모이신 동네 어르신들



아버지를 포함해 팔순을 맞이하신 

아버지 동갑 친구 분이시자 동네 어르신인 세 분, 

회갑을 맞은 두 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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