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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Oct 20. 2016

끝내 줍지 못한 단풍잎

나미래의 여행이야기_가을 사진으로 보는 설악산 단풍여행


"엄마! 다음 주, 수업 시간에  낙엽이 필요하대요. 선생님이 5장 주워 오라 했어요."

"그래? 잘됐다.  설악산에 가서 단풍잎 주워 오면 되겠다. 근데 화요일에 학교 갈 건데, 낙엽 수업 다 끝나는 건 아닐까?"


설악산으로 향할 계획을 세워두니 나도 마냥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월요일은 체험학습을 내고 설악산으로 단풍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부터 1박 2일로. 10일은 체험학습 확인서를 받으면  결석이 대체가 되니 초등학생이 부러워지기까지 한다. 체험학습까지 내고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를 가고 싶느냐? 가 아들에게 향한 나의 첫 질문이었다. 그리고 지난주에 다녀온 오대산 선재길을 절정기에 다시 걸어보는 건 어때? 가 두 번째 질문이었다. 아들은 엄마의 두 질문을 한 번에 정리한다. "오대산은 한 번 갔으니 됐고요. 설악산으로 가시죠."


아들은 기동성이 좋은 엄마를 다루는 방법이 아주 능숙해졌다. 서로의 간지러운 곳을 여행을 통해 긁어주니 몸이 기억을 하나 보다. 아들은 이제 엄마보다 여행을 더 가까이하고 싶음을 언어로 표현하며 나와 딜을 시작하고 있다. 일요일 늦은 오후부터 1박 2일로 떠났던 설악산행은 아이에게 주는 작은 보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모 대학 주최의 전국 수학경시대회가 끝나자마자 분당에 있는 내정중학교에서 설악동에 있는 숙소를 향해 달렸다. 빗속을 뚫고.


운전을 즐기고, 꽉 막힌 도로에서도 긍정성을 유지하며 여행을 즐기는 나다. 그렇지만, 하루 만에 강원도를 다녀오는 것은 무지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거리다. 칠흑 같은 밤에 차창을 튕기며 날아드는 빗방울은 음울함의 표현 그 자체였다. 그 상황을 보상이라도 해 주듯이 우리가 걷기 시작한 날은 맑음으로 숲 속을 치장해 주었다.


여행을 나서기 전부터 우리는 설악산 소공원(내설악)에서의 산책 코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으로 향하는 것은 예약 대기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 표를 구매하고 난 후에 흔들바위와 비룡폭포를 두고 어디를 다녀와야 우리의 일정과 맞을 지에 대해서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설악산 소공원 매표소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는데 1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케이블카 표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3시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두었다.  편도 3.2킬로의 흔들바위보다는 편도 2.2킬로의 비룡폭포의 가을을 탐색하자 했다. 둘 중 한 곳은 오늘 중엔 무리였으므로.

     


비룡폭포로 향하는 길은 편안한 길이었다. 난이도가 낮은 보통 길. 몇 군데 철제 계단과 오르막을 통과하면 되는 정도였다. 내 수준과는 거리가 멀 듯해 보였지만 그래도 표지판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산책을 위한 산책으로 이 가을을 넘기고 싶었다. 깎아지른 산길 속에 내가 있다. 울긋불긋 기암괴석의 틈새 사이로 보이는 가을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단풍은 단풍나무만이 단풍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지 못했다. 빨강, 노랑, 갈색이 단풍을 이루는 주요색이라지만, 그 경계선을 이루는 자연의 색들이 내설악의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선명한 화질의 바위가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난 것 같다. 선글라스를 끼기 좋아하는 나지오늘만큼은 안경을 벗고 한참을 자연의 색에 동화되었다.


새 봄에 다시 한번 와보면 어떤 느낌일까? 옅은 색감을 덧붙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싶다.


아들은 가을이 즐겁다.

자연의 속삭임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비룡폭포로 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몽돌로 가득 찬 시내를 만났다. 케이블카 예약을 여유롭게 해 둔 것이 정답이었다. 목적지로 걷는 것과 다르게 해찰 거리를 또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싶었다.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한 색감이다.

나무의 잎 종류마다, 색깔마다, 크기마다 다양한 자연의 이치를 표현하고 살아가는 나무들이 참 행복해 보인다.



맑게 고인 커다란 웅덩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걷고 올라왔음에 그저 감사했다. 이곳까지.

물에 둥둥 뜬 단풍잎들이 이제 계절의 변화를 더 실감 나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여전히 물줄기는 힘차 보였고, 곧 눈이 오고, 얼음이 얼면서 조금은 더 단단해질 자연 앞에 섰다.

     

이렇게 오래도록 걷는 동안,

우리 모자는 나뭇잎을 주워 담을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에 혼을 빼고 눈으로 새겨 넣은 일에 집중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알록달록 단풍잎을 챙겨가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등교를 시작했다. 그제사 학교에 들고 가야 하는 단풍잎을 생각한 아들은 길거리 가로수 영역에 떨어져 있는 벚나무와 참나무, 단풍나무 잎을 줍기에 바빴다.


딱 이만큼 아들과 나의 눈에 머물러준 자연의 변화에 감사하며.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낙엽 수업 후>


"지산아 어제 수업했을 것 같은데 안 주워가도 되지 않겠냐?"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걸어가는 동안 떨어진 단풍잎을 주웠었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불쑥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넨다. 아침에 주워갔던 나뭇잎이 투명 테이프의 힘을 받아 도화지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뭐야? 나뭇잎 붙였네."라고 묻자

"엄마' 32명의 친구들은 전부 색깔로 구분했고요. 한 명은 크기, 저 혼자 모양으로 구분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갈기 모양이 써져 있고, 원모양, 타원형이라 적고 줄이 그어져 있는 도화지의 선이 그제사 내 시야에 들어온다.


"OO아. 선생님께 칭찬받지 않았어? 네가 내 학생이라면 칭찬 많이 했을 것 같아!"

"칭찬받았죠. 아이들은 모양 단어를 생각 안 했더라고요. 칭찬, 음~많이는 아니었지만 받았어요. "


여행의 힘인가.

나뭇잎 색깔만 보러 간 것은 아니었었지!


열매 종류로, 나무의 크기로, 잎의 모양으로, 색깔로.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아들은 모양으로 택했다 한다. 이젠 더 방대한 정보도 분류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길 바라며.


우리 앞으로도 여행 계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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