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_연곡사에는 벌레잡기가 취미라고 말해주는 스님이 계신다
“엄마, 5시에 예불 종이 울리면 꼭 깨워주세요.”
“일어날 수 있겠어?”
“일어나야죠.”
아들의 대답은 기운찼다. 저녁 9시에 잠자리 소등을 마친 후부터는 내게 잠이 올라오지 않는 밤이 야속하기만 했다. 아들은 입사 첫날의 힘찬 움직임으로 벌써 이불 아래 다리를 뻗은 지 오래였다. 절집의 저녁이 어색했다. 나는 욕실 문을 빼꼼히 열어두고 산사의 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의지한 채 읽었던 책장이 여남은 장 남짓 되었지 싶다.
예불 종이 울리는 새벽 아침, 나는 자연스레 미리 맞춰놓은 알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아들을 깨웠다.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그저 진지해 보였다. 무슨 정신에 삼배를 올리고 절을 올렸는지 모르겠다. 1부 예배를 올리고 돌아가도 좋다는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온 그런 두 모자를 기도문을 읊으신 스님께서는 유심히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 후에 그 모습을 자세히 봐 두고 웃으며 말을 걸어주었다.
아침 공양은 7시였다. 그 사이 프로그램 안에는 요가 수행이라는 목록이 있었지만 무리하고 싶지 않아 몸을 다시 뉘어야 했다. 일찍 일어난 것 하나가 나에게는 큰 수행이었으니. 엄마와 함께 따라온 초등 3학년 아들을 두고 그곳에 있었던 어른들은 ‘착한 아들, 멋진 아들’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기분 좋았던 말, 절집 마당 안에서 작게 울려 퍼지는 소리들을 자연스레 들어야 했다. 함께 템플스테이에 동참했던 광주 모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우리 모자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듯했다.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새벽부터 움직인 아들에게 더 힘을 주시는 것 같았다. 어쩜 그곳에서 함께했던 스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보물 2점과 국보 2점이 있는 연곡사(연곡사 기행1을 참고, https://brunch.co.kr/@mire0916/186 )의 야트막한 산길을 올라 산책을 끝냈을 때였다. 절 마당 뜰 어귀에는 정갈하게 정리된 텃밭에서 운력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한 스님이 보였다. 고목 아래서 아들과 노닥거리며, 가을의 소리와 속삭이고 몸을 부딪치며 놀고 있을 때였다.
“아들, 이름이 뭐니?”
스님의 맑은 음성이 귓가에 울림을 준다. 이 소리는 분명 아침에, 그 새벽에, 예불을 올리며 불경 기도문을 읽었던 그 스님의 음성과 닮아 있었다. 그분이었다.
“지산이에요. 최지산이요.”
“이산? 무슨 산?”
“지산이요. 지리산에 이가 빠진 지산이요.”
아파트 1층 건물 정도의 높이에서 텃밭을 내려다보며 말을 하는 아들의 소리가 좀 작았지 싶다.
“어. 그렇구나. 무슨 ‘지’ 자를 쓰니?”
“기록할 ‘지’ 요.
“‘산’은 ‘뫼산’ 자니?
“아니요. 패옥 ‘산’ 자에요. 이름에는 뫼산 자를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어요.”
“아 그렇구나. 이름이 참 멋지다.”
“네. 부모님이 지어주셨어요.”
“지산아, 스님은 벌레잡기가 취민데 너는 뭐가 취미야?”
벌레 잡기가 취미라며 편안한 이야기로 아이와 대화를 이끌어주셨던 스님. 계속해서 학교에서 좋아하는 과목, 여자 친구의 유무, 아들의 취미, 어디서 살고 있는지 등의 여러 질문들이 오가면서 아들이 스님과 대화하는 모습들을 살짝 엿보았다. 끼어들지 않으니 아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정리하고 끝맺고 다른 질문들에 긴장하지 않고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매의 눈으로 쳐다보게 된 내가 이번 연곡사 기행에서는 마음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스님은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는지 아들에게 산책을 권했다. 나는 ‘이런 기회 없어!’라는 심정으로 아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아들의 등을 떠밀며 같이 산책을 따라나섰다. 자동차 길로 1킬로 정도 오르며 스님과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스님들도 의외로 속세의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텃밭에서부터 들고 온 벌레들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큰 바위 곁 풀숲에 풀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불교의 인연을 직접 눈으로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피아골 계곡을 나는 흰 구름은 뉘엿뉘엿 가을 하늘 높게 고개를 올리고 있었다. 단풍은 물가 가까이 고개를 따라오고 있었으나 우리들에겐 아직 들키기 싫은 모양이었다. 계곡은 붉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여유로운 물기 마른 초록 바탕의 그림을 가득 그려내고 있었다. 이제 곧 맞이할 마음이 바쁜 가을 손님에 굽이도는 물살도 힘찬 응원을 보내는 듯했다.
이렇게 스님에게는 피아골 계곡에서 가장 풍광이 좋다는 곳을 소개받았다. 두고두고 기쁨 마음으로 간직할 안온한 장소를 만들어 준 셈이다. 아침부터 아들을 위해 팥빙수를 사서 주겠다는 스님. 모든 아이들이 팥빙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물어봤으면 했는데 말이다. 어린 아이를 위해 무언가 건네주고 싶었던 스님의 마음이 있었다. 너무도 즐거워하는 그 모습을 보며 감히 사양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맘. 아들도 좋아하지 않는 팥을 앞에다 두고, 팥빙수 안에 떡이 빠져 있는 빙수를 보고 대략 난감해하는 것 같았다.
“엄마, 스님께서 사주셨는데, 차마 안 먹는다는 말을 못 하였어요.”
제법 남기지 않고 성의를 보여준 아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때론 세상사는 것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관계를 위해서 참아내는 것도 값진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싶었다.
연곡사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어른들도 아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