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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Oct 09. 2017

연곡사 기행 2.2, 코스모스 꽃밭을 지나며

템플스테이 가는 길, 지리산 자락, 구례 서시천 코스모스 꽃밭을


  네비는 지리산 연곡사를 가기 위해 27번 고속도로의 '구례화엄사IC'를 잡아주었다. 두 번째 길이다 보니 다소 여유가 묻어난 운전길이 아니었었나 싶다. 이번 연곡사행은 초등 3학년 아들과 함께'템플스테이'라는 이름을 걸고 방문했던지라 어색함보다는 기대감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옆에 앉아 있는 아들은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차 안에서 나의 머릿속을 지나는 글감이 노크를 할 때마다 엄마의 입을 대신하여 자신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바쁘게 움직여야 했으니.


 시인의 아들은 참 바쁩니다.


란다. 이 말 한마디로 나는 싯감을 다시 엮어 핸드폰 메모장에 아들의 손이 내 입을 대신하게 했다.


 

▲ 구례화엄사IC에서 3킬로 나왔던 지점에 서시천이라는 코스모스 꽃밭이었다. 봄에는 양귀비, 가을에는 코스모스.  ⓒ나미래


시인의 아들, 나미래

아들!
지금 고속도로 몇 번이야?
27번이에요

도로의 번호 이름을 잊는
네비 누나를 대신해
오목하고 둥근 입술에
바람을 넣는다
엄마의 말을 놓치지 않는
귓속과 귓등이 예술이다

메모장을 열어줘
말한 대로 적어줘

나를 보러 왔구나
붉은 옷 갈아입었어
연곡사 가는 길에
너를 몰랐어 미안
적었어?라고

음. 시인의 아들이어서
할 일이 많네요

아이폰의 쉬리보다
노트 8 빅스비보다
자신의 노고까지 밝혀내는
시인의 아들


▲ 연곡사 가는 길에 우연히 다시 만난 코스모스 꽃밭. 가을은 코스모스지. ⓒ나미래


   정말, 이 꽃밭을 상상하고 아들에게 핸드폰의 메모장을 열라고 재촉했다. 지난 9월에 이곳을 지나면서 코스모스 꽃밭을 들리지 못한 것은 내내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눈을 맑게 하는 파스텔 톤의 여린 속살인 코스모스 꽃잎을 마주하고 싶었었다 라고 감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약재 같은 냄새를 풍겨주는 씨방 근처의 꽃잎을 코 앞에 줄을 세울 수 있었으면 하고. 이제 더 빨리 땅으로 숨으라 재촉하는 가을의 깊은 찬바람을 걷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다.

 


▲ 멀리 크고 넓은 지리산의 둥근 능선에 코스머스 비단 꽃잎이 수를 놓았다.  ⓒ나미래



  서시천이 맞는지도 확실치 않은 곳에 차를 세웠다. 아들의 손이 이곳에 도착하는 바퀴의 속도보다 조금 늦어버렸던 것이다. 지나가는 지역 주민께 물어보니 역시 제대로 차를 멈춘 것은 행운이었다. 이곳은 봄에는 꽃양귀비로, 가을에는 이렇게 코스모스 꽃밭으로 변신을 하는 넉넉하고 평화로운 땅의 기운을 지녔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모자의 사진을 남겨달라 부탁했다. 더위에 조금 지친 아들은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가을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절대 음료수를 사주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그게 잘 안될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늘 어딘가에 숨어있었던 아이스크림 한 조각.




  코스모스는 이미 가을의 진한 햇볕을 몸속으로 전부 느끼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의 씨방을 품고, 뒤늦게 물이 오른 꽃잎에 묻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작은 얼굴 올리는 노력을 아끼지 않더라. 연곡사 템플스테이가 목적이어서 시간을 맞춰가며 들렸던 지라 예상에 없던 장소 하나 내 안에 넣었네. 지리산 자락 구례의 서시천의 코스모스 꽃밭을 기억해야겠다.


▲ 아들은 저 혼자 꽃밭을 지나쳐 가겠다고 호기롭게 장담하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나미래


  아들이 뛰어다니기에 최적의 꽃밭 길이 되어주었고, 손가락에 꽃잎 하나 끼워 사진으로 남기려는 손짓이 어린이다워 웃음 지었던 그곳. 연휴의 끝자락에서 거리질서 유지에 경찰들도 순찰을 도는 일에 여념이 없었던 서시천의 가을 자리여라. 너희들을 보로 온 것은 아니었지만 가을이었기에 마주할 수 있었던 공간이 내 앞에 있었던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코스모스, 나미래

나를 보러 왔구나
가을이 걸어올 때
곱게 머리 올려
옷 갈아입었어

연곡사 가는 길이야
송편에 담지 못한
가을 올린 길
지나치지 못해서
귓등으로도 듣지 못한
너의 수다에게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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