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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Oct 12. 2017

연곡사 기행 2.4, 절 마당 툇마루에 큐브 소리가

잘 들어주는 어른, 호감을 갖아주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아들의 큐브는 요근래 상자 속에 갇혀 있었다. 2년 전부터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여러 종류를 사서 모았던 큐브들. 양손으로 쥐기도 버거운 대형 큐브들은 가끔 조각조각 고장이 나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가는 신세를 겪기도 했다. 얼마 전, 아들이 상자 속에 묶여 먼지가 짙게 쌓여가는 큐브를 다시 꺼내왔다. 띄엄띄엄 만져보기는 했으나 888 큐브까지 마스트를 하고 나서는 속도를 갱신해야 한다는 것에 민감해하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손은 굳지 않았던지 슥슥 돌려보며,


  "엄마, 큐브는 참 경우의 수가 많아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

  "다시 연구를 시작해야겠어요."


  이렇게 말을 하곤, 큐브 노트를 만들어(지금까지 A4용지 한 장 한 장에 적어 놓아 날아가 버린 녀석들이 몇 장이나 됐다. 칠판에 적어놓고 지워버린 녀석들이 아깝다며 큐브 노트를 만들어서 그곳을 이용하라는 엄마의 말을 따랐다.) 나의 핸드폰에 큐브 타이머를 깔고 자신의 것인 양 빌려가 독점을 할 때가 있었는데.

  이번 지리산 연곡사 템플스테이에도 큐브와 함께였다. 차에 앉아 있는 동안 손을 움직이고 싶었던지 가장 무난하고 편한 222 큐브와 333 큐브를 챙겨 드는 것이었다.

  연곡사에서는 스님들이 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더 가깝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들이었다. 스님들과 여러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을 하는 녀석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의 나의 잔소리가 잘 먹혔나 싶었다. 아들은 유독 절의 밤을 두려워했었다. 저녁 공양을 하고 잠시 절 주변을 돌아보고자 했던 계획은 '귀신이 나올 것 같다.'는 아들의 외침에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엄마가 최고여서 여행을 함께 와주는 녀석이었기에. 지리산 연곡사에서 엄마와 쌓은 여러 추억들을 정리할 무렵이었다.

  주지스님은 짐 정리를 하고 있는 우리 두 모자에게 '천천히 더 놀다가 가시라.'라는 말을 남겨주었다. 조카와 구례에서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여유롭게 절집 마당에서 피아골의 그 숲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으리라. 조금은 친해진 아들과 헤어지려니 주지스님은 계속 질문을 더 쏟아낸다.


  "지산이 뭘 좋아한다고 했지?"

  "학교 공부요? 아님 다른 거요?"

  "네가 좋아하는 것 말이야. 공부 말고."

  "저 큐브 하는 거 좋아해요."

  "큐브가 뭐야?"

  "그 그거 있잖아요. 네모난 조각들이 모여 있어 맞추는."

  " 그게 뭘까?"


  스님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 나는 아들에게 차에 가서 얼른 가져오라는 신호를 했다.


 "오호. 이거구나. 너 이거 이상하게 섞어놔도 금방 맞출 수 있단 말이지? 그런 자신감이 있단 말이지?"

 "네!"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는 아들의 두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동영상을 찍으면서 바라본 스님과 아들의 모습에서 기쁨이 넘쳤다. 무엇이든 잘 들어주는 어른 앞에서. 특이한 어른 앞에서 아들은 작은 날개를 펴는 것 같았다. 큐브를 들고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 듯한 아들을. 늘 봐달라고 손으로 들고 와 내 눈앞에 내어놓는 녀석인데. 너무 많이 봐서 '저리 가서 혼자 하면 안 돼?'라고 자주 말을 했었던 나를 조금 음 조금 반성케 했다.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들고 간 큐브가 절집 툇마루에서 그 소리가 빛날 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들과 연곡사 템플스테이는 아들은 즐거웠고 나는 편했던 여행이었다.


원묵 주지스님이 점심 공양을 위해 종 치는 법을 아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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