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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Oct 11. 2017

연곡사 기행 2.3, 템플스테이와 아들

반가운 절집, 사람이 있고 사람이 보이는 지리산 연곡사


  
  다시 찾은 가을의 절 방문이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유명한 산의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템플스테이'현수막을 보면서 절에 한번 머물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곤 했는데 말이다. 그 생각이 미쳤던 것일까? 드디어 긴 명절의 끝자락을 지리산에서 보낼 명분을 찾아냈다.  '남편이 추석 이후 출근을 한다고!' 이 말인즉슨, 우리 모자가 짧은 여행을 준비해도 남편이 많이 놀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남편의 반응은 10년 이상을 산 아내의 직감으로 얻어낸 긍정적인 반응! 예상대로였다.


 

  아들을 데리고 가는 연곡사 템플스테이가 기대가 되었던 것은 절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이유 하나였다. 이미 자주 가던 길, 친정을 가는 길 3분의 2 지점에 있는 이정표가 너무나 익숙했던 곳. 20살을 갓 넘겼던 내가 혼자 배낭을 메고 지리산 노고단 산행을 시작했던 피아골의 그 추억을 소환해보기 위해 혼자서라도 찾고 싶었던 그곳. 그곳엔 이미 지난 초여름에 한번 만났던 주지 스님이 계신다. 그렇지만 그렇다고해서  도움을 받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을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나 절에 아는 분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자세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은 무섭게 생각된 사찰 분위기를 잊게 해 주었고, 또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들과의 템플스테이는 그렇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3시에 입사라는 시간을 잘 지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랴. 가벼운 짐을 들고 누군가에게 템플스테이에 대해 물어봐야 하나 고민을 하려던 찰나, 원묵 주지스님이 앞에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억하시겠어요? 지난달에 왔었던." 선글라스를 얼른 벗으며 인사를 드리니 리엑션 풍성하게 기억해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인지라 '체험형 템플스테이'가 아니라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선택했다. 후자는 당사자가 자유롭게 모든 일정을 스스로 하도록 맡긴다는 뜻이다.



  주지스님은 방까지 안내를 해주고, 아들에게는 스님이 아끼던 간식까지 내어주며 말을 걸어주었다. 역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들과의 주 대화는 몇 학년이냐? 이름이 뭐냐? 이름 뜻은 알고 있느냐?로 시작된 사생활 나눔이었다. 아들과 연곡사 이곳저곳을 돌 때마다 주지스님과 마주칠 때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관심을 보여주었다. 절 카페(연곡사에는 천왕문을 오르기 전, 사방이 자연의 그림으로 도배한 멋진 카페가 있다.)에 신도를 만나러 갈 때도 "지산아, 같이 가보지 않으련?', ' 응 그래, 같이 가자!" 이런 식의 관심이었다. 그게 싫지는 않았던지 아들은 곧잘 주지스님의 말을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연곡사에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많이 있지만, 사람이 있고 사람이 보이는 절이지."


  지난번 방문 때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주지스님의 우문현답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 스님께서 그러시는데요. 여기 절에는요 수학 문제 푸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있대요. 그런데요. 수학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한데, 영어 공부도 하루에 꼭 10분씩 하래요. 저 그거 꼭 실천할 거예요. "


  연곡사에서 돌아와 10분 소리 내어 영어책 읽기를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아들은 보면 머리로는 이해력은 참 빠른데 몸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딱 초등 3학년의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머리로 이해한 주지스님의 그 공부법을 얼마나 오래 간직하고 지켜나갈지 기대가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아직 잘 지켜지고 있는 삼일째! 엄마인 나도 분명 말을 했는데 그때는 잔.소.리.로 듣더니, 원묵스님의 말에 아들이 반응을 했다.


학습법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대화 속에,


"내가 너만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있었다면 스님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 지산아 스님 말 알아들었지?"


아이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않은 말의 울림을 나만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집에서, 나미래>


검정고무신 신어야 하나

한 점 움직임

그런데 신고 싶다


연곡 절방 툇마루 계단에

키높이 신발 잠시 잠을 재운다


산사의

밤공기를 뼛속까지

넣어보고 싶다고


나는 이렇게

검정고무신의

유년시절 추억을

날게 했다


연휴의 끝자락

절집의 문턱이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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