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시를 쓰며, 손으로 글을 다듬고, 시집을 기다렸다
더위도 길었던 밤,
장마도 길었던 밤,
물이 새는 여름밤,
무겁게 마음을 쓰며 시를 다듬었습니다.
오늘은 얼기설기 얽힌 여러 마음씀이
시집 안으로 들어오게 된 날입니다.
이곳 브런치를 통해 공개된 시를 다듬기도 했고 노트북과 노트 안에 묵혀둔 시들을 정리해 86편으로 모았습니다. 일상이 모아져 드디어 시집 안으로 언어가 날개를 달았습니다.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온 이후, 줄곧 정원에 앉아 자연과 눈을 맞추며 글을 썼습니다. 지나가는 이웃들이 오히려 제게 마음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간혹 무표정으로 앞을 응시하며 정신을 빠트리고 앉아 있던 날, 멍하게 걸어다닌 날이 많았는데 제가 화가 나서 인상을 쓰고 있던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결과물이 '시집'으로 출간되었으니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겨울이면 칼칼한 바람을 맞으며 가족끼리 장작 불놀이에 넋을 뺐습니다. 단지 옆 야산에서 마른나무를 주워와 불을 피우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돈을 쓰지 않고도 자연에서 얻어지는 마른 장작을 다 털어 쓰는 일은 제 몫이었습니다. 겨울 마당에는 물기를 짙게 품은 하얀 눈이 구름 모자를 쓰기도 하지요. 불을 피워도 안전한 그릴을 쓸 수 있는 것과 하얀 눈의 풍경이 겨울을 좋아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른 봄부터는 정원을 다듬기 위한 손길이 바빴습니다. 마당 정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새 생명 하나하나가 신기한 존재가 되어주었습니다. 글감이 되어주는 자연의 잉태에 마음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생각을 머리에 쓰고, 정원의 야생화와 과수들이 열기에 지쳐갈 때쯤에는 물을 쓰며 꽃물을 올려 주기도 했습니다.
폭우성 장마가 계속되던 7월 어느 날, 우리집 천장에서는 빗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천장 군데군데에 십자 형태의 기호를 선명하게 써주었고 물길을 만들어주었죠. 그 물길을 잡지 못한 연약한 인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장마'라는 시를 썼습니다.
<장마, 나미래>
너는 하늘을 뚫고 자유가 된다
어느 길 위에서 제대로 몸을 풀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밤마다 별을 따라 달을 따라 길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너
제가 내려야 할 시간의 약속은 이미 잊어버리고
달이 지나간 자리를 지키는 별들은
무거운 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 말았다
흙에 기대 잘려나간 잎들에겐 쑥쑥 키를 키우고
물 한 모금 더 품기 위해 애걸하는
농부들의 긴 한숨을, 뜨거운 땀을 식혀주기도 한다
숨 막히는 햇살에게 잠시 결투를 신청해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는 것도
네가 지나간 자리에 생경함을 우리는 기억하기 때문이다
밤이슬처럼 몰래 내리고 달아나지 못해서 너도 애가 탄다
어디서 시작한 지 모르는 그 깊은 울음만 남기고
힘은 몇 배로 불려 땅을 뚫어버렸다
바람이 지나다 잠시 불러 세우니 모른 척 고개를 돌린다
바람은 너에게 버림받고 너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있다
까다로운 날씨 취향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에게
뒷북치며 굵은 힘으로 우쭐대는 너를 본다 깊은 밤에
그나마 너를 향한 정 깊은 감성은 오래도록 지키고 싶었다
너의 사나운 발걸음으로 우리 집의 허물을 알게 해주기 전까지
천장을 놀이터 삼아 물길을 찾아낸 건 너의 희생 덕분
이 시를 쓰고 나서 한참 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마음과 신경을 오롯이 또 써야 하는 일이 발생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열기에 가득 찬 여름을 다른 의미로 기억할 수 있게 시집 한켠에 채워 넣었습니다. 불행이라기보다는 알고 대처하는 생활의 지혜를 또한 얻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려 했습니다.
이사 온 집 마당에 목조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쓴 것이 일 년 정도가 되어갑니다. 그 사이 소소한 일상이 제 벗이 되어주더군요. 브런치에 올린 많은 시와 함께 공개되지 않은 시 중에서 86편을 골라 제1시집을 출간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를 정원에 앉아 퇴고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쁜 노트에 연필로 명상을 하면서, 노트북에 손을 올려놓으며, 때론 책을 읽으며 모든 것이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머리를 쓴다는 것은 제게 일상입니다. 치매 걸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을 받아 쓰는 일이 되기도 하죠.
마음을 쓴다는 것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저는 주변이 소란할 때는 책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조용해진 틈을 타 아슴아슴한 저녁 이슬이 바람을 통과할 때는 글을 씁니다. 이 습관이 제겐 몸에 배어 있습니다. 과하지 않게 서로서로 마음을 써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쓴다는 것은 따뜻함이 묻어나 있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시집 출간 도서 승인을 기다리며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은,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인 최종 원고를 넘겼을 때입니다. 무사히 출간되어 기쁩니다.
<다음은 시집에 대한 정보와 내용으로 아래를 참고하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크크 서점 http://www.bookk.co.kr/book/view/22862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현재는 부크크와 교보문고에서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9월 경부터는 예스 24 서점, 알라딘 사이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집 내용 정보>
「마당과 정원 사이」의 나미래 시집은 총 5가지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와 그 마당이 정원이 되어가는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산문 형식을 빌어 시어로 적었다. 처녀작으로 데뷔를 맞게 된 첫 시집. 대부분의 시를 탄생시키는 데 주역이 되었던 마당에서의 공간을 소중히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미래 시인은 주로 경험을 바탕으로 눈 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저장해 두고 메모하여 문장으로 재탄생시켰다.
1부는, 아이와 육아를 통해서 경험한 일상이 시가 되었다. 이 시들은 주로 아이와 잠을 잘 때 '자장 시'로 읽어주고 있다. 아이의 성장에서는 무수한 장애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아이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것은 행복이 되었다가 상처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통해 어른이 되어 가는 작가의 시선과 아이와의 소소한 대화거리를 일상과 여행에서 찾아낸다. 100% 자신에게 맞는 육아법은 없지만, 적어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한다.
2부는, 몸으로 느낀 자연과의 교감을 담았다. 자연현상에 반하는 현상이 일어나듯이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계절 속에 투영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계절 속에는 그들만의 순리가 있고 법칙이 있어 자연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느림의 미학이 있는 재미있는 일상이 되어주었다.
3부는, 이사 왔을 때 거칠었던 마당이 정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생명들의 이름을 빌어 글을 썼다. 이곳에서 느낀 마당 정원의 변화를 옮기는 것은 설렘이었다. 생물들은 겨울의 칼바람을 거치고 명지 바람이 이는 이른 봄부터 새싹을 올리고 꽃을 피우는 과정이 있었다. 느린 기다림이 있었지만 야생화와 과수(果樹) 주변의 꽃들에게 하나하나의 관심을 보였고 또한 가족의 일상을 담을 수 있었다.
4부는,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는 작가 자신과 함께 했던 이들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여행을 하면서도 잠깐의 틈을 내어 노트를 드는 것은 오래된 시인의 일상 습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초안을 작성해 두면 여행지에서의 감흥이 남다르게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떠난다는 것은 시인에게 삶의 활력을 제공해 주고, 그곳에 머물러 있는다는 것은 또 다른 틈을 주어 새로움과 여유로움에 시선을 옮겨 보는 즐거운 행위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5부는, 시인의 내면에서 부르는 여러 고민들과 사생활을 담았다. 암호와 같은 시어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자신의 일이기에, 경험 속에서 느껴오면서 생채기가 되어 오래도록 묵혀둔 말들을 풀어놓는 과정, 내면의 깊이를 옮기기까지가 쉽지 않지만 솔직해지고 싶었다